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

헌법의 두 기둥, 정통성과 정체성


   요즘 여야 간에 국가 정체성(正體性, identity) 논쟁이 한창이다. 한편 며칠 전부터 주요 일간지에 '노무현 정권 규탄대회' 광고가 연일 실리고 있다. 일부 우파단체는 이미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정체성수호를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는 결론이 다 난 정체성 논쟁이 한가롭게만 보일지 모른다. 하여튼 오늘 한나라당은 '헌법과 대한민국 정체성 수호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정권이 출범한지 1년 반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문제로 여야가 정쟁을 일삼고 있으니 경제난과 사회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혼란스럽고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정권이 나라의 정체성을 허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는 한나라당의 무지와 게으름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고, 사실이 아니라면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데 공연히 생트집을 잡고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다른 쟁점이라면 몰라도 이 문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국가의 기본가치인 정체성 문제를 두고 어떤 타협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정당간의 타협이란 것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당은 이제 논쟁을 그만 하자고 하고, 한나라당도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모습이다.

   나는 이미 2002년 경선 당시부터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투쟁해 왔다.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으며, 결국 나라의 안보와 경제가 미증유의 재앙에 직면하리라는 점을 쉬지 않고 말해 왔다. 그 때 야당은 물론 이 땅의 지식인들은 침묵 내지 방관으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이 정권 출범 1년 반이 지나고 경제와 안보의 지형이 악화 일로(惡化 一路)를 걷고 있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민간 일선은 행동에 나서고 야당은 문제 제기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할 때'라는 말이 있다. 이왕 문제가 제기되었으니 끝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미루자는 말이 아니다. 할 일은 하면서 이 국가 근본의 문제를 풀어내야만 한다. 나라의 기둥인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고 사회의 안정이나 경제의 번영, 그리고 평화적 통일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 개인에게도 뚜렷한 자기 정체성이 요구되는데, 하물며 한 나라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정신적 혼돈(混沌)과 우왕좌왕하는 자세로 나아간다면, 그 나라의 앞날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상상하기도 끔찍한 비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최근 진행되는 논쟁은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표피와 감성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헌법의 수호를 책임지고 있는 당사자 쪽에서는 철저한 무시와 기만 그리고 위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웬 정체성 타령이냐, 우리 헌법이 곧 내 사상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하지 않았느냐" 대략 이런 대응을 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국면을 호도하며 시간을 벌려고 한다.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대의민주제를 근본가치로 한다. 그런데 이 정권의 권력자가 의회의 권능을 부인한 일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모아 놓고 시민혁명을 선동한 것은 또 무엇인가.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하면서 헌법위반 사실을 준엄하게 꾸짖었는데도 단 한마디 사과가 없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수 없이 했다고 하는데 나는 단 한차례도 들어 본 일이 없다. 반대로 대중민주주의를 운위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상대주의적 세계관과 방어적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개념이다. 즉, 모든 사람이 자기의 세계관과 가치를 향유할 자유를 가지지만, 다만 그러한 자유를 부정하는 사상, 예컨대 계급독재의 공산주의 사상이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사상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이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기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박해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용납될 수 있는가, 없는가. 수도이전이라는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하여 재갈을 물리려는 행동은 또 무엇인가. 갑자기 튀어나온 공산당 허용 발언은 또 무엇인가.

   나는 국민의 위대한 힘을 믿는 사람이다. 한 두 번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불의(不義)한 권력은 국민의 냉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正統性, legitimacy)은 국가관과 역사관의 산물이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한민족의 법통(法統)을 잇는 정통국가임을 선언한다. 1945 년 해방 이후 냉전의 격화로 인해 당연히 통일국가가 건설되었어야 할 한반도에 분단상황이 고착된다. 이 분단 때문에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통해 건국하였으나 대한민국은 민족국가의 대(代)를 잇는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이며, 북한은 우리 민족 내부에서는 국가일 수 없고 단지 평화통일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서 협력해야 할 대상에 불과한 존재이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다.

   이에 반하여 북한은 정반대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식민지라는 것이 그들의 공식 입장이다. 그래서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남한을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일으킨 6. 25도 그래서 인민해방전쟁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충성하는 모든 국민은 따라서 북한의 이러한 국가관과 역사관을 부정해야 한다.

