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3)

양 날개의 곡예(2)

   국가 경영의 양 날개는 안보와 경제이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말했다. 나라를 지킬 군대(兵)와 백성을 먹일 식량(糧), 그리고 임금과 신하와 백성 사이의 믿음(信)이 국가 경영의 세 가지 요체이다. 공자는 이 가운데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을 보면 공자가 무슨 말씀을 하실까. 정치하는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지난 번 나는 안보 문제를 두고 이 정권이 벌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곡예를 비판한 바 있다. 오늘은 경제 문제를 두고 벌이는 또 하나의 곡예를 살펴보자.

   국민의 연기금을 증시에 쏟아 붓겠다는 이 정권의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의를 제기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연기금의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당연히 의견을 말할 입장인데도 그의 의견 표출은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증폭시키며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나는 그의 말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다. 다만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장래를 위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관리하는 책임 장관으로서 국민을 위해 올바른 소리를 했다고 판단했다. 요즘처럼 광기가 지배하는 권력의 위력 앞에서 그래도 용기 있는 발언을 하는 장관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의 용기는 몇 시간을 지탱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런 말을 하지나 말지,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즉 연기금의 증시투입을 둘러싼 논쟁이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고 국민의 편에 서서 이 난폭한 정책을 막아줄 야당마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이 정책은 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아, 나에게 이것을 막아낼 힘이 없구나! 이 정책이 결국 어떤 재앙을 몰고 올 것인가?

(사진 : 대공황시대의 실업자들 행렬)

   나는 그것을 오늘 분명히 말해두어야 한다. 현재 연기금의 주식투자는 법에 의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아주 예외적으로 극히 일부가 증시에 투자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노 정권은 기금관리기본법을 고쳐 대부분 연기금의 증시투자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불쑥 이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소위 한국판 뉴딜정책을 거론하면서이다. 1930년대 미국에 불어 닥친 대공황과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불황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것인지 아무 설명도 없으면서 다짜고짜 뉴딜정책을 쓰겠다고 한다.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뉴딜정책은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미증유의 불황으로부터 탈출한 정책이지 기업의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여 성공한 정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당시 대규모의 토목사업 등 인프라 건설에 공공재원을 쏟아 부었지 증시에 쏟아 붓지 않았다.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한다면 일시 증시가 활황을 띄고 기업들이 자기자본을 조달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 정권의 사람들은 말로는 뉴딜과 불황탈출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그 막대한 연기금을 기업들의 자본조달을 도와주는 정책에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휩쓰는 이 참혹한 불황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 기업들이 투자할 곳은 많은데 값싸게 자금을 구하지 못해 애로를 겪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연기금의 증시 투입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책이다. 물론 나는 이 경우에도 찬성하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본질이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첫째는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비어 있다. 500만 명 가까이가 신용파탄상태이다. 1년에 만 명 이상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자살률 세계 최고라고 하니 어느 사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인가 착각을 느낀다. 특히 가장 왕성하게 소비할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실업상태에 있다. 이러니 소비가 줄고 장사가 안 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공급을 담당하는 기업은 어떠한가. 정부의 정책노선과 일관성에 절대적인 불신을 보낸다. 도대체 이 정권을 믿고 일년 계획이 아니라 한달 계획도 세울 수 없다고 야단이다. 신뢰가 사라진 시장은 사막처럼 활력을 잃고 삭막해진다. 소비수요가 마르니 더 투자할 곳이 없다. 반대로 자꾸 사람들을 내보내 실업자를 늘린다. 아직도 거미줄 같은 정부의 규제와 투쟁적인 노동조합의 파업 때문에 의욕조차 사라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죽기 살기로 투자유치를 위해 양탄자를 깔아놓고 유혹한다. 그래서 기업의 해외 탈출이 봇물을 이룬다. 기업이 값싼 자기자본을 조달할 수 없어 투자가 안 되고, 투자가 부진하여 고용과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 사회가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인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들은 국민들을 호도하며 국민들의 피와 땀이 얼룩진 연기금을 증시에 쓸어 넣겠다고 야단이다. 오, 어찌 이 광기를 막을 수 있을까!

   이 정권은 지금이라도 불황의 본질을 찾아 탈출의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엄혹한 겨울을 만들어 놓고 추위에 떠는 초목에게 모닥불을 피우며 성장을 재촉하는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한다.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국민들의 미래를 위한 밑천을 긁어다 부으면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는가. 결국 연기금만 다 소진되고 더 큰 절망만이 기다릴 것이다. 겨울은 시장을 훼손하는 권력의 개입, 즉 좌파노선으로부터 찾아왔다. 용기 있게 노선을 바꾸어야 한다. 저 브라질의 룰라로부터 배우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온갖 규제를 혁파하고 노동시장을 개혁하여 기업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도전과 창조의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지 않고 무슨 수로 시장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이 정권은 이렇게 뉴딜정책을 외치고 경기부양을 위해 연기금의 증시투입을 주장하더니, 이론이 궁했는지 연기금의 투자수익률 증대와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들고 나온다. 즉, 저금리 때문에 연기금의 가치증식을 위해서는 금융상품에 의존하던 종래 방식에서 증시투자라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주식을 외국 자본이 절반 이상 매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든 적대적 M&A가 가능하므로, 이 경우에 대비하여 연기금이 기관투자가로서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은 참으로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우선 투자수익률 제고이다. 연기금은 사회안전망의 물적 수단이다. 따라서 그 기금의 운영은 안전과 안정이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투자를 위한 기금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의 연기금은 모두 법에 의해 강제로 징수하는 세금과 다를 것이 없는 공공 성격의 돈이다. 다른 나라의 임의적인 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 목적 또한 국민들의 미래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담보이다. 위험이 따르는 곳에는 절대로 투자할 수 없는 것이다. 위험이 현실화하는 날에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처음 연기금을 설계할 때 높은 금리를 전제로 하였는데 지금은 저금리가 되었으니 증시투자 외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증권시장이야말로 가장 불안정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 증시는 그 불안정성과 위험성의 강도가 심하다. 증시에 투자된 돈 가운데 외국 자본이 44%가 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학자들은 40%가 넘으면 정부의 정책이 자본시장에 먹혀들 수 없다고 한다. 이미 우리 증시의 주도권은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앞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연기금을 쏟아 붓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

   또 우리나라에는 선진국처럼 고도의 역량을 갖춘 투자전문그룹도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가 독립된 기구에서 운용한다고 말은 그럴 듯 하게 하지만, 결국 관변 단체 비슷한 곳에서 방만하게 운영하다가 큰 화근을 키울 것이 분명하다.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과거 3년 간 주식시장 침체로 민간 연금자산의 1/3을 잃고 연기금 보장기구의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연기금은 모두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증시에 투자하는 정책은 현 단계에서 전혀 고려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하여 연기금이 동원될 수 있다는 발상 또한 놀라울 뿐이다.

   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표적 기업들 즉, 포스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KT, 국민은행 같은 기업들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에 의해 경영권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한다. 아직은 외국자본들이 주식의 차익을 노리는 이른바 portfolio 이지만 언제 경영권을 목표로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공적 연기금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동원되는 일은 소의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 된다.  

 
(사진 : STX 적대적 인수합병설)

   먼저 우리의 연기금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돈이다. 이 돈이 기업의 경영과 지배구조에 영향을 준다면 이미 그 자체로서 시장경제의 원칙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관치경제의 막이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그 부정적 파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원칙 안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아무 쓸모도 없는 불필요한 규제이다.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런 규제를 풀어 우리 기업들이 스스로 길을 찾도록 해주는 일이 시급하다. 또한 자본 시장을 건강하게 육성하여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은 돈을 증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면 외국자본의 비중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지난 김대중 정권 때 잘못된 신용카드 정책으로 오늘 우리 사회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가. 지금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신용카드 남발과 신용한도 책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가. 그 때에도 정권의 목표에 맞추어 경제 관료들이 궤변을 늘어놓으며 그 정책을 태연히 추진하였다. 그리고 지금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오늘 120조에 이르는 연기금을 불안정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증시에 투자하겠다고 야단이다. 경제 관료들이 앞장서서 자신만만이다. 저들이 틀림없이 큰일을 저지르려 한다. 하지만 후일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일이 터지고 나면 그들이 책임을 진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저들이 키우는 재앙을 보고 있으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의 시인 김춘수 선생이 운명하셨다. 시인은 꿈과 사랑을 노래한다. 시인은 실존과 희망을 추구한다.

   오, 오늘 우리는 절망의 어둠 속을 걷고 있으나 내일은 희망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런데 저들이 내일을 위한 최소한의 담보마저 위험한 강에 던져버리려 한다!

   김춘수 시인의 명복을 빌며, 우리의 희망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2004. 11. 30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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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2)

양 날개의 곡예



▲ 노무현 대통령이 20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주말 나는 나라의 운명을 놓고 노 정권이 벌이는 두 가지의 곡예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었다. 하나는 멀리 미국에서 북핵 문제를 놓고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뒤 이어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있은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대화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정부가 추진한다는 뉴딜정책의 내용 가운데 국민들이 낸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한다는 이슈를 놓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반대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터진 파문이다.

   북핵문제가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운명에 직결되는 가장 뜨거운 문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10조가 넘는 연기금의 증시투입 문제도 이것이 실패로 끝날 때 몰고 올 사회 경제적 충격을 생각하면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리라.

