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바다와 싸우다(5)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주적론 그리고 역사
인간의 몸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곳은 어디일까? 아마 두뇌일 것이다. 사람의 사고와 판단, 즉 생각을 담당하는 기관이 두뇌 아닌가. 생각은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한다. 경직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뒤쳐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신(神)이 두뇌를 가장 부드러운 조직으로 만든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자유를 최고의 덕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사상의 자유를 존중한다. 다른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경제 등 사회과학의 분야에서도 끝없이 새로운 변화를 흡수하며 새로운 꿈과 비전을 제시해 나가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주적론 그리고 우리의 근대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봇물을 이룬다.
나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사고(思考)하며 자신의 입장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고는 부드러운 두뇌가 하지만, 그 두뇌를 무엇이 둘러싸고 있는가?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두개골이 가장 부드러운 두뇌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두뇌가 손상되어 사고 그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적 상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연구 단계를 지나 실천의 영역에 이르면 사상의 자유를 감싸는 어떤 틀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 틀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우리나라가 근거하는 정통성과 정체성이다. 물론 시대를 초월하는 영구불변의 가치나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다.
며칠 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건의하고, 다음 날에는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상의 말썽 많은 찬양고무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폐지를 추진하는 여당 안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한번 자유로이 상상해 보자. 이 법은 물론 분단과 냉전의 산물이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성 있는 국가이고, 북한은 이를 부정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법이다. 해방 이후 냉전이 격화되면서 적어도 70년대 말까지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세(勢)를 키워 나갔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의 공세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현실적 필요성이 높았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이 법이 유지되었다.
물론 이 법은 본래의 목적에만 동원되지 않고 역대 독재 정권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남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작용이고 그림자였지,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의 목적이 정당성을 잃거나 그 실체를 부정당할 수는 없다.
그러면 지금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할 만큼 시대상황이 변화했는가. 물론 범지구적으로 보면 냉전은 해체되었다. 국제공산주의운동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큰 위협은 소멸된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반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군사적 대치와 긴장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이 핵을 개발하면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 정세 전체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객관적 사실은 누구나 인정해야 한다. 정치, 경제 등 비 군사 분야에서의 화해와 협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더라도, 여기에서 막바로 현존하는 위협에 눈을 감는 것은 지혜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큰 화를 자초할 우려가 높다. 만사는 불여튼튼이라 한다. 하물며 안보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한반도의 정세와 남북관계의 변화가 본질적으로 이루어지면 국가보안법은 한 시대의 유물로 역사의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역대 독재 정권들이 이 법을 남용함으로써 아무 이유 없이 고통을 받으셨던 분들에 대하여는 심심한 위안의 말씀을 드린다. 국가는 그 고통을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성의를 다해야 한다. 아직도 시대상황과 남북관계의 현실이 이 법의 존립을 요구하고 있다면, 인권유린이라는 과거의 악몽 때문에 이 법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문민정부 이래 민주주의 정권에서 이 법의 남용으로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해석의 차이로 사상의 자유를 불필요하게 제한하고 이로 인해 인권이 침해당할 우려가 있는 이른바 독소조항은 개정되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명분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 일환이라고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전에 한국정부와 충분히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한국 국민들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급속하게 철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것은 노 정권이 말리기보다는 오히려 당연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쉬지 않고 철수를 주장하던 평양이 막상 철수가 이루어지니 당황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인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나 우리의 국익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미국의 유명한 한반도 전문가 부르스 커밍스 교수가 한반도의 미군주둔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수정주의 사관의 주창자로서 이 땅의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배경이었고, 과거 한반도로부터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해온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시대상황의 변화로 이제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깊이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시점에서 적어도 유연하게 생각을 바꾸고 있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상징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실적인 힘이다. 이것이 필요 없다면 모르지만, 필요하다면 이 정권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 그들은 침묵하며 속으로는 사태의 발전을 즐긴다. 내세우는 것이 자주(自主)인데, 그러면 대규모의 미군 주둔을 허용하는 일본과 독일은 자주를 외면하는 나라인가.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사건은 터지게 되어 있다. 이제 누구를 믿겠는가. 우리 국민들이 냉철한 이성으로, 무서운 눈으로, 슬기롭게 대처하는 길 밖에 없다.
주적론(主敵論)에 관하여 논쟁이 끊이지 않더니 국방부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요즘은 논쟁 자체가 없다. 대한민국의 70만 대군은 어디를 향하여 총을 들고 있는가. 북의 110만 대군의 총구는 또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얼마 전 서해상에서 경계를 침범한 북의 경비정을 대포를 쏘아 물리친 우리 군에 대해 이 정권이 서슬 퍼렇게 몰아붙이던 일을 잊지 못한다. 결국 그 일로 우리 국방장관과 3성장군의 목이 달아났다.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을 쫒으면 나라의 안보를 지킬 수 있는가. 나는 물론 군사적 대치와 긴장의 완화를 지지한다. 군축을 비롯한 군비통제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것을 반대하고 핵을 개발하는 것은 북이지 우리가 아니다. 무엇에 쫓겨서 주적론을 폐지하고 군의 사기와 정신무장을 와해시키는 것인지 묻는다.
앞에서 말한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주적론은 사실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이다. 북은 끊이지 않고 이 법을 폐지하고, 미군을 철수하고, 주적론을 없애라고 주장해 왔다. 북의 대남 전략에서 보면 적어도 이 세 가지 주제는 하나의 패키지인 셈이다. 북은 왜 그런 전략을 구사할까. 진정한 평화, 화해와 협력을 원해서일까. 아무리 관대하게 해석하려 해도 그것은 현실도 아니요, 과학도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고 불신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전략의 의도는 다른데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번영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나아가 북의 전략 전술에 말려드는 것은 더욱 안 된다.
강물은 자유롭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둑을 넘거나 역류하도록 방치하면 재앙이 닥친다. 마찬가지로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논의와 실천은 국가의 번영과 통일이라는 목표를 일탈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1988년 당시 통일민주당을 대표하여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대체입법을 주장한 일이 있다. 당시는 1978년부터 중국이 현대화를 향한 개방과 개혁을 가속화하고,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고 있었다. 동구 공산주의도 급격히 붕괴되면서 사회주의 진영이 근본적으로 모습을 달리 하던 때이다. 그런데 당시 북의 개방과 개혁이라는 변화를 위해서 우리의 역량이 들어갈 통로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완전히 막혀있는 실정이었다. 지금은 남북교류협력법이 만들어져 이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정세는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았다. 북은 핵을 개발하면서 정세를 더욱 긴장시키고, 남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폐지를 서두를 때가 아니라, 필요한 부분의 개정을 생각할 때라고 믿는다.
권력은 미래를 향해 역사를 창조해야지, 지난 역사를 다시 쓰고 자기의 관점에서 평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금기(禁忌)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지금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이고 있다. 어찌하면 좋을까. 나는 지금 그들에게 “역사를 두려워하라,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주적론은 어제와 오늘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일 한반도의 운명에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일의 역사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나의 조국인가, 우리 국민이 빈곤과 독재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추구해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우리의 희망은 전체주의에 있는가 아니면 민주주의에 있는가.
불행히도 뻔히 답이 정해져 있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가슴 속에 확신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해 번영을 이루며 민족의 대통합으로 위대한 조국을 건설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는 사회를 발전시키며, 그러기 위해서는 결코 전체주의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이러한 신념에 도달하면 오늘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여러 문제들은 모두 올바른 방향으로 풀리게 되리라 믿는다.
2004. 8. 30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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