   여기에 남북한을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부르스 커밍스(Bruce Cumings, 시카고 대학 교수)의 수정주의 사관이 그 대표이다. 그러한 관점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가능할지 모르나 냉엄한 현실정치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굳이 말한다면 한반도의 분단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에서나, 또 먼 훗날의 역사적 시점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이론에 불과하다. 그런데 분명 오늘 우리 사회에는 우리 헌법이 말하는 국가관과 역사관을 부정하거나 벗어난 관점에서 남과 북을 이해하고, 분단의 역사를 해석하려는 사람과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이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러 활동한다면 오늘의 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까닭이 없다. 그들이 사회의 운동 전선에, 또 권력의 전면에 전개되고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여 반세기가 넘게 헌법을 떠받쳐 온 정통성과 정체성의 두 기둥을 뿌리 채 뽑으려 하는 것이다.

   간첩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이 어떻게 우연일 수 있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반미선동은 그 뿌리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외세에 빌붙어 동족을 핍박한 반역행위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권력이 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한 전제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단지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 국가권력이 나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봉건 전제군주도 선대(先代)의 역사를 쓰는 사관(史官)의 사초(史草)조차 열람할 수 없었다. 오늘 집권세력이 친일 반역행위를 조사하겠다는 것은 처벌을 통한 청산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있음이 명백하다.  자기들의 권력으로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것인데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서 역사가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이 나라를 건국하고 발전시켜 온 주도세력을 친일 잔재로 규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허물려 한다. 나는 추호도 친일반역행위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이치에 맞지 않는 일에 찬성할 수 없을 뿐이다.

   보라!  이렇게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이 정체성 논란의 바람은 그저 지나가는 일과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어떻게 결론지어지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리게 되어 있다. 뿌리는 깊고 상황은 심각하다. 갈 길은 멀고 험난한데 엉뚱하게도 이 근본의 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는 법이다. '푸른 물결에 띄우는 편지'에 썼던 기억이 난다. 어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 헌법으로 돌아가면 된다. 몇 몇 사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대다수가 헌법으로 돌아가면 헌법의 배신자들이 서 있을 땅은 없게 된다. 정통성과 정체성의 문제는 말끔히 해결될 것이다.  

   헌법으로 돌아가자! 그 속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신과 가치가 함축되어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경제 번영의 길, 평화 통일의 길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터무니없는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헌법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말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서둘러야 한다. 그보다 더 높은 가치는 없다. 그 깃발이 찢기면 우리가 염원하는 번영과 통일의 길도 막히게 된다.

   헌법으로 돌아가면 된다.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우리 가슴속에 채우자. 그러면 헌법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

2004.  8.  5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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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0)

나는 무엇을, 왜, 쓰려하는가?

   나는 2004. 5. 17 체포영장에 의해 검찰에 강제 연행되고, 이틀 후인 5. 19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나의 생애에서 대학시절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운동에 헌신하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유치장에 갇혀보고, 당시 비밀경찰인 중앙정보부에 두 번이나 끌려가 일주일씩 감금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난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정식 사법절차에 의해 구치소에 수감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짧지만 낯선 수감생활에서 나는 날로 새로워지는 나를 발견하며 운명의 신께 감사를 드렸다. 1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서 나는 더 큰 자유의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고, 멀리만 느껴지던 하늘의 뜻(天心)과 국민의 마음(民心)이 내 가슴의 용광로에 하나로 용해되어 타오르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경이로운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나와 꿈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열정, 바로 그것이 나에게 불굴의 용기를 가져다 주었고, 그 용기가 나의 길지 않은 생애를 깊이 있게 성찰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편견, 독선, 교만 그리고 나태함으로 얼룩진 지난 날의 내 삶에 나의 눈물을 쏟아 부어 때를 씻어낸다. 맑아진 나의 눈은 더 넓고 더 멀리 세계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열린 나의 마음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모든 변화의 중심을 이루는 민심(民心)의 열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내 내면의 세계에서 그토록 소중하게 가꿔온 ‘자유의지’가 이제 날개를 달고 훨훨 창공을 날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 축복은 전적으로 ‘꿈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준 선물이다. 나는 그 고마움의 표현으로 어린 시절 공부하던 앉은뱅이 책상을 닮은 밥상 위에서 편지를 썼다. <푸른 물결에 띄우는 편지>를 쓰며 나는 언제나 벅찬 행복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나를 찾아와 격려하여 주신 분들, 정성스럽게 눈물겨운 편지를 써 보내주신 분들, 쉬지 않고 보내온 전자우편(E-mail)에 사랑과 믿음을 듬뿍 담아주신 분들, 내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198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난과 영광을 함께 해온 동지들, 그리고 멀리서 가까이서 시대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숨쉬는 모든 분들에게 나의 작은 마음을 담아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다. 그러나 이 편지도 7. 21 내가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끝이 났다. 17번째 편지를 쓰다가 내 좁은 방의 문이 열린 것이다. 내 방의 비둘기 부부가 두 번째 알을 품은지 18일 만에 두 알 중 하나의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나온 날, 나는 정든 비둘기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나는 중단된 17번째 마지막 편지를 나의 서재에서 썼다. 편지는 끝났지만 우리들이 함께 꾸는 꿈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게 아니라 더 크고 아름답게, 더 높고  뜨겁게 피어오른다.  