   연기금의 증시투입은 국민의 피와 땀이 얼룩진 미래를 위한 담보까지도 거덜 낼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으로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본격적으로 거론하기로 하고 오늘은 북핵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13일 L.A.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북핵에 관하여 했다는 말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그는 말하기를,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경우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한 북한의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곧 ‘일 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수정한 뒤, 그 수정의 이유를 “북한이 합리적이란 표현에 대해선 미 국민이 매우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을 잘못 표현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미 국민이 싫어해서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말과 ‘일리 있다’는 표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북핵문제에 관하여 갖고 있는 속마음이 노출되었고, 그것이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의 진심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 나라의 이익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보자! 과연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이 자위를 위한 것이며 그들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인가. 핵에 자위를 위한 것과 공격을 위한 것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핵은 핵일 뿐이다. 그 자체로서 위협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오는 무기인 것이다. 북의 핵이 동경이나 워싱턴에 위협과 재앙이 되기보다는 서울을 직접적인 위협과 재앙의 범주 안에 넣는다는 것을 누가 부정한단 말인가.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차원을 떠나 우리는 북의 핵개발을 반대한다. 이미 1992년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공동으로 선언하였다. 나아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정에서 북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약속한 경수로 건설의 부담을 우리가 대부분 부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북의 배신이었다. 그들은 동결된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방식을 우회하여 우라늄 농축 방식을 통한 핵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자연히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세는 극도로 악화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 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틀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3차례에 걸친 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4차 회담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이 먼저 돌이킬 수 없는 검증의 방법으로 핵을 포기해야 하며, 그 후 북한이 요구하는 여러 사항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북은 미국의 보장과 보상이 있어야 하며 그 경우 북한은 핵을 동결할 수 있고, 이 두 가지는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의 포기도 아니고 핵의 동결이며, 도대체 보장과 보상이라는 수단과 범위가 막연하기만 한 협상조건을 들고 나와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틈이 나는 대로 이미 충분한 핵 억지력을 갖추었다고 우리와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처음부터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니 대한민국은 여기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와의 비핵화공동선언, 우리 부담으로 시행하던 경수로건설, 식량 등 인도적 지원과 경협을 통한 도움 같은 것은 아랑 곳 없다는 태도이다. 북핵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이것이 북이 우리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민감하고 결정적인 시점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다른 문제는 몰라도 북핵 문제는 북의 입장이 합리적이라던가, 일리가 있다는 말을 다른 자리도 아닌 미국에서 공식 연설을 통해 밝히다니, 아무리 선의로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이 핵 확산 방지를 위해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개인 차원에서는 호불호(好不好)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부 국가들은 엄청난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핵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를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북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합리적’ 또는 ‘일리 있다’는 수식어가 붙을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걸린 사안에 관하여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런 말을 미국에서 한 것이다. 9. 11 이후 미국은 반테러가 외교정책의 움직일 수 없는 틀이 되었다. 얼마 전 끝난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케리가 북핵에 관하여 부시보다 더 강경한 기조로 일관한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지난 20일(토요일) 산티아고에서 한미 정상이 만나 40분간 대화한 내용이 일부 공개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미국이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 관하여 견지해 온 입장에서 단 한치도 벗어난 것이 없다.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봉쇄나 무력이라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미리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국이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데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을 요구하는 것을 피하여 다자간의 틀을 만들었고,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노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솔직히 말하고, 그러기 때문에 미국이 북의 선(先) 핵 포기 주장을 완화하여 6자회담의 돌파구를 열어달라는 요청을 하고, 이에 대하여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 대통령은 L.A.에서 밝힌 자신의 생각을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일부 매체들은 ‘역대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출중한 회담’이었다며 낯 뜨거운 선전을 하는데 정말 낯이 뜨거울 뿐이다. L.A.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며 말하던 그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생각해보자. 북한이 왜 핵을 가지려 하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를 보장받고 경제지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개발하려 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고 또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었을 까닭이 없다. 그것이 아니라 현재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을 보유하는 길 밖에 없고, 따라서 핵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도라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변화를 수용할 생각이었다면 한반도에 이런 불안정한 정세는 조성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고,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아주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누가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한단 말인가. 오늘처럼 험악한 정세가 조성된 것은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거부하며 고립을 자초하고, 그런 상황에서 체제 유지의 길이 핵 보유라는 용납할 수 없는 전략을 들고 나온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조만간 4차 6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4차 회담의 향배가 평화적 해결이냐, 강제적 해결이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나는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 평화로 가는 첫 단추는 앞서 말한 대로 북한이 생각과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개방과 개혁으로 나올 때 핵이 북한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도움이 아니라 장애가 될 뿐이다. 개방과 개혁을 결단하고 국제사회에 진정한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진심으로 북한을 도울 것이며, 북을 위협할 세력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은 북한이 이렇게 생각과 전략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어설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당사국들에 어떤 양보를 구하며 허둥대는 것은 길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흥정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가 'vital issue'라고 말했다는데 vital은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이라는 뜻이다. 북핵이 미국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면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란 말인가. 나는 '운명이 걸려있는(fatal)'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저 흥정을 붙이는 자세로 될 일이 아니다. 근본으로부터 풀어내야 한다. 북이 개방과 개혁 이외에 길이 없는데 그것이 두려워 고립을 택하다 보니 핵개발이라는 어두운 골목에 갇히고 만 셈이 되었다. 그들이 개방과 개혁의 대도(大道)로 돌아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지 어설피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는 자세로는 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노 정권은 위험한 곡예를 그만 두고 진지한 자세로 북을 설득하는 일에 나서길 바란다.

2004. 11. 22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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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1)

태풍의 전조(前兆)들

    그동안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미국 대선에서 부시 현 대통령의 재선일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부시의 재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행복한 모습을 보였고, 부시와 공동 운명의 동맹을 추구해 온 영국의 블레어 총리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다. 반면에 공공연히 케리의 당선을 지지한 유럽의 지도자들은 아주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한반도의 표정은 어떤가. 평양은 내심으로 아주 당황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그동안 6자회담에 불응하고 정세를 긴장시켜 왔는데, 다시 부시가 당선되었으니 그들의 의도대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북은 알아야 한다. 민주당의 케리가 당선된들 무슨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미국은 그저 미국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대외정책을 검토(review)하느라 6개월이 소요되는데, 평양이 그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상당한 사람들이 케리가 당선돼도 북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더 강경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는 사실을 평양은 명심해야 한다. 평양은 이제 핵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서울은 어떨까. 북핵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의 대선 결과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문제는 청와대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이다. 이에 관하여 최근 언론에 아주 흥미 있는 보도가 눈에 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미기업연구소(AEI)'의 한반도 전문가인 선임연구원 니콜라스 에버스타트(Nicolas Eberstadt)박사가 부시의 낙선을 기원한 청와대 인사를 모두 알고 있으며, 부시의 재선을 보며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나아가 앞으로 한미관계가 험난해질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청와대가 이를 부인하였지만 문제는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이다.

   나는 에버스타트를 잘 안다. 처음 그의 논문 “한반도조기통일론 (Hastening the Reunification of Korean Peninsula)"을 읽으며 큰 감명을 받았다. 나의 관점과 일치하는 바가 너무나 많았다. 그의 저서 ”북한의 종말 (The End of North Korea)"도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내가 1999년 워싱턴에 있을 때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 대사에게 그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릴리 대사는 당시 AEI의 아시아 담당 책임자로 있었기 때문에 나의 부탁을 듣고 “아, 닠(니콜라스를 줄여 닠이라 불렀다) 말이군요, 그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원이기도 해서 반은 워싱턴에 있고 반은 대학에 있는데 곧 만나게 해드리죠”라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아주 젊은 유태계 학자였다. 전공은 정치경제학이었다. 그는 아주 냉정하고 과학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분석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래도 우리 민족의 문제이므로 감정이나 정서가 개입 되게 마련이지만, 그는 철저하게 실증적으로만 접근하였다. 그래서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당시 그는 북의 식량문제와 이를 지원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북에서 94년부터 몇 명이나 굶어 죽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30만 명에서 300만 명의 이야기가 있는데, 나의 판단은 300만 명입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기간 중 홍콩으로 탈출한 중국인들이 약 5,000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이야기하였는데, 그 때 누구도 그 말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끝나고 중국이 개방되었을 때, 그 말은 진실로 밝혀졌습니다. 북한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는 몇 명되지 않는 한반도 전문가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사람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하는 몇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런 그가 앞서와 같은 다분히 감정 섞인 말을 하였다니 나의 기분도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야당이나 다른 단체가 아니라 청와대는 나라의 상징이고, 결과는 국익으로 직결되니 말이다. 앞으로 한반도는 북핵문제로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우리와 미국이 하나가 되어 신중하게 대처해도 긴장이 어디까지 높아질지 숨이 막히는데, 에버스타트 박사의 말대로 부시 행정부가 청와대를 불신하고 홀로 전략을 구사한다면, 우리의 국익은 누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단 말인가. 암담한 생각이 앞선다.

   하기야 요즘 저 사람들 하는 행동을 보면 걱정은 나나 국민의 몫이지 그들의 관심은 아닌 듯 싶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경제위기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던 사람들이 요즘엔 자기들 입으로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년부터 국민의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하는 등 한국의 뉴-딜 정책을 쓰겠습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위기가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나라가 대공황의 계곡에 갇혀 있을 때에나 나올 수 있는 말이 국정을 책임진 저들의 입에서 쉽게도 나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한국사회 혼란의 원인을 극명하게 지적한 말이 또 미국 교수의 입을 통해 나왔다. 조지타운 대학의 스타인버그(David Steinberg)교수가 “사회혁명이 한국을 흔들고 있다(A social revolution shakes South Korea)"고 한 말이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저들은 개혁이라고 강변하지만 미국 내 가장 권위 있는 한반도 전문가이자 원로교수인 스타인버그가 개혁(reform)이 아니라 혁명(revolution)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나는 스타인버그 교수를 몇 차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그는 정말 신중하고 사려 깊은 노 교수이다. 그 인품이 동양의 어른 같은 분이다. 가장 오랫동안 한반도 문제에 연구를 거듭해 온 학자 중의 하나이다. 그의 아내도 한국인으로서 조지 워싱턴 대학의 교수이다. 그런 그가 혁명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최근 여당 인사들이 갑자기 야당을 향해 왜 자기들을 친북좌파라고 규정하느냐며 신경질을 낸다. 자신들의 행동이 개혁인지 혁명인지를 먼저 성찰하기 바란다. 혁명이라면 무엇을 지향하는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이 미국의 노 교수가 걱정하는 바를 곱씹어보기 바란다.

   혁명이란 권력을 잡기 위해 하는 것인데 정권을 잡은 자신들이 무엇을 더 얻으려 혁명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답이 나오면 숨기지 말고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오늘 혼란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일은 저들이 진정한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노선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숨기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태풍은 저 멀리 남 지나해에서 생성한다. 올라오며 에너지를 보강한다. 그리고 약한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무서운 재앙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오늘 한반도를 향해 빠른 속도로 태풍의 핵이 성립하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 나라 안팎의 어둡고 습기 찬 기운이 그 태풍의 위력을 키울 것만 같은 두려움을 또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며, 운명의 주인공이라는 믿음으로 나서야 한다. 태풍의 눈을 소멸시키고, 태풍에 힘을 보탤 기운을 약화시키고, 태풍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최선을 다 할 때 하늘은 우리를 도와주실 것으로 믿는다.

2004. 11. 13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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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0)

폭란(暴亂)의 시대

    지난 10월 21일은 나와 나라에 큰 충격이 발생한 날이다. 이날 오전 10시 나에 대한 1심 판결 선고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판결이었다. 법정을 나서는데 어느 기자가 물어 나도 모르게 대답하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난폭한 판결이오!”

   나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많은 모략과 중상을 당하였다. 정적, 언론, 그리고 일부 정치검찰로부터 거짓과 편견으로 얼룩진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나는 눈 섶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러한 공격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그런데 저들은 비열하게 거짓을 만들어 나를 법정에 세웠다.

   모든 권력이 통치자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봉건사회가 해체되면서 사법권은 행정권, 입법권과 함께 3권의 하나로서 다른 권력으로부터 분리, 독립되었다. 다시 말해 정치적 패배자, 사회 경제적 약자의 진실과 정의를 지켜주기 위한 철학적 근거를 가지고 독립된 권력으로 설계된 것이 곧 사법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사법부는 권력의 편을 들어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국민이 사법부에 대하여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판사 출신으로 사법부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저버린 일이 없었다.

