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달린다.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에서 강변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강남구 자곡동의 집까지 약 24km를 달린다. 작년 연말부터 골프를 멀리하고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는데 정말 좋은 운동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 두 분이 꼭 자전거를 타보라고 권유해 온 것이다. 자기들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즐기던 골프를 거의 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분들의 말이 틀린 소리가 아니다. 자전거의 매력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오늘은 마침 저녁 약속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일찍 퇴근을 하기로 하였다.

한강은 흐른다. 민족의 혼이 용해되어 흐르는 강이다. 태백준령으로부터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황해에 이르는 강.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 속에서 거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살아 온 선인들의 숨결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때마침 서풍이 불어 물결이 서에서 동으로 굽이친다. 마치 강물이 나와 함께 동쪽을 향해 흐르는 것만 같다. 그러나 한갓 바람이 어떻게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으리요. 한강은 여전히 황해를 향해 서쪽으로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을.

그러므로 바람에 흔들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흐름의 본질을 놓치고 표면의 현상에 매몰되어 사태를 잘못 판단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 시대의 진운을 거꾸로 가려다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던 구한말의 어리석은 역사. 한강은 오늘도 우리에게 그 어리석음을 결코 되풀이 하지 말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하나가 되어가고, 인간의 창조적 역량이 폭발한다. 그리하여 지구촌 시대가 열리고, 지식문명의 시대가 밝아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떨치고 문을 활짝 열어 세계로 나가야 한다. 권력은 개입의 유혹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무한의 자유를 허용하며 그들이 도전과 개척의 전선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과연 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강물 여기 저기 위로 점점이 이름 모를 철새들이 무리지어 먹이를 찾고 있다. 강가의 모래톱에는 오리떼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어디에서 날아 온 새들일까.

나는 지난 해 바이칼 호수를 여행한 일이 있다. 몽골의 울란바투르를 거쳐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여 마침내 꿈에 그리던 바이칼의 품에 안기었다. 징기스칸의 어머니 허엘룬이 태어나 성장한 아론 섬에서 하루 밤을 보낸 것이다. 지구 총 담수의 20%를 담고 있다는 바이칼의 위용 앞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가장 깊은 곳이 1800m가 넘는 이 호수의 파도는 바다 못지 않게 높고 거칠기만 하다. 그래서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일체 배의 출항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호수도 혹독한 시베리아의 추위에는 견디지 못하고 긴 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게 마련이다. 얼음의 두께가 1m 50cm에 이르기 때문에 대형 트럭들이 호수 위를 질주한다고 한다. 그러니 시베리아의 새들이 그 긴 겨울 동안 먹이를 찾아 이 곳 한강을 찾아 왔으리라.


한강에 철새들이 많이 몰려 올수록 그만큼 먹이 감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지난 40여년 동안 한강의 생태계는 얼마나 긴고통의 터널을 달려 왔을까. 이제 한강은 다시 생명이 넘치는 강으로 태어나야 한다.

즐비한 새들의 무리를 바라보며 생명의 냄새를 맡는다. 비싼 값의 깨비아가 철갑상어의 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철갑상어가 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 한강을 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경기지사로 일할 때 상어만을 박제하는 전문가를 초청하여 전시회를 연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본 멋진 철갑상어의 박제가 바로 60년대 초 한강에서 잡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한 2년 전 쯤인가, 나는 한 텔레비전 프로에서 철갑상어의 치어가 한강에서 잡혔다는 보도를 접하고 잔잔한 흥분을 느낀 일이 있다.

그렇다. 이제 한강을 생명이 충만한 강으로 만들어나가야지. 철갑상어가 회유하고 온갖 생태계가 복원되도록 해야지. 앞으로는 더 이상 자연이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지. 나는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중얼 중얼 생각을 이어 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도심의 미로가 아닌 강을 따라 달리다 보니 생명의 신비와 경외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한강을 달린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문명의 숲이 보일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는 도시의 빌딩들, 그리고 강변 좌우를 달리는 끝없는 자동차의 물결. 한강을 달리며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의 신비함을 호흡한다. 문명의 탁류속을 숨가쁘게 살아가며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말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으로부터 자연과 조화하는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말 그대로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출발한지 한시간 쯤 지나자 잠실종합체육관이 눈 앞에 보인다. 왼 쪽으로 탄천을 따라 달리면 탄천 본류와 양재천의 합류지점이 나온다. 종전처럼 탄천 본류를 따라 가기로 하였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 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비가 온데다 공사 차량들이 다니면서 길을 온통 진흙탕으로 만들어 놓았다. 도저히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다. 다시 돌아나와 양재천을 따라 큰 길로 올라 선다. 그리고 보도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세상은 어두움에 싸이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다. 몸과 마음이 새처럼 가벼워진다. 참으로 상쾌한 퇴근길이다.



2003. 3. 10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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