    보라!  바다는 폭풍우에 휩싸여 있다. 폭풍의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꿈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나는 그 싸움의 전선(前線)에 서서 헌신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며 나의 마땅한 도리이다. 나는 일찍이 뱃사람으로부터 바다의 지혜를 들은 일이 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만났을 때, 살기 위해 뱃머리를 육지로 향하고 도망치면 반드시 높은 파도에 뒤집히거나 암초에 좌초하여 생명을 잃게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사의 각오로 뱃머리를 태풍이 불어오는 쪽으로 향하고 출력을 최대한 높여 바람과 파도를 치고 나가면 살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말했던가. 필사즉생(必死卽生)이요, 필생즉사(必生卽死)라. 바다에도 그 진리는 그대로 통용되는 모양이다.  

    2004년 오늘, 우리 사회는 폭풍에 휩싸인 바다와 같다. 치세(治世)인가, 난세(亂世)인가로 묻는다면 열의 여덟은 서슴없이 난세라고 말하리라. 그러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바다의 폭풍도 따지고 보면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원인이 있고 과정이 있으며 결국 소멸의 길을 밟게 된다.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이 회오리바람이 모든 것을 부숴 버릴 것만 같은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힘을 잃어간다. 우리와 우리의 선대들이 피땀 흘려 이루어 놓은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더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앞날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상황에 직면할 줄을 몰랐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오늘의 상황이 반드시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쉬지 않고 말해왔다. 역사의 진행에 가정(假定)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미 닥친 폭풍이 우리의 냉엄한 현실일 뿐이다. 이제 싸워 극복하는 길밖에 남은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감싸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이겨내는 일이 우선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폭풍 또한 사회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원인이 있고 예상되는 행로가 있으며 일정한 조건이 성취되면 소멸하게 된다.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불안과 공포심은 사라진다. 지혜와 용기로 싸워 이기는 일만 남게 된다.


   나는 앞으로 ‘꿈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미쳐 날뛰는 파도와 싸우고 거친 바람을 이겨 나가는 문제에 관하여 말하려 한다. 그리고 그 폭풍의 바다 너머에 펼쳐질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희망과 번영 그리고 통일의 바다를 꿈꾸려 한다.

   오, 꿈꾸는 자에게 축복이 있을 진 저!  오, 지혜와 용기로 싸우는 자에게 신의 가호가 있을 진 저!

2004.   8.   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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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J 성명] “진실은  오직  하나이다”

   
   또다시 이인제가 부정한 돈을 받은 사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되고 있다.

   나는 1988년 정치를 시작한 이래 대통령이 되어 번영과 통일의 시대를 열겠다는 열망을 키워 온 사람이다.

   1997년 홀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나는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200억원의 돈을 받았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모략을 당하였다.  온 신문과 TV에 이 거짓말이 대서특필되고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나의 지지는 1주일만에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나는 꿈이 있었기에 참고 견딜 수 있었다.

   2003년 5월 노 정권이 또다시 나를 중상 모략하였다.  월드컵 휘장이라는 말을 들어본 일도 없는 나에게 나의 전 특보 송종환과 관련하여 무슨 부정이 있는 것처럼 연일 매스컴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케 하였다. 그러나 이 음모는 송종환 동지가 6개월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완전한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결백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의 전 공보 특보 김윤수를 통하여 한나라당의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덮어씌우려 하고 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한나라당의 돈을 단 한푼도 받은 사실이 없으며 김 전 특보는 물론 그 누구로부터도 한나라당의 돈을 가져왔다는 말을 지금까지 들어 본 일이 없다.

   김 전 특보나 한나라당 관계자들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나는 큰 꿈을 키우며 정치를 해 왔다.  지난 대선 때 이미 밝힌 바대로 우리나라가 급진좌파노선과 친북반미세력에 정권이 넘어갔을 때 닥쳐 올 국가적 재앙을 고뇌한 끝에 이것을 막기 위해 어떤 정치적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나는 분연히 민주당을 탈당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도우파세력이 대동단결하지 않고는 좌파세력의 발호를 막을 길이 없다고 판단하여 자민련에 입당하였다.  