   나는 깊은 충격에 빠져 지난 일주일 동안 말을 잊었다. 정치탄압으로 고통 받는 내가 진실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붕괴될 때, 나는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내 마음의 상처가 언제 치유될 수 있을지 솔직히 알 수가 없다.

   BC 44. 3. 15 로마의 종신집정관이던 시저(Caesar, Gaius Julius)가 원로원 공화정 옹호파들의 칼을 맞고 숨진다. 시저는 평소 적대세력들이 언제든지 자기를 공격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적들의 칼날이 날아들 때 그가 절망감을 느꼈을까. 아니다. 그가 믿었던 그의 양아들 부루투스마저 그를 찌를 때 그는 비로소 절망감에 빠져 외친다. “부루투스, 너 마저도!”

   소수자, 약자의 진실을 지켜주어야 할 사법부의 실상을 확인하는 나의 심정은 괴롭다. 부루투스의 눈을 바라보는 시저의 심정이 이랬을까. 하지만 나는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이 절망감이 어찌 나만의 문제일 것인가. 따지고 보면 이러한 현실을 모른 채 안일하게 살아 온 나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일어서야 한다.

   이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렇다. 이 사건의 진실은 하늘이 알고 있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결국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고 정의가 승리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점 점 어두움이 깔리고 절망이 깊어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정의로운 힘으로 절망을 몰아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소명임을 믿는다.

   10월 21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가 수도이전사업은 헌법개정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졌다. 노 정권이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하지 않은 채 정략적으로 밀어붙이던 수도이전사업이 일대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헌재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반발해 시민단체인 자자치연대와 노사모가 항의 집회를 하는 모습)

   헌법재판소의 헌법해석은 뒤집을 수 없다. 물론 학자나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의견을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지고, 또는 다중의 힘으로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면 헌정질서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상을 보라. 노 정권의 실세들이 순순히 승복하지 않는다. 노 정권의 홍위병들이 다중의 위력으로 헌재 재판관들을 겁주려 한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 대한민국의 헌법이 그들의 눈에는 휴지 조각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대통령은 헌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취임한다. 헌법을 무시하고 이 나라와 사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변혁시키고자 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혁명가로 나서면 될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들이 꿈꾸는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그들을 지지한다면,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할 일도 없을 것이다.

   헌법에 충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오직 헌법의 정신을 해석하는 재판관들을 공공연히 공격하는 일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이런 때를 위하여 준비해 둔 헌법상 국민의 권력이 저항권이다. 국민이 헌법에 의해 세운 정권이 헌법을 배반할 때, 국민은 이 헌법상 저항권을 발동하여 그 정권을 허물게 된다.

   노 정권은 지금이라도 겸허한 자세로 헌법에 충성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헌재의 결정에 복종하는 것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복종하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일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헌재의 결정은 무조건 수도이전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고 하려면 헌법개정절차를 밟아서 하라는 것이다.그러므로 하나의 길은 수도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내는 일이요, 다른 길은 수도이전사업을 포기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일이다.

   국민 누구도 말하지 않던 수도이전을 공약하고 정권을 잡은 그들은 그 공약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설득하여 수도이전의 공감대가 확산되면 헌법개정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국민이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데 야당이 무슨 수로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국민을 설득할 책임은 전적으로 노 정권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롭고 나라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때 그들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할 당사자는 없다. 헌재에 무슨 책임이 있는가. 야당에도 아무 책임이 없다. 야당이 반대해서 국민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반대하니 야당이 반대한다.

   헌재 결정을 떠나서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도이전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이다. 적어도 15년~20년 정권이 세 네 번 바뀌어야 완성되는 사업을 국민적 동의 없이 무슨 수로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노 정권은 수도이전을 빌미로 충청도 민심을 볼모삼아 20년 장기집권을 꿈꾸는 모양인데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노 정권은 헌법개정이든 사업 포기이던 빨리 결단을 내려야한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적 책임의 내용은 국민의 뜻에 따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어설피 책임을 전가하려하거나 다른 무슨 대안을 내놓고 책임을 호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책임을 질 수도 없는 공약을 내놓고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다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들, 특히 충청지역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정권이 무슨 낯으로 대안을 내놓는다는 말인가. 내놓은들 누가 그것을 믿는단 말인가. 노 정권은 이제 겸손하게 정도를 걸어야 한다.

   얼마 전 총리라는 사람이 “조선, 동아는 까불지 마라”, “동아, 조선은 내 손에 있다”라는 말을 하였다. 보도를 전제로 말이다.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되지 않는다. 언론이 권력의 손아귀에 있다면 이미 이 나라 민주주의에는 조종(弔鍾)이 울렸다는 말이 아닌가.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은밀하게 언론을 겁주었던 독재시절을 경험하고 이제 민주주의의 지평이 열렸다고 모두 믿고 있는데, 난데없이 권력이 언론을 향해 공개적으로 까불지 말라고 협박하니 이런 난폭한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제 오늘은 또 휴전선 철책이 문제이다. 그 삼엄한 3중 철책이 뚫렸는데 군이 서둘러 우리 민간인이 월북한 것이라고 발표한다. 우리 국민 가운데 무슨 ‘람보’라도 있다는 말인가. 북의 공작원이 침투하였거나, 남에서 암약하던 북의 공작원이 월북한 것이 분명한데, 남의 민간인이라니! 어찌하다 우리 군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지장을 줄까 염려되어 그러는가. 군이 정치화되거나, 정치에 예속되어버리면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는가.

(황중선 합동참모본부 작전처장이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 최전방 철책선 절단 상황과 관련한 합동조사 결과 남측 민간인이 월북하면서 생긴 철책 절단으로 잠정 결론 지었다.)

   요 며칠 사이 나의 마음은 무겁고 우울하다.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같을 것이다. 참으로 폭란(暴亂)의 시대이다. 진실도, 헌법도, 민주주의와 안보까지도 난폭하게 짓밟히며 찢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힘 있는 자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정상(正常)으로 돌아오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가치로 귀의(歸依)하라. 지금 우리 국민들이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가. 경제의 활력과 미래의 희망이다. 그 갈망에 답하지 않는 한 민생의 안정은 이룰 수 없다. 이것이 그대들의 엄중한 책무임을 잊지 말라. 국민은 오래 참지만 교만한 권력을 용납한 적이 없다.

   러시아의 대시인 푸쉬긴이 노래했던가. “ 우울한 날들을 참고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난기류를 헤쳐 나가는 원천은 힘이다. 힘을 모아야 한다. 참고 견딤을 넘어 세상을 따뜻하고 정의롭게 만들 힘을 키워야 한다.

   폭란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과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오늘 나는 다시 일어선다.

2004. 10. 28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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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9)

- 젊은 학생과의 대화 -

이인제의원은 2004년 10월 7일, 오랜만에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젊은 대학생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정치학 수업의 일환으로 이인제 의원을 만난 노아성군과 조성철군은 장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대화록을 정리하여 이 곳에 싣는다.

-IJ월드-


이인제의원 (이하 ‘이’로 표기) :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좋군요. 뭐든지 궁금한 점은 다 물어보고 대화하도록 하지요. 발표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정치인을 많이 만나고 있겠네요?

학생(이하 ‘학’으로 표기) : 네

: 나를 만나는 것은 본인들이 선택한 것인가요, 아니면 교수님이 지정해준 것인가요?

: 학생들 자유로 선택해서 정치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원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 아... 무엇이든지 물어봐요.

: 유권자의 민원이나 여론을 어떻게 접수하고 파악하시는지요.

: 당에 많은 조직이 있습니다. 읍․면별로 협의회장이 있고, 당에는 간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로부터 지역구의 민원이 접수되면 시간을 정해서 그 민원인과 만납니다. 그래서 해결방안을 찾죠. 지구당을 법적으로는 없앴지만 당조직은 살아있으니까 그 조직으로부터 민원을 접수받기도 하고, 지금은 전화나 팩스, 이메일 등 통신이 많이 발달했으니까 그 통신수단을 이용해서 받기도 합니다.

: 당론과 개인의사가 다른 경우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서 소속의원들이 충분히 토론을 하고 그때 자기의 의견을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당론을 정할 경우에는 다수의 의견 중심으로 당론이 정해지기 때문에 소수의견을 가진 의원들은 갈등을 겪게 되죠. 당론은 권고적인 경우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꼭 관철시켜야겠다는 경우, 이렇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권고적일 경우에는 자기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 표결에 참여하면 되고, 확고한 당론일 경우에는 본인이 결심을 해야 되겠죠. 당론과 마찰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생각대로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죠. 그러한 경우에는 당과 갈등을 겪게 되겠지요. 당의 경우에는 징계를 한다던지... 자기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현재 국가의 가장 큰 현안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외교나 안보, 국제 등 여러 문제가 있는데요.

: 제일 큰 현안은 경제입니다. 경제! 우리 경제가 아주 후퇴하고 있으니까 경제를 어떻게 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죠. 예전에는 분배모순이나 불평등이라는 말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제 그런 주장을 하던 사람들도 요즘에는 경제 성장의 원천이 고갈되고 성장 동력이 결핍이 됐다는 것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경제 성장의 원천을 넓히고 경제 성장 동력을 새롭게 충전하느냐‘ 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안보에 있어서 한․미 동맹 약화라든지 북한 핵개발을 비롯한 한반도 정세 불안정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그 자체로도 큰 문제이지만 이것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경제문제라고 봅니다.

: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상임위에서 어떤 활동을 하실 계획이신지요.

: 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 있습니다. 노동, 환경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환경은 그 자체가 생명이고, 삶의 질이고, 경제 문제이기 때문에 환경 행정이 쉬지 않고 발전해야 됩니다. 또 노동은 경제 발전에 맞추어서 빠른 속도로 노동시장이 변화하고 있잖아요. 산업사회일 때는 단순하고 획일적인 노동 그리고 집단적인 노사관계 이런 것들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지식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시장은 개인의 특성, 자질이나 능력이나 이런 것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게 되고, 집단적인 노사 관계 보다는 개별적인 노사관계가 더 중시되고, 그런 그 경제 발전 단계에 맞는 노동시장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분야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노동행정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그것에 맞춰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 지금 맡고 계신 환경노동위원회가 전공 영역에 맞는지요.

: 노동은 장관도 했었기 때문에 내 전문영역이고, 환경은 이번에 처음 하지만 평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기도지사 할 때 3가지를 내세웠는데 경제, 문화, 다른 하나가 환경이었습니다. 경기도지사 할 때 3대 가치 중 하나로 내세웠기 때문에 전문성이 있다고 봅니다. 내가 또 얼마 전에 ‘회의적환경주의자‘라는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 노동문제와 어떻게 인연을 맺으셔서 장관을 하시게 되셨는지요.

