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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8 [IJ 에세이] 통곡의 강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가 당의 대표단을 이끌고 비극의 현장을 찾은 것은 사고 후 이틀이 지난 20일 낮이다.               

희생자 유가족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신 채 더 이상 오열할 기운조차 보이지 않는다. 위로의 말을 전하는 나의 손을 잡고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딱히 드릴 말씀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은 또 얼마나 오죽하랴.

그분들의 회의에 한동안 자리를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종자의 사망확인 절차가 신속하게 또 똑바로 진행되는지 가족들이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타당한 요구라 판단되어 배석한 책임자로부터 약속을 받아 주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채 연기에 질식되고 천도가 훨씬 넘는 고열에 녹아 이슬처럼 스러져 갔는지, 아직도 내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경기지사가 된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용인의 가출소녀 수용시설에서 몇 명의 소녀가 탈출을 노리고 방화를 하였는데 그만 20여명의 소녀들이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되어 사망하였다. 그 때 일이 악몽처럼 떠올려진다.

또 임진강이 범람하여 연천과 문산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가 발생하였을 때, 그래도 인명피해가 없어 얼마나 하늘에 감사를 드렸던가. 범람이 밤에 시작되었더라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연천은 아침에, 문산은 오후 3시에 침수가 시작되어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선 차량의 내장을 왜 불연물질이 아닌 유독성의 가연물질로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출용 차량은 불연재를 사용하여 제작하는데 국내용 차량도 이렇게 했더라면 이런 참화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도를 보니 가격이 세배 비싸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시민의 생명의 가치는 어떻다는 것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의 무게보다도 더 무겁고 고귀한 가치를 갖는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다.

다음으로 자동 정전이 되고, 암흑 속에서 잠긴 문을 열 수가 없었다는데,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안전 시스템이 이런 수준이라니 부끄러울 뿐이다.

결국 이번의 참화는 한 광인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이를 막지 못한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 사회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사람들의 그릇된 가치관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 자신부터 깊은 자책감을 억누를 수 없다. 생명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다! 이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진정한 문명사회일 것이다.

불을 지른다. 대구의 그 광인은 아마 자신의 행위가 이렇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몰랐을지 모른다. 불을 지르는 일은 참으로 위험하다. 무심결에 던진 담배 꽁초 하나가 온 산을 불태우며 소중한 생태계를 파괴하면, 그 복원에 얼마의 세월이 걸린단 말인가.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쏠리니 그리고 일본의 도조가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을 지폈을 때 그 전쟁의 폭풍이 그토록 엄청난 비극을 몰고 오리라고는 다 예상하지 못하였으리라.
이렇게 불을 지르는 사람의 의도와는 다른 길을 따라 불길은 때로 상상하지도 못한 참혹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오늘 우리 사회에도 여러 갈등과 불신이 자꾸 높아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누군가 불을 붙이면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감을 느낀다. 잘못 불이 붙으면 시장경제의 활력이 소멸되고, 그토록 노래부르던 평화가 송두리째 날라가 버릴지도 모른다.

대구의 지하철에서 주위의 시민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그 광인의 무모한 행위를 제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소리도 자지러진 통곡의 강을 바라보며 숙연한 마음으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떠나보낸 사람들과 아픔을 나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교훈을 얻는다. 늦기 전에 행동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불길이 솟아 오른 다음에는 이미 늦다.


2003.      2.      20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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