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태평양을 건너며 굽어보는 대양은 그야말로 "큰 평화" 그 자체이다.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배도 한 점의 낭만으로 보인다. 그러나 배를 타고 파도에 흔들릴 때 바다의 힘을 느낀다.
2년 전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국정감사를 가서 잠수함을 타볼 기회를 가졌다. 수 십 미터까지 잠수하였을 때 느꼈던 외부세계로부터 일체의 소음을 허용하지 않는 침묵의 무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98년으로 기억이 되는데, 동해안에서 스킨스쿠버 훈련을 받은 일이 있다. 바다 속에는 겉에서 볼 수 없는 물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바다는 시간이 가져다 주는 변화말고도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치는 민심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다. 그런데 그 민심의 변화와 존재 양식은 바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나는 그동안 비행기에서 대양을 굽어보듯 민심을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 그 힘과 무게와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 무거운 침묵과 격렬한 힘 그리고 일정한 법칙을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흐름에 나를 던져야 한다.
일주일 동안 내 지역구인 금산과 논산에서 많은 주민들과 만나 인사도 드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가능한 한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은 거론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많은 기대를 갖고 성원해 주셨는데 대통령이 되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아직 젊으니까 다음 기회가 또 있지 않느냐, 너무 실망하지 말라, 이렇게 격려도 많이 해 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당을 옮겼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잘 설명해야 한다고 걱정을 해 주신다. 아무 말 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농촌 지역을 돌면서 새삼 절박한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농가부채나 농업의 채산성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이다.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동네의 초등학교는 폐교되어 인삼 가공공장으로 쓰이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농촌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쉰 살의 농업전문 경영인이 자기가 동네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어이가 없는지 허허 웃는다.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살맛이 나는데 노인 어른들만 모여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서대산 동쪽 산간 마을에 가니 월남에서 며느리를 맞이해 온 가정이 있었다. 아들이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도 신부 감을 구할 수 없어 월남의 처녀를 데려와 결혼을 시켰는데 얼마 전 딸을 낳았다고 그 아버지께서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우리말은 많이 배웠느냐고 묻자 아주 쉽게 배워 지금은 큰 불편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이 농민들의 이 절박한 심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는지 깊이 반성한다. 얼마 전 13대 때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농민 출신의 박경수 의원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 분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열심히 펼치던 일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는 장가를 못가 고민하는 젊은이가 우리 농촌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걱정이다.
나는 수영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다. 힘을 빼고 물결에 몸을 맡겨야 수영을 잘 할 수 있다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생활 일선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만나며 나 자신이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일엽편주처럼 느껴진다. 바다의 섭리를 따라 항해를 해 나가듯 민심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만 정치는 진전을 이룬다.
마음을 비우고 민심의 바다에 그대로의 나를 던져야 한다. 더욱 겸손하게 순한 양처럼 바다의 물결에 나를 맡겨야 한다.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2003. 2. 15.
2년 전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국정감사를 가서 잠수함을 타볼 기회를 가졌다. 수 십 미터까지 잠수하였을 때 느꼈던 외부세계로부터 일체의 소음을 허용하지 않는 침묵의 무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98년으로 기억이 되는데, 동해안에서 스킨스쿠버 훈련을 받은 일이 있다. 바다 속에는 겉에서 볼 수 없는 물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바다는 시간이 가져다 주는 변화말고도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치는 민심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다. 그런데 그 민심의 변화와 존재 양식은 바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나는 그동안 비행기에서 대양을 굽어보듯 민심을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 그 힘과 무게와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 무거운 침묵과 격렬한 힘 그리고 일정한 법칙을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흐름에 나를 던져야 한다.
일주일 동안 내 지역구인 금산과 논산에서 많은 주민들과 만나 인사도 드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가능한 한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은 거론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많은 기대를 갖고 성원해 주셨는데 대통령이 되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아직 젊으니까 다음 기회가 또 있지 않느냐, 너무 실망하지 말라, 이렇게 격려도 많이 해 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당을 옮겼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잘 설명해야 한다고 걱정을 해 주신다. 아무 말 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농촌 지역을 돌면서 새삼 절박한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농가부채나 농업의 채산성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이다.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동네의 초등학교는 폐교되어 인삼 가공공장으로 쓰이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농촌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쉰 살의 농업전문 경영인이 자기가 동네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어이가 없는지 허허 웃는다.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살맛이 나는데 노인 어른들만 모여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서대산 동쪽 산간 마을에 가니 월남에서 며느리를 맞이해 온 가정이 있었다. 아들이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도 신부 감을 구할 수 없어 월남의 처녀를 데려와 결혼을 시켰는데 얼마 전 딸을 낳았다고 그 아버지께서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우리말은 많이 배웠느냐고 묻자 아주 쉽게 배워 지금은 큰 불편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이 농민들의 이 절박한 심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는지 깊이 반성한다. 얼마 전 13대 때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농민 출신의 박경수 의원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 분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열심히 펼치던 일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는 장가를 못가 고민하는 젊은이가 우리 농촌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걱정이다.
나는 수영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다. 힘을 빼고 물결에 몸을 맡겨야 수영을 잘 할 수 있다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생활 일선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만나며 나 자신이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일엽편주처럼 느껴진다. 바다의 섭리를 따라 항해를 해 나가듯 민심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만 정치는 진전을 이룬다.
마음을 비우고 민심의 바다에 그대로의 나를 던져야 한다. 더욱 겸손하게 순한 양처럼 바다의 물결에 나를 맡겨야 한다.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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