: 노동위원회에 4년 있었습니다. 13대 초선 때, 그래서 14대 문민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 지역구(충남 논산시, 계룡시, 금산군)에 대해서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 나는 지역구가 '논산, 계룡, 금산'입니다. 논산시장, 계룡시장, 금산군수 이런 분들이 지방의 특성을 잘 살려서 지역의 발전을 위한 비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에 맞춰서 나는 중앙에서 열심히 뒷받침을 해야죠. 논산, 금산은 주로 농업이 제일 앞서있어요. 금산은 인삼이라고 하는 특수한 작물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래서 그런 농업 분야가 선진 농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할 것입니다. 또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대전시에서 대덕 벨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거든요. 그곳이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연구 중심 단지입니다. 바로 논산, 계룡, 금산은 그 배후지역이기 때문에 앞으로 IT, BT를 비롯한 첨단 산업들의 입지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지역구가 첨단 산업의 입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 지역을 위한 핵심공약이 있으신지요.

: 4년 동안 앞서 말씀드린 첨단산업 등 여러 산업들을 유치해서 만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나의 핵심공약입니다.

: 막연한 질문이기는 하나 학생들에게 이인제의원이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 내가 나를 이야기 해보라고? (하하하) 나는 해방이후 세대이고, 농업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한 시대상황에서 젊은 날을 보낸 산업사회 세대이고, 농업사회 이후 세대이고, 6.25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후세대입니다. 요즘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예전에는 해방이전, 농업사회, 전전세대들이 한국사회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97년에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대통령 선거에 나왔던 사람이고, 그러면서 나는 2개의 국가 비전을 추구해온 사람입니다. 하나는 ‘통일한국‘이고, 또 하나는 ‘지식강국‘입니다. 통일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통일은 반드시 성취해야 되고, 성취할 수 있고,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민족이나 우리 이웃나라, 세계에 유익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또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는 아주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가 산업 사회에서 비약적인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는데, 그러나 진정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촉발된 지식경제, 지식사회 이것을 빨리 우리가 개척을 해서 지식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식경제, 지식사회에서는 가장 최고의 생산요소가 두뇌이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우리가 우위에 있고, 그 사회를 주도하는 정신은 창조정신, 개척정신인데 창조성, 개척정신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보다 더 우월한 민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입니다.

: 17대 국회에서 지역구 말고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하실지 말씀해주세요.

: 지역이 국가고, 국가가 지역인데...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는 ‘통일한국’, ‘지식강국’이라는 국가 비전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함께 우리국가가 진정 지향해야 될 미래는 ‘통일한국’이요, ‘지식강국’이라고 하는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해 나가려고 하고, 그러한 비전과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정치세력의 결집을 위해서 노력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학생들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새로 생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을 빼고는 다른 정당들은 다 다녀봤어요. 그 정당들은 다 낡고 또 그 지도이념이나 국가 비전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21세기에 정말로 ‘통일 한국’과 ‘지식강국’이라는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성취해 낼 수 있는 그런 이념으로 뭉치고 결속된 정치세력의 형성이 긴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 그러면 그 의미가 신당인지요.

: 아마, 기존 정당들도 이합집산을 하던지 새로운 세력들도 참여를 하면서 되어야 하죠.

: 앞으로 어떻게 의정활동을 할 것인지요.

: 의정활동은 내 상임위에서 열심히 하고, 본회의에서는 5분 발언도 있고, 대정부 질문도 있는데, 그때마다 현 정부의 잘못된 노선과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투쟁을 계속 해 나아 갈 것입니다.

: 여기까지가 교수님께서 하라고 했던 질문이었구요.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뭐든 다 말하세요. 이렇게 만났으니까요. 대학교 3학년이면 신문에 나오더라고 post386이라고... (하하하) 시대가 자꾸 바뀌면 세대마다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달라지죠. 그리고 달라져야 되죠. 시대가 흐르는데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똑같을 수는 없죠.

: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인 이인제의원님의 지지자이셔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있게 봤습니다. 경선 탈락하실 때 그 원인을 김영삼대통령이 안밀어줘서 그런 것인지, 김영삼대통령이 이회창을 밀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당내 중진들이 이인제의원이 후보가 되면 자신들이 개혁의 대상이 될까봐 안밀어준 것인지.. 이런 여러 원인, 추측들 중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대체로 후자로 보면 맞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은 그때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있었고, 아들이 구속돼 있어서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고, 그 당시 신한국당(여당)에는 영남 패권을 추구하는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아까 내가 말한 전전세대, 해방전세대, 농업사회세대 등 구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영남패권 세력과 구세대가 이회창씨를 밀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래서 내가 그때 국민들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당내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죠.

: 그때도 여론조사가 1위였고, 민주당 경선때도 여론조사가 1위셨는데, 그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안밀어 주셨잖아요.

: 안밀어 준게 아니라 저쪽을 밀었죠.

: 네 노무현을 밀었잖아요. 그 이인제후보가 후보로 나감으로 인해서(97년 대선 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잖아요. 표가 분산되서..

: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지.

: 그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은인이신데 이후에 그런 결과가 나와서 그때 신한국당 탈당하고 민주당에 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셨어요.

: 나는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는 아주 오래 고뇌하고 나의 신념에 맡게 결정을 하기 때문에 그 후에 안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을 후회하는 일이 없습니다. 결과를 놓고 많이 교훈을 얻고 반성을 하지 후회는 안하려고 합니다.

: 의원님 사모님이 힐러리같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의원님이 보시기에 사모님이 정치를 해도 될 정도의 실력이 되시는 것 같은지요.

: 우리 집사람은 아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힐러리도 클린턴 처음 임기 때에는 악평을 많이 들었죠. 그러나 두 번째 임기 때는 힐러리가 평판이 좋아지고, 지금은 정치인으로 등장해서 상당히 촉망 받는 상원의원이잖아요. 힐러리가 악평 들을 때는 우리 집사람보고 힐러리 같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후에 평이 좋아지니까 힐러리 같다는 말을 안하더라구요. 우리 집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그리고 자기가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판단해서 행동하는 사람이지 그렇게 판단력이 흐린 사람이 아닙니다. 97년도 대선 때에도 양쪽진영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치탄압을 받았고 그 후에도 양대 세력에 의해서 늘 공격을 받다 보니깐, 특히 우리 집사람을 공격을 많이 했어요. 나 자신을 공격하기 보다는... 그래서 일방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잘못된 선입견이 많습니다. 우리 집사람을 한 번 만나본 사람들은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다 좋아합니다.    

: 이번에 북한 인권법이 통과됐는데, 찬성하시는지 반대하시는지요.

: 찬성하고 반대할 것이 없습니다. 북한 인권문제에 미국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반대할 성질이 아닙니다. 인권이라는 가치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북한 정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인류사회에 보편적인 가치로서 그것을 침해할 때에는 인류사회가 어떤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유신시절 인권문제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국제사회에 나가서 얼마나 호소를 했습니까.

: 지금 막 좌파나 열린우리당도 반대를 표명한거 같더라구요.

: 그분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분들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더 원칙을 가지고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남북대화라든지 남북협력에 있어서 그것을 이슈로 또 의제로 삼아야 하는데 자꾸 그것을 숨기고 뒤로 미루고 그러는 것입니다.

: 지금 저희 연대가 고교등급제를 한다고 문제를 갖고 있는데 사립학교의 학생 선발권이 교육부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님 자율권을 줘야한다고 보십니까?

: 나는 대학에 거의 제한 없는 자율을 줘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옛날부터 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학생의 선발, 교육, 또 교육방법이라든지 내용 이런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정부는 지원만 해주면 됩니다. 지금 연세대학교에서 고교등급제를 했네, 안했네 논쟁이 있던데, 그것이 어떤 고등학교를, 말하자면 합리적인 이유없이 차별하려고 한다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떤 객관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선발하는데 참고가 되었다면, 그것은 대학의 양심과 자율에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학생 하나하나를 다 자기들의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선발하잖아요.

: 그러면 아직도 대권에 대한 마음이 있으십니까.

: 정치를 하는 이상은 나의 정치적인 꿈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겠지요. 또 그것이 나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지금 딱히 대통령감이 없는 것 같은데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박근혜씨, 열린우리당은 정동영씨 이정도 되는데 자민련에서 또 나오시면 조금 힘들것 같은데, 이합집산이 안되면 자민련 타이틀로는 워낙 당이 작으니까 아무리 의원님이 그렇다고 하신다고해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 그것은 대통령선거는 지금 하는 것이 아니고 3년후에 하는 것이니까요. 3년후까지 나는 ‘한국사회가 격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국가를 이끄는 리더십의 본질이 국가를 정상적으로 잘 경영해서 그 성과를 가지고 국민들로부터 다시 심판을 받겠다, 이런 것이 아니고 사회 변혁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학생들은, 지금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국가를 정상적으로 경영해 보겠다는 것보다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겠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든지, 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대한민국 건국은 누가했느냐? 또 산업화를 누가했느냐? 그럼 그때그때의 사람이 뭐하는 사람들이냐?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은... 그러나 대한민국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 두개의 가치와 제도, 이것을 바탕으로해서 만들어진 나라잖아요. 과거에는 독재도 많았고 또 관치경제도 있었고 그렇지만은 그것은 우리나라가 다 자유민주주의를 향해서, 시장경제를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지,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정권은 없었잖아요. 다 그리 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선 어떻게 하느냐? 우선 경제 개발, 건설 먼저 해야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잠시 자유를 유보해야겠다, 이런 것이었지, 그런 것과 전혀 모순되는 다른 가치와 이념을 지향했던 나라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됐어요? 민주주의의 지평이 열렸고 그 다음에 시장경제궤도에 진입을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요. 세계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국가관, 역사관도 다릅니다. 그래서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고요. 그래서 아까 내가 이야기했듯이 ‘통일한국’, ‘지식강국’ 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나라가 통일이 안되고서는 떳떳하고 당당하고 위대한 나라가 될 수가 없잖아요. 우리끼리 나뉘어서 서로 싸우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리고 또 이런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는 통일이 되면 예상했던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 없어요. 다 더 좋아집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 되어야 하는데,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을 해가지고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식경제가 경제의 주류로 등장하고, 거기서는 그야말로 인간의 두뇌가 최고의 생산요소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식강국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통일과 지식강국이고 하는 이 국가목표를 향해서 우리 국민들이 마음을 합쳐가지고 나아가야 한단 말이예요. 그런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치세력을 이루어가지고 이 나라를 그런 국가목표를 향해서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가 등장해야 합니다. 거기에 나는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 예전에 의원님이 토론을 잘 하셔가지고 인기가 좋으셨는데 요즘에는 미디어, 그러니까 TV쪽에 토론이나 이런데는 잘 안나가시는 것 같던데?

