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준비하고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정치가 이렇게 국민의 불신을 받는 때에 정치인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래도 계면쩍은 일이다. 이런 유형의 글은 아무리 기교를 부려 본다 한들 핀잔받기 십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시작하는 용기를 갖는 것은 내가 이인제 고문에게 거는 어떤 신앙같은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인제 고문을 처음 만난 것은 25년 전 라면맛이 그렇게도 좋았던 시절이다. 이고문이나 나나 인생의 표류기적 상황에서 삶의 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조우하게 되었다. 내가 이고문을 처음 보고 언뜻 느낀 인상은 의연하고 통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 느낌은 서로 사귀면서 계속 확인되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빈털터리 상황이었는데도 도대체 기가 죽는 법이 없었다. 주머니가 비면 이래저래 어느정도 주눅이 들게 마련인데도 그에게서는 그런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얻어먹어도 당당하게 얻어먹는다. 이런 기질은 부친의 영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인제 지사는 부친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부친은 가난한 농부이면서도 세상사를 보는 시선이 확연하고 꿋꿋하게 사신 분으로 아들 이인제에게 그 기질을 넘겨준 것 같다.

나는 그가 그 당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한 후였고 군입대 문제 등으로 화급한 심정으로 책과 씨름해야 할 처지인데도 그는 호연지기적 표류를 계속하고 있었다. 냇가에서 천렵을 즐기고 산열매를 찾으러 산을 헤매기도 하고 소주를 마시며 천하를 논하고 바둑으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많았다. 그 친구의 유형도 매우 다양했다. 고향, 학교, 연령, 계층이 각각 다른 잡색군의 친구들이었다. 명문학교를 나온 소위 모범새의 일반적 체취를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다양한 친구들이 청년 이인제를 중심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졌고 한잔 술에 대통령 한번 해보라는 소리도 나왔다. 나는 은연중에 그의 리더쉽과 정치적 자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청년시절 표류를 군입대로 끝을 맺는다. 입대 3일전 그야말로 백수의 입장에서 신부에게 은반지 하나 채워주지 못하는 결혼식을 올리고 훈련소를 떠났다.

제대 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환웅이 점지한 이 땅의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법조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장년 이인제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점은 그가 항상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새로운 목표을 찾아 돛을 올린다.

새로운 향해을 떠나는 부둣가에서 그를 배웅해 왔던 나는 그가 지닌 또 다른 모습들을 보았다. 그의 가슴은 매우 여리고 섬세하며 항상 뜨거운 불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만큼 고독하다. 동시에 그는 민심의 밑바닥을 훑는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현학적인 정치적 사변의 허구를 뚫고 본질을 직시하는 통찰력이 있다. 이것은 내가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제 그가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그 새로운 장도를 배웅하면서 10여년 전의 한 장면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정치에 처음 입문해 안양 갑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첫 합동유세를 하던 날, 그는 아침 일찍 안양에 있는 충혼탑에 올라 묵념을 하고 충혼탑에 두 손을 대고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다. 나는 못본 적하면서 먼 허공을 응시했지만 그가 앞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다.  / 방영준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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