: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죠. 지금은 새로 들어오신 분들이 다 나가고 싶어하니까, 그분들이 하셔야죠.(하하하) 나는 이제 앞으로, 안 좋은 일도 있고 그랬었는데 내가 10월21일날 재판 판결이 선고되니까 나의 결백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우선 국민들 한가운데로 나가서, 전국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과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리고 이제, 우리 국민들이 정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속에서 정말로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지고... 그다음에 이제 미디어에 등장하는 날이 오겠죠.

: 두 당에서요 당내조직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딸렸는지 아니면 윗세대분들에게 아부를 좀 안하셔서 그런 것인지 둘 중에서 어떠신거 같으세요? 아무래도 젊으시고 그러니까 당에 있었던 기간이 다른 후보보다는 짧아서 그런 것인지...

: 아.. 경선에 실패한 것이?

: 예.

: 아, (하하하)그래요. 우리나라 정치는 지금까지는 주로 지역 패권구도로 움직였어요. 정당 자체도 그랬고 또 실제 정당내부의 역학관계도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제일 큰 패권세력이 영남이고, 그 다음이 호남이고, 충청은 JP중심으로 자민련이 조금 있었으나 아주 급속도로로 약화되어 있었어요. 나는 영남패권세력이 주도하는 과거의 신한국당이나, 또 호남패권세력이 주도하는 새천년 민주당에 있었을 때, 역시 그 주류에 편입되기 보다는 나는 뭐, 충청이고 또 경기도에서 도지사를 하고 했기 때문에 결국 주류세력들과 일체감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은 그런 가운데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그런 구태의연한 정치를 표방했다면 일찌감치 충청도가 있는 당에 와가지고 충청지역패권을 거머쥐고 그런 일을 했겠지요, 그러나 한국정치가 지역패권,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정당들에 속해있었고 결국은 그런 지역패권중심으로 움직이는 당내 역학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당을 새로 만들고 이념중심으로 정치를 하면서 사회변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반동으로 야당쪽도 지역패권은 약해지고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그런 이념이나, 노선이나 정책이나 이런 것들 중심으로 재편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 지역보다는 아무래도 이념으로....

: 그렇습니다.

: 그런데 의원님은 우파이시잖아요.

: 난 중도우파쯤에 해당하지요. 우냐 좌냐 이제는 여러 가지 스팩트럼으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과거의 스팩트럼은 효용이 떨어졌어요. 잘 맞지를 않습니다.

: 사람마다 워낙 다르니까요.

: 아니, 사회 ․ 경제적인 판이 달라져가지고요...

: 그때 FTA, 한.칠레 자유무역협상 비준동의안에 반대를 하셨는데요.

: 나는 본질적으로는 찬성인데, 다만 그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FTA를 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농민들이 있잖아요. 과수농가라든지.. 이런 분들에 대한 지원하는 법률안이 상정되어 있었어요. 그것과 같이 해야지.. 그런데 그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회의도 못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거기서(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를 안하는데 왜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비준동의안을 먼저 처리를 하느냐? 난 찬성이지만. 같이해야지... 그런 차원에서 반대를 했던 것이지 FTA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 마지막으로요, 저희가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입니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조언을 해주시면요.

: 난,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학 책은 조금 읽어봤지만요... 정치학도 주로 서양에서 발달한 학문을 가지고 공부하겠는데, 물론 기초원리라든지 분석의 도구라든지 이런 것들은 잘 연마를 해야 되겠죠. 그러나 결국은 한국사회의 정치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되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현실, 현실속에는 과거도 들어있고, 미래도 들어있는 것이니까, 그 부분에 관해서 실증적인 관심을 많이 가지고 연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자료들, 통계를 가지고 토론도 하고... 그래서 명분이라든지 추상적인 이론에만 의존하면 결론이 이상하게 나올 수 있으니까, 명분과 추상적인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체, 실존에 관한 인식을 항상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모든게 다 흐름이니까요. 추세니까요. 현재 ‘정치적인 의식이 이렇다’ 그렇다고해서 그것만 가지고 분석을 할 수 없어요. 과거에 어떤 변화의 추세를 보여왔는가. 변화의 원인에는 사회, 경제적인 어떤 충격이 있었는가. 이런 것에 관해서 아주 입체적인 이런 접근태도를 늘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학문이 책속에 아카데믹하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현실과 만났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정치 분야에 필요한 자료나 통계를 늘 확보해가지고 서로 나누어보고 그리고 그 흐름으로써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이런 능력을 갖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 바쁘신데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오랜만에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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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8)

오, 우리의 大地!  오, 나의 스승!


   ‘주여, 들판에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귀가 입 안을 맴돈다. 따사로운 햇볕은 신의 은총처럼 쏟아지고, 싱그러운 바람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아! 마지막 결실을 재촉하는 저 들판, 들판!  

   그 풍요로운 대지의 가슴 위를 달려 찾아 가는 곳, 우리의 고향이다. 오늘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날,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께, 그 부모를 낳아준 조상들께, 우리를 키워준 고향의 山河에게, 저 알곡을 영글게 하여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자연에게, 우리의 정신을 살찌워준 스승에게 그리고 우리를 두발로 서 있도록 허락해주고 숨결을 불어 넣어주는 이 풋풋한 대지에게, 가슴을 열고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9. 28 추석 아침 부모님이 땀 흘리며 일하시던 벌판을 바라보며 나는 오랜만에 어머님의 품에 안기는 안온함을 느낀다. 거친 풍파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고향의 품 안에서 나와 같이 넉넉한 마음을 가지리라.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간다. 우리 집 종손인 초등학교 3학년 내준이도 따라 나선다. 나에게 어머님이 그에게는 벌써 증조모이시다. 아, 세대의 흐름이 이토록 빠른 것을! 에이브러햄 링컨이 항상 중얼거렸다는 말이 떠오른다. ‘죽어야 할 숙명의 인간들이 왜 이리도 당당한가!’ 종산 군데군데에 들어서 있는 역대 조상님들의 묘역을 나이 어린 증손자와 함께 돌아보며 삶의 엄숙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짧은 생애의 인간들이 조상과 후대들을 생각하며 더 겸허하게 자연의 섭리를 받들어야 한다는 믿음이 오늘 추석 아침 나만이 갖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대지의 아들들이다. 이 산 저 산을 찾아 성묘하는 사람들을 보라. 흙으로 돌아간 조상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허락된 시간을 살고 나면 어김없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흙으로부터 생명이 주어지고 대지의 기운으로 살아가기에 말이다.

   어릴 때 살던, 지금은 헐려 없어진 옛 집터를 찾는다.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동산에 오른다. 인자한 웃음으로 나를 사랑해주던 어른들이 분주하게 오가던 골목길을 걷는다. 추억은 생생한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시간의 파도가 몰고 오는 변화의 엄숙함이다. 오!  모든 것이 하나이다. 사람도 대지도, 삶도 죽음도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로 만나는 추석은 최대의 명절이다. 오늘 우리는 문명을 떠나 그 먼지를 잊고 고향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초월한 자연의 품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산 자도 죽은 자도, 이 대지의 넉넉한 품 안에서 둘이 아닌 하나로 만난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 우리의 어머니 대자연에 감사를 드린다.

   대지가 나의 몸을 살찌워준다면 스승은 나의 정신을 살찌워준다. 그래서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그 절반은 스승들의 은덕(恩德) 위에 서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추석, 대지와 더불어 스승께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体)라 했던가. 땅을 임금이요 국가라 한다면 국가와 스승과 어버이가 하나라는 이 가르침은 오늘에도 변함없는 진리라고 믿는다.

   나는 대학생활 4년을 거의 학생운동에 헌신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사법시험 준비를 소홀히 하였다. 결국 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관으로 군에 가지 못하고, 일반병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사병으로 군을 제대한 다음 해 나는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면접시험이 문제였다. 비록 형식적인 절차였으나 그 때까지 남아있던 연좌제와 반독재 학생운동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 면접에서 불합격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는 유신 말기의 험악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비록 내가 학생운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일은 없었으나 그래도 일말의 불안을 느끼며 면접시험장에 나갔다.

   그 곳에는 4명의 면접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중 한 분이 헌법학자이신 나의 스승 김철수 교수였다.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시며 첫마디가 “자네는 문제없어. 문제가 있는 사람은 미리 메모가 전달되는데 자네에게는 그런 메모가 없다네. 수고 많았지. 앞으로 잘하게.”

   스승은 합격자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을 미리 알고 혹시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면접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것이 틀림없다. 그 때 나는 나에게 문제가 없어 안도하는 마음을 가지기보다 졸업한지 오래된 제자를 걱정해주시는 스승에게 너무나 감동하고 고마워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전 나는 그 스승 김철수 교수를 만났다. 몸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글을 통해 만났다. 이제 칠순이 넘으신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교수님! 단 한번도 명리(名利)를 좇아 외도를 하지 않으시고 오직 상아탑 안에서 제자를 가르치시고 헌법학 발전을 위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 대학자! 내 비록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그 스승에 대한 경외심을 한시도 잊어본 일이 없다. 나는 그 분으로부터 네 학기 헌법학 강의를 들었는데 기이하게도 모두 A학점을 받았다. 학생운동으로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해 다른 과목의 학점은 신통치 못했지만 유독 헌법만은 모두 A학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분의 미소와 만나지 못하고 그 분의 걱정과 울분을 만났다. 이제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관조(觀照)하며 진리를 말씀하셔야 할 고희를 넘기신 노교수께서 격정의 노여움으로 토하시는 울분과 마주친 것이다. 이 얼마나 면구스러운 일인가. 더욱이 스승께서는 잘못된 정치를 호되게 꾸짖고 계신다. 정치하는 제자로서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숨으려 해도 숨을 곳이 없다.

   최근 모 잡지에 발표한 ‘최후의 헌법수호자인 국민이 일어나야 한다’는 글에서 교수님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헌법의 위기를 극명하게 해부한다.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헌법수호의 최후수단인 국민의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나는 스승 김철수 교수로부터 헌법의 정신을 배웠다. 입헌주의, 법의 지배, 3권분립,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국가 권력과 국민의 행복에 관하여 배웠다. 가장 모범적이었던 입헌주의 헌법 바이마르공화국헌법이 히틀러의 나찌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도 배웠다.

   그런데 교수님은 지금 우리 헌법의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고 걱정하신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헌법수호의 최고책임자로서 헌법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 대통령에 의해서 말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한데에는 교수님의 제자인 나의 잘못이 너무나 크다. 싸우긴 싸웠으되 왜 더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는지 후회가 막급하다.

   김철수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권위주의적 대통령제가 지배하고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가 여당을 움직이고,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여당이 야당과의 타협 없이 다수의 힘으로 제압하려 드는 현상은 법치주의와 입헌정치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위헌적 행태를 적시하면서도 탄핵결정을 기각했던 헌법재판소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하고 입헌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쳤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면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현실 정치 논리에 밀려 탄핵결정을 회피한 결과, 제왕적 대통령제와 코드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됐다.”  “남북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위한 법률이 제정되거나, 헌법상 영토조항을 없애는 헌법 개정이 발안될 수 있다........민족공조를 주장하는 통일지상주의자, 북한의 인권탄압에는 눈을 감으면서 남한의 과거 인권탄압을 청산하겠다는 자칭 진보세력,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북핵개발을 허용하겠다는 친북행위자 등이 발호하고 있는 터에......한국의 좌경화 내지는 북한과의 동질화, 공산통일까지 가능할지 모른다.”  “이런 암담한 장래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고,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이 절실히 요망된다. 국민은 ‘최후의 헌법수호자’로서 헌법 보장에 앞장서야 한다.”

   김철수 교수는 절규하듯 이렇게 호소한다. “국민은 헌법보장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가권력이 위헌.불법적으로 행사되는 경우에는 저항권을 행사하여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 우리의 자유민주 체제를 지켜낼 수 있는지 여부는 온 국민의 헌법 수호 의지에 달려 있다. 한 개인은 무력할지라도 국민 개개인이 의지를 모으면 그 힘은 엄청나게 커진다.”

   오, 한 평생을 헌법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 오신 원로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 나의 스승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이 메시지를 읽으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결심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하면 정(正)이 된다. 불의에 저항하면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다. 김철수 교수는 헌법의 가치가 파괴되는 이 암울한 국가위기 앞에서 용기 있게 행동할 것을 우리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다.

   추석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며 위대한 대지와 어버이 같은 스승의 숨결을 다시 느껴 본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대지! 불의에 저항하여 이 땅에 정의를 세우라고 외치는 스승! 나의 가슴은 다시 넓고 뜨거워지기만 한다. 나는 일어서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일어서야 한다. 위대한 조국과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암담하게 현실을 짓누르는 이 먹구름을 밀어내버려야 한다. 야만이 문명을 삼키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2004. 09. 28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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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7)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생각의 힘은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로부터 나온다. 또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것처럼 ‘사회적 동물’이다. 결국 사람들은 사회적 공동체로서 국가를 이루며, 자기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부단히 사고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이념과 체제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것이 한 나라의 역사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념논쟁이 한창이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지겨워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제 와서 이 논쟁을 피할 수도 없다. 아니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치열하고 빠르게 이 논쟁을 종결시켜 나라의 이념과 사회의 가치를 한 차원 높이 고양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 안보의 불안, 경제의 침체, 사회의 무질서 등 온갖 병폐가 따지고 보면 바로 이 이념과 가치의 문제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보자! 지금 정권을 잡은 세력과 그들의 전위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념적 정체를 ‘진보’라고 자처한다. 과연 진보인가. 그렇지 못한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보자! 지금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야말로 ‘보수’라고 자부한다. 과연 보수인가. 그렇다면 왜 저들이 이들을 가리켜 ‘냉전 수구 꼴통’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는데도 이 말이 대중들에게 먹혀드는 것인가. 우리는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사람의 가치지향을 규정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근대사회가 성립되면서 등장한다. 특히 근대사회의 경제체제인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냉전이 격화되면서, 진보와 보수는 사회발전을 이끄는 양대 축(軸)의 개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봉건사회로부터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 시민사회를 이끌어낸 유럽 사회에서 무리 없이 통용될 수 있는 설명이다.

   이민 개척자들이 자유의 정신으로 나라를 세운 미국 사회에서는 아예 사회주의 자체가 힘을 얻지 못하여 유럽과 같은 진보의 개념도 사회 발전의 축을 이루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progressive가 아닌 liberal이 보수(conservative)에 대칭을 이루고 있다. 미국 사회의 liberal이 유럽 사회의 progressive와 다른 개념임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은 어떠한가. 한반도를 놓고 보면 치열한 냉전구도가 아직도 해체되지 못하고 있다. 남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냉전체제하에서 이를 부정하는 반체제세력은 지하에 숨어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북과 연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세력들은 그동안 여와 야로 나뉘어 투쟁해 왔다. 한편은 상대를 독재로 몰아 세웠고, 다른 한 편은 경제 건설이 우선이라며 자유의 유보를 합리화 시켰다. 이렇게 그동안 제도권 안의 정치세력은 크게 보면 그 가치 지향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편은 권위주의적이었고, 다른 한편은 이를 해체하고자 투쟁하였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산업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우리 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다원화되어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의 전통적인 좌파정당과 같은 정당이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게 되었다. 또 과거 반체제 운동에 젊음을 바쳤던 세력의 일부가 정권의 핵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제도상으로는 완성되었는지 모르나, 권력의 문화나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는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된다. 시장경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도 개발경제시대로부터 힘겹게 시장경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구체적 모순들은 저 유럽의 자유로운 시장으로부터 생겨난 모순과는 판이하다. 오히려 국가권력의 개입과 간섭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유럽에서의 진보란 시장을 지배하는 자유의 과잉으로부터 생겨난 모순, 이를테면 빈부의 격차, 사회적 불평등 같은 잘못을 사회주의적 원리를 제한적으로 적용하여 시정함으로써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념적 지향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모순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럽 사회의 모순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원리를 들고 나온다면, 우리가 그러한 주장에 진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한 태도는 그저 사회주의적이거나 반체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궁극적인 가치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국가권력이 넘치는 시장과 독재가 판을 치는 사회를 통해 기득권을 키워온 사람들이 마치 보수의 상징인 것처럼 행세한다면 이 또한 중대한 착각이다. 보수란 가능한 한 시장과 사회에 자유가 넘치도록 하려는 가치지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그들이 보수를 외쳐도 힘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인류문명도 마찬가지이다. 변화의 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계화와 지식화이다. 국민국가시대가 해체되고 지구촌시대가 다가온다. 산업문명으로부터 지식문명이 밝아온다. 이제 모든 국가, 기업, 국민들이 이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말하자면 판(板)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앞서가는 나라들에서는 과거 이념의 스펙트럼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이 내세우는 ‘제3의 길’, 독일 사민당이 표방하는 ‘새로운 중도’는 이 이념적 과도기에서 겪는 혼란과 고민을 상징하는 개념들이다. 당연히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서 사회주의 본영(本營)은 와해되었다. 중국은 점진적으로 현대화 개혁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므로 사회주의 골격이 유지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경제는 물론 정치도 종국적으로는 다원주의로 나갈 것으로 믿는다. 쿠바와 북한만이 변화의 물결을 거부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사회에 더 이상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이나 열정은 살아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피폐한 인민의 삶과 앙상한 권력의 독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좋든 싫든 그것은 객관적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나 사회주의적 원리를 내세우며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관하여 무지하며, 세계 변화에 둔감한지를 자각해야 한다. 그들의 태도는 과학적으로 분석할 때 진보(progressive)가 아니라 퇴보(regressive) 또는 퇴영(retrogressive)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와 체제를 따른다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21세기 지식강국으로 가겠는가, 낙후된 과거로 가겠는가. 미래가 없는 허구의 이념에 더 이상 우리 사회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체제의 실체를 내세워야 한다. 특히 과거 독재와 관치경제의 특혜를 누렸던 사람들은 통절한 자기성찰 위에서 자기가  헌신할 비전과 가치를 명백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저 기득권에 집착해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거나 맹목적 반대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의 실체를 포장하는데 적절치 못하다. 참다운 진보도, 진정한 보수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 한 가운데 있을 뿐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여러 모순들을 해결하며 부단히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치와 체제야 말로 참다운 진보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성공한 역사로 평가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 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면, 그러한 신념은 진정한 보수이자 동시에 진보를 의미한다. 우리의 미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세계화와 지식화에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는 현재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 역사를 전진시키려는 세력과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세력이 충돌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참으로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다. 오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냉혹한 세계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유럽 사회에서, 그것도 지난 시대에나 통용되던 진보라는 빛바랜 깃발을 가지고는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후퇴시켜 우리 모두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우리 젊은이들이 이 진보라는 허구의 울타리에 더 이상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참다운 역사의 진보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허구의 진보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뭉쳐 싸울 줄 안다. 또 교묘한 위장과 기만에 능하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숨기고 끊임없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한 발짝씩 목표에 접근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각심을 높여 그들과 싸워야 한다. 그들의 정체를 여지없이 폭로하며 무엇이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길인지를 국민들께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이 싸움의 승패가 21세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기회의 평등, 시장경제, 자주적인 세계화, 지식강국 그리고 이러한 가치 중심의 통일국가 건설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러한 가치를 위해 우리 모두는 단결하여 싸워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 길이다.

2004.  9.  2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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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6)

한강은 흐른다


  성큼 가을이 다가왔다. 하늘은 높아지고, 바람은 상큼해진다. 아침 약속이 없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 집 앞에서 탄천(炭川, 성남 방면에서 흘러와 올림픽 경기장 앞에서 한강으로 합류되는 지천)으로 나오면 국회의사당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막힘없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이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흐르는 한강과 나의 몸이 하나가 되는 기분에 젖는다.  소리 없이 도도하게, 유유히 흐르는 한강! 그 한강과 일체가 되는 희열에 피로를 느끼지 않고 여의도에 진입한다.

  한강 고수부지 곳곳에 비둘기들이 무리지어 먹이를 좇는다. 언제 보아도 비둘기는 그 부드러운 자태로 평화 그 자체를 상징한다. 번영, 평화, 하나 되는 통일! 소리 없이 흐르는 한강과 강변을 노니는 비둘기, 그리고 풍요로운 결실을 재촉하는 따가운 햇살의 가을 하늘! 이 위대한 자연의 앙상블 속을 질주하다 보면, 우울했던 마음은 어느새 희망으로 채워진다.

  아, 내가 구치소 독방의 창가에서 부화와 성장을 도우며 함께 지냈던 비둘기 가족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고독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나라는 60, 70년대 눈부신 산업화의 성공을 이룬다.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경제 성장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승전한 영국과 프랑스를 따돌리며 비약적인 경제부흥을 이루자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한강의 기적이 훨씬 더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비록 잿더미가 되었지만 산업사회의 전통과 훈련된 국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진정한 의미의 기적일 것이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라인강은 무슨 의미로 쓰일까? 내가 독일 사람들로부터 들은 바는 이렇다. 라인강은 자연의 수로로서 통일 전 서독의 물류를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었다. 화물 물동량은 거의 60%를 감당했다고 하니 믿기 어렵다. 이렇게 건설비도, 유지비도 필요없는 천혜의 자연 수로인 라인강 덕분에 기적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후 독일의 경제 기적은 라인강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한강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눈부신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낸 우리 ‘국민’ 또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상징한다. 저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는 우리 민족의 숨어있던 웅혼의 기상이 폭발하고, 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속에 녹아 있는 우리 국민의 열정과 근면함이 충일(充溢)한 결과, 기적같은 산업화의 성공이 가능했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도 한강은 흐른다. 한반도가 만들어진 그 날부터 지구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한강은 쉬지 않고 흐른다. 인류가 창조되면서부터 이 유역에 터전을 잡고 살아 온 우리 민족 또한 끝없이 문명을 진화시키면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온 인류가 기적이라고 칭송하는 산업화의 기적을 만들어 낸 역사를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며 흐를 것이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성공의 역사를 지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모두 아는 바대로 급속한 산업화의 그늘은 독재였다. 그러나 그 독재가 내세우는 명분은 경제성장이요, 자유민주주의이며 시장경제였다. 인민을 굶겨 죽이고 권력을 세습하면서 이미 실패한 이상(理想)으로 판명이 난 낡은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북의 이념독재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산업화의 성취와 더불어 민주화의 역량을 키웠고, 투쟁을 통해 마침내 민주주의의 지평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하나의 조건 또는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 질서, 문화, 가치 등 알맹이를 채우고 발전시켜 나갈 때,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국민의 행복은 증진된다.

  이렇게 우리의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하는 놀라운 성공의 역사이다. 다만, 민주화를 이끌어 온 세력이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한 1993년 이래 새로운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탁월한 전략을 세워 단합된 국민의 힘으로 이를 추진해 왔느냐이다. 누구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하리라. 오히려 절망하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생각해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나 또한 엄중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어디에 그 원인이 있을까.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독재가 사라지면서 끝이 난다. 더 이상 싸울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미래를 위해 창조와 개척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난 민주화 정권들은 사라진 독재의 그림자와 싸웠고, 미래의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마련하는 데 게을렀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국가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이다.

  그것도 모자라 현 정권은 아예 성공의 현대사를 주도해 온 모든 세력을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매도하고, 이들을 무대에서 밀어내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해서 무엇하느냐며 날을 세운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독재와 권위주의의 그림자와 전쟁을 선포하며, 나아가 이미 화석화 된 일제시대 역사까지 파헤치려 한다.

  산업화의 역사뿐만 아니라, 건국의 역사까지도 송두리째 부정해버리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성공한 역사를 발판으로 미래를 향해 질주해도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국의 추격에 고전을 면치 못할 판인데, 과거를 향해 돌진하며 내부의 분열과 대결을 고취하니, 오, 나라의 장래는 어찌되는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예견된 것이었고, 필연이었다. 나는 2002년 경선 당시부터 국민들에게 오늘의 운명을 말씀드리며 호소하지 않았던가. 오늘 보도를 보니, 국가의 원로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친북 반미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내가 얼마나 소리쳐 경고했던가. 친북 반미 세력은 안보를 무너뜨리고, 급진좌파는 경제를 붕괴시켜, 국가를 재앙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늦었지만, 그래도 성공의 현대사를 이끌어 온 원로들이 국민과 역사 앞에 용기 있게 올바른 말씀을 해 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넓게 보자. 개인이나, 회사나, 국가의 진운에 우여곡절은 있는 법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도 그 원인을 우리 사회 안에서  키워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극복하면 될 일이다. 극복은 부드럽지만 빠르게 해야 한다. 저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을 보라.  부드럽다.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쉬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대해에 합류한다.

  오늘 우리에게 직면한 이 역사의 도전에 당황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국민 아닌가.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권력은 국민이 세우고 국민이 허문다. 우리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이 국민의 위대한 주권으로 계속하여 시대에 맞는 권력을 세워 왔다. 권력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주권자를 배반할 때, 국민의 위대한 힘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리하여 쉬지 않고 진화를 거듭할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 그 한강이 소리 없이 흐른다. 위대한 국민의 힘이 넘친다. 무서운 주권자의 결단이 일렁인다. 역사를 두려워하라! 나는 한강을 달리며 온 몸으로 오늘을 받아들인다. 한강은 말한다. 또 한번의 기적이 필요하다고. 번영과 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한 또 한번의 기적! 그 기적을 위해 오늘의 시련은 약이 될 수 있다고!

  온 몸이 땀으로 젖는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침묵으로 던지는 소리에 나의 마음도 흠뻑 젖는다.


2004.  9.  10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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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5)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주적론 그리고 역사


   인간의 몸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곳은 어디일까? 아마 두뇌일 것이다. 사람의 사고와 판단, 즉 생각을 담당하는 기관이 두뇌 아닌가. 생각은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한다. 경직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뒤쳐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신(神)이 두뇌를 가장 부드러운 조직으로 만든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자유를 최고의 덕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사상의 자유를 존중한다. 다른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경제 등 사회과학의 분야에서도 끝없이 새로운 변화를 흡수하며 새로운 꿈과 비전을 제시해 나가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주적론 그리고 우리의 근대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봇물을 이룬다.

   나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사고(思考)하며 자신의 입장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고는 부드러운 두뇌가 하지만, 그 두뇌를 무엇이 둘러싸고 있는가?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두개골이 가장 부드러운 두뇌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두뇌가 손상되어 사고 그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적 상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연구 단계를 지나 실천의 영역에 이르면 사상의 자유를 감싸는 어떤 틀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 틀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우리나라가 근거하는 정통성과 정체성이다. 물론 시대를 초월하는 영구불변의 가치나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다.

   며칠 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건의하고, 다음 날에는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상의 말썽 많은 찬양고무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폐지를 추진하는 여당 안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한번 자유로이 상상해 보자. 이 법은 물론 분단과 냉전의 산물이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성 있는 국가이고, 북한은 이를 부정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법이다. 해방 이후 냉전이 격화되면서 적어도 70년대 말까지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세(勢)를 키워 나갔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의 공세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현실적 필요성이 높았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이 법이 유지되었다.

물론 이 법은 본래의 목적에만 동원되지 않고 역대 독재 정권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남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작용이고 그림자였지,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의 목적이 정당성을 잃거나 그 실체를 부정당할 수는 없다.  

    그러면 지금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할 만큼 시대상황이 변화했는가. 물론 범지구적으로 보면 냉전은 해체되었다. 국제공산주의운동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큰 위협은 소멸된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반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군사적 대치와 긴장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이 핵을 개발하면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 정세 전체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객관적 사실은 누구나 인정해야 한다. 정치, 경제 등 비 군사 분야에서의 화해와 협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더라도, 여기에서 막바로 현존하는 위협에 눈을 감는 것은 지혜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큰 화를 자초할 우려가 높다. 만사는 불여튼튼이라 한다. 하물며 안보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한반도의 정세와 남북관계의 변화가 본질적으로 이루어지면 국가보안법은 한 시대의 유물로 역사의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역대 독재 정권들이 이 법을 남용함으로써 아무 이유 없이 고통을 받으셨던 분들에 대하여는 심심한 위안의 말씀을 드린다. 국가는 그 고통을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성의를 다해야 한다. 아직도 시대상황과 남북관계의 현실이 이 법의 존립을 요구하고 있다면, 인권유린이라는 과거의 악몽 때문에 이 법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문민정부 이래 민주주의 정권에서 이 법의 남용으로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해석의 차이로 사상의 자유를 불필요하게 제한하고 이로 인해 인권이 침해당할 우려가 있는 이른바 독소조항은 개정되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명분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 일환이라고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전에 한국정부와 충분히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한국 국민들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급속하게 철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것은 노 정권이 말리기보다는 오히려 당연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쉬지 않고 철수를 주장하던 평양이 막상 철수가 이루어지니 당황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인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나 우리의 국익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미국의 유명한 한반도 전문가 부르스 커밍스 교수가 한반도의 미군주둔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수정주의 사관의 주창자로서 이 땅의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배경이었고, 과거 한반도로부터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해온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시대상황의 변화로 이제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깊이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시점에서 적어도 유연하게 생각을 바꾸고 있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실적인 힘이다. 이것이 필요 없다면 모르지만, 필요하다면 이 정권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 그들은 침묵하며 속으로는 사태의 발전을 즐긴다. 내세우는 것이 자주(自主)인데, 그러면 대규모의 미군 주둔을 허용하는 일본과 독일은 자주를 외면하는 나라인가.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사건은 터지게 되어 있다. 이제 누구를 믿겠는가. 우리 국민들이 냉철한 이성으로, 무서운 눈으로, 슬기롭게 대처하는 길 밖에 없다.

   주적론(主敵論)에 관하여 논쟁이 끊이지 않더니 국방부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요즘은 논쟁 자체가 없다. 대한민국의 70만 대군은 어디를 향하여 총을 들고 있는가. 북의 110만 대군의 총구는 또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얼마 전 서해상에서 경계를 침범한 북의 경비정을 대포를 쏘아 물리친 우리 군에 대해 이 정권이 서슬 퍼렇게 몰아붙이던 일을 잊지 못한다. 결국 그 일로 우리 국방장관과 3성장군의 목이 달아났다.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을 쫒으면 나라의 안보를 지킬 수 있는가. 나는 물론 군사적 대치와 긴장의 완화를 지지한다. 군축을 비롯한 군비통제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것을 반대하고 핵을 개발하는 것은 북이지 우리가 아니다. 무엇에 쫓겨서 주적론을 폐지하고 군의 사기와 정신무장을 와해시키는 것인지 묻는다.

   앞에서 말한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주적론은 사실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이다. 북은 끊이지 않고 이 법을 폐지하고, 미군을 철수하고, 주적론을 없애라고 주장해 왔다. 북의 대남 전략에서 보면 적어도 이 세 가지 주제는 하나의 패키지인 셈이다. 북은 왜 그런 전략을 구사할까. 진정한 평화, 화해와 협력을 원해서일까. 아무리 관대하게 해석하려 해도 그것은 현실도 아니요, 과학도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고 불신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전략의 의도는 다른데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번영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나아가 북의 전략 전술에 말려드는 것은 더욱 안 된다.

   강물은 자유롭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둑을 넘거나 역류하도록 방치하면 재앙이 닥친다. 마찬가지로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논의와 실천은 국가의 번영과 통일이라는 목표를 일탈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1988년 당시 통일민주당을 대표하여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대체입법을 주장한 일이 있다. 당시는 1978년부터 중국이 현대화를 향한 개방과 개혁을 가속화하고,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고 있었다. 동구 공산주의도 급격히 붕괴되면서 사회주의 진영이 근본적으로 모습을 달리 하던 때이다. 그런데 당시 북의 개방과 개혁이라는 변화를 위해서 우리의 역량이 들어갈 통로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완전히 막혀있는 실정이었다. 지금은 남북교류협력법이 만들어져 이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정세는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았다. 북은 핵을 개발하면서 정세를 더욱 긴장시키고, 남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폐지를 서두를 때가 아니라, 필요한 부분의 개정을 생각할 때라고 믿는다.

   권력은 미래를 향해 역사를 창조해야지, 지난 역사를 다시 쓰고 자기의 관점에서 평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금기(禁忌)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지금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이고 있다. 어찌하면 좋을까. 나는 지금 그들에게 “역사를 두려워하라,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주적론은 어제와 오늘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일 한반도의 운명에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일의 역사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나의 조국인가, 우리 국민이 빈곤과 독재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추구해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우리의 희망은 전체주의에 있는가 아니면 민주주의에 있는가.

   불행히도 뻔히 답이 정해져 있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가슴 속에 확신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해 번영을 이루며 민족의 대통합으로 위대한 조국을 건설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는 사회를 발전시키며, 그러기 위해서는 결코 전체주의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이러한 신념에 도달하면 오늘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여러 문제들은 모두 올바른 방향으로 풀리게 되리라 믿는다.



2004.   8.   30

이     인     제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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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4)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기업 활력 40년 만에 최저”  오늘 아침 유력 경제 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어 4면에는 “시장경제 맞나”  “뭐가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경제 5단체장과 여당의 회동에서 벌어진 신경전을 묘사하고 있다. 또 얼마 전 이른바 386사람들 때문에 우리 경제가 안 된다는 주장을 폈던 이헌재 경제 부총리가 386출신 의원들이 주선한 자리에 참석하였으나 ‘싱거운 만남’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기사도 보인다.

  경제(經濟)란 무엇인가?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경영하여 백성을 잘 살게 하는 일이 곧 경제이다. 꼭 물질적 기초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모든 것이 경제의 목표이다. 오늘 우리 국민들의 생활이 황폐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경제가 잘못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 특히 현대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상호의존관계가 한없이 깊어만 간다. 단순하지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어떤 증상(症狀)이 나타나기 전에 문제를 미리 예측하고 대처해 나가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증상이 나타난 후 원인을 찾고 처방을 해나갈 때에는 이미 늦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얼마 전만 해도 경제위기를 언급하는 일조차 죄악시하였다. 어디가 아파도 증상을 호소하지 말고 곧 좋아진다는 낙관론에 안주하면 된다고 국민을 기만하였다. 아니 사상 유례가 없는 혹독한 불경기로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을 언제까지 속일 수 있다고 믿었는지,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구치소에 갇혀 있을 때 “애덤 스미스 구하기 (Saving Adam Smith)"라는 책을 읽고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이자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흥미진진한 구성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는 물론 정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로운 시장을 신봉하는 사람이지만, 경제활동에 있어서 덕목(Virtue)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는 철학자였다.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시장도 도덕적 긴장이 없다면 결코 정의로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는 나의 신념을 확인시켜 주었다.

보자! 우리 경제 시장에서 아주 비중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이른바 대선자금 수사를 통하여 기(氣)가 죽어 있었다. 그러다 검찰이 수사를 끝내면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그들이 한숨을 돌리게 하였다. 그 일이 있고 바로 얼마 뒤 청와대에서 그 총수들을 불러 모아 무슨 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끝난 후 각 총수들마다 앞으로 얼마를 투자하여 일자리를 몇 개 창출하겠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 모습을 TV와 신문을 통해 보면서 내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가운데 민간 경제의 최고 경영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한다는 것도 괴이한 일이려니와 그 자리에서 그 경영자들이 줄줄이 투자계획을 발표하다니! 애덤 스미스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가 아니라 무슨 계획경제를 하는 나라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개발경제시대 박정희 전 대통령도 민간 경제지도자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투자계획을 발표하도록 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법이다. 그 때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기업이 경제 논리로 투자를 하는 것인데 권력자 앞에서 약속했다고 실제로 투자를 하겠느냐, 다 쓸 데 없는 짓이다’라고 말하였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난 것처럼 이 땅의 기업인들은 지금도 정부를 향해 ‘시장경제가 맞느냐’고 질문하고, 정부측 사람들은 ‘기업이 투자 여력이 있으면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시장 메커니즘은 헛바퀴를 돌고 있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믿음이 없는 곳에 질서와 활력이 살아날 수 없다.

  며칠 전 종로2가 관철동의 커피 집에 간 일이 있다. 무더운 날씨인데도 거리에는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외양으로는 그런 대로 활력이 넘친다. “장사가 어떠세요?”  내가 물었다. “모두 다 관철동 생긴 이래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사장이 답변을 하는데 마침 동석하고 있던 건물의 주인이 “지금까지 이 건물에 세를 얻으려면 기다려야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세 든 사람이 나가겠다고는 하는데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이런 일은 지난 30년 동안 처음 있는 현상입니다.” 라며 한숨을 짓는다.  

해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가 65만명 정도이다. 이들 가운데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아 희망을 키우는 젊은이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으나 아무리 관대하게 계산해도 반을 넘지 못할 것이다. 벌써 몇 해째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가?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간다. 아마 놀고 있는 젊은이가 없는 가정이 없을 것이다. 젊은이가 몇 년간 놀게 되면 후일 경제가 좋아져 일자리가 생겨도 그 젊은이는 갈 곳이 없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의 절망이 커진다. 어디 젊은이뿐인가. 실업이 확대되고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장애인들이 실업의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해외이전, 폐업, 도산이 줄을 잇는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직면하는 것은 미리 꺼내 쓴 카드 빚을 갚지 못해 발생하는 신용파탄이다. 벌써 400만 명이 신용파탄에 이르렀는데 재취업의 길이 막혀 있으니 그 질곡에서 헤어날 길이 막막할 뿐이다. 그러니 소비수요는 점점 활력을 잃어 갈 수 밖에 없다. 요즘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참으로 잘못된 비유이다. 일본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주머니는 가득 차 있는데 그 주머니를 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주머니가 텅텅 비거나 아예 빚에 쪼들려 있어 소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불황을 몰고 오는 원인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것이다.

  1997년 우리 경제에 일대 위기가 폭발하였다. 사람들은 그 때 그 위기를 6. 25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고 말하였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을 회수하는 바람에 외환 쇼크가 일어난 것이다. 경제를 운용하는 관료들은 물론이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도 쇼크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위기의 실체를 경고하는 전문가도, 기관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무지몽매한 국가경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경제가 어떤 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정확히 진단하여 경고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저 위기다, 큰일 났다, 하는 소리만 무성하다. 이러다 어느 날 또 무슨 사태에 직면할지 마음이 어둡기만 하다.

  투자, 고용, 생산, 소득, 소비의 선순환(善循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고, 고용은 이루어지지 않아 실업은 확대되고, 생산과 소득은 감소되고, 소비는 따라서 위축되는 악순환(惡循環)이 계속되면,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 위기는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기는 97년 외환분야의 쇼크 정도가 아니고 경제의 뿌리가 썩어 나무 전체가 붕괴되는 무서운 재앙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외환위기 때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 위기를 극복했던 때와는 달리 위기극복의 방도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97년 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가 지불한 대가가 얼마인가. 하지만 새로이 터질지 모르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지불해야 할 대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국가와 같은 경제파탄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이 또한 적절한 비유가 되지 못한다. 그들 나라들은 광대한 국토를 갖고 있어 식량 걱정이 없다. 에너지자원도 넘치는 나라이다. 경제가 무너져도 불을 켜고,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가. 칼로리의 70%를 수입에 의존한다. 에너지의 100%를 달러를 주고 사와야 한다. 경제가 무너져 내리면 불을 켜고 먹고사는 문제가 터진다. 문명이 파괴되는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 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미리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병(病)을 고쳐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기업이 희망을 갖고 투자하고, 돈 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꿈을 좇아 사업을 벌이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땀 흘려 일하고 거기에서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마련토록 해주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금도 많이 걷히게 되고, 정부는 이 돈으로 복지, 교육, 연구개발, 전략분야 등 사회통합과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감당한다. 자, 이렇게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즉, 시장을 믿고 존중하면 될 일이다. 애덤 스미스까지 올라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정부의 간섭이나 무분별한 개입은 시장에 독(毒)이 될 뿐이다. 정부는 시장에 넓은 자유를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의 틀과 합리적인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관리하면 된다. 다만 스미스가 말한 덕목, 즉 시장에 도덕적 긴장이 유지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작 정부가 할 일은 경제주체들이 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우수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다. 교육, 환경, 문화, 복지는 물론 안보와 사회의 안전에 이르기까지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가 경쟁력 있는 시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 보도처럼 경제인들은 시장경제를 존중하라고 요구하고,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냐고 따지는 것을 보면, 이 간단한 해답이 힘을 얻을 날이 요원하지 않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참으로 큰일이다. 아니, 시장의 주인공들이 불평을 말하지 않을 때까지 정부의 간섭과 개입을 없애고 시장의 환경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면 될 일인데, 그들과 논쟁하고 싸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여,  그대들이 단 한 사람도 먹여 살릴 힘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돈과 재능 있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사업을 벌여야 고용, 생산, 소득, 소비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다는 이 간단한 진리에 눈을 감고 있는 한 아무도 현재 진행 중인 이 악순환을 막을 길이 없다. 그런데 국가 경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 여당은 요즘 온 국민을 몰고 과거로 가려 한다. 국정의 파트너인 야당마저 적당히 그 논쟁에 끼어들려 하고 있다. 한쪽은 친일(親日)의 그림자를 추적하고, 다른 한쪽은 친공(親共)의 그림자를 추적하겠다며 벼른다.

  그 작업이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될까. 백해무익(百害無益)이다. 필경 이 작업은 사회의 분열을 몰고 오며, 그 불안정은 경제에 독이 될 것이다. 경제가 파탄되고 민생이 수렁에 빠진 다음, 그 정쟁으로 어느 정파가 이익을 얻어 어디에 쓰려는가.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다.

   저 봉건시대, 당파싸움을 할 때 정적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했다는 역사를 배웠지만,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세기가 다 지난 과거를 파헤치겠다는 정권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없다. 외세에 빌붙어 반역한 자들을 조사하는 것은 처벌을 통해 청산할 경우에만 하는 일임을 왜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역사를 바로 잡아 쓰는 일이 어떻게 권력의 몫이란 말인가. 경제야 망가지건 말건 그들이 이 일을 벌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으리라 짐작한다.

  오, 해마다 찾아오는 태풍의 경우에도 그 진행 상황과 위력을 쉬지 않고 예보하며 미리 대비책을 강구하도록 하는데, 이 닥쳐오는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대하여는 정확한 예보를 하려는 노력도, 그 위기의 폭발을 막아내려는 긴장도 찾아보기 어려우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제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나 경제활동을 한다.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늘은 우리 국민을 도울 것이라 확신한다.

  얼마 전, 한 언론인이 나에게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해준 말이 떠오른다. “이제 우리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요.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고, 둘은 지혜를 모으는 일이며, 셋은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 국민 모두가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지혜를 모으며, 또 용기 있게 행동하면, 우리에게 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2004.   8.   20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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