   이렇게 나의 정치적 신념과 노선을 따라 결단을 해 온 이 사람이, 또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온갖 수모를 견디며 묵묵히 정치적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이 사람이, 구차하게 한나라당의 돈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불과 며칠 전 노 정권의 대표적인 앞잡이가 이인제를 생물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잡고 말겠다고 협박하다가 이제 선거를 불과 몇 십일 앞둔 시점에서 또다시 이런 엄청난 모략이 자행되고 있으니 통분을 금할 수 없다.

   진실은 오직 하나이다.  나는 노 정권이 벌이는 이 치졸한 정치보복에 맞서 나의 진실을 지키고 번영과 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해 나갈 것이다.


2004.  2

이   인  제



'이인제 논단 > 연설/성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대 총선 출마에 즈음한 기자회견문  (0) 200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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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로 태평양을 건너며 굽어보는 대양은 그야말로 "큰 평화" 그 자체이다.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배도 한 점의 낭만으로 보인다. 그러나 배를 타고 파도에 흔들릴 때 바다의 힘을 느낀다.

2년 전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국정감사를 가서 잠수함을 타볼 기회를 가졌다. 수 십 미터까지 잠수하였을 때 느꼈던 외부세계로부터 일체의 소음을 허용하지 않는 침묵의 무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98년으로 기억이 되는데, 동해안에서 스킨스쿠버 훈련을 받은 일이 있다. 바다 속에는 겉에서 볼 수 없는 물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바다는 시간이 가져다 주는 변화말고도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치는 민심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다. 그런데 그 민심의 변화와 존재 양식은 바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나는 그동안 비행기에서 대양을 굽어보듯 민심을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 그 힘과 무게와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 무거운 침묵과 격렬한 힘 그리고 일정한 법칙을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흐름에 나를 던져야 한다.

일주일 동안 내 지역구인 금산과 논산에서 많은 주민들과 만나 인사도 드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가능한 한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은 거론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많은 기대를 갖고 성원해 주셨는데 대통령이 되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아직 젊으니까 다음 기회가 또 있지 않느냐, 너무 실망하지 말라, 이렇게 격려도 많이 해 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당을 옮겼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잘 설명해야 한다고 걱정을 해 주신다. 아무 말 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농촌 지역을 돌면서 새삼 절박한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농가부채나 농업의 채산성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이다.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동네의 초등학교는 폐교되어 인삼 가공공장으로 쓰이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농촌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쉰 살의 농업전문 경영인이 자기가 동네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어이가 없는지 허허 웃는다.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살맛이 나는데 노인 어른들만 모여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서대산 동쪽 산간 마을에 가니 월남에서 며느리를 맞이해 온 가정이 있었다. 아들이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도 신부 감을 구할 수 없어 월남의 처녀를 데려와 결혼을 시켰는데 얼마 전 딸을 낳았다고 그 아버지께서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우리말은 많이 배웠느냐고 묻자 아주 쉽게 배워 지금은 큰 불편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이 농민들의 이 절박한 심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는지 깊이 반성한다. 얼마 전 13대 때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농민 출신의 박경수 의원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 분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열심히 펼치던 일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는 장가를 못가 고민하는 젊은이가 우리 농촌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걱정이다.

나는 수영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다. 힘을 빼고 물결에 몸을 맡겨야 수영을 잘 할 수 있다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생활 일선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만나며 나 자신이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일엽편주처럼 느껴진다. 바다의 섭리를 따라 항해를 해 나가듯 민심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만 정치는 진전을 이룬다.

마음을 비우고 민심의 바다에 그대로의 나를 던져야 한다. 더욱 겸손하게 순한 양처럼 바다의 물결에 나를 맡겨야 한다.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200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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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권이 출범한지 석달을 넘어서고 있다. 이 짧은 기간동안 경제, 사회, 안보와 외교 현장에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물론 정권 초기에는 불가피하게 국정의 혼란이 일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권 초기의 일시적 혼란을 국가위기로 연결하여 국민들이 걱정하는 일은 가까운 우리 헌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물며 국정을 담당한 정권 스스로가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특별한 대응을 논의하고 있으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람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이나 한나라당이 이를 맞받아 “국민 노릇 못해먹겠다”는 논평을 내놓는 모습을 바라보며 분노와 실망 이전에 허탈과 절망 속에 빠져들 국민들의 가슴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다.                      
             
과연 우리의 현 상황은 위기인가? 위기라면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위기 극복의 희망은 있는 것인가?

정부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일으킨다고 판단되는 파업과 집단행동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민간의 인력과 장비 징발, 업무복귀 명령 등을 할 수 있는 “국가위기대응특별법”의 제정을 검토중이라 한다.

무엇이 위기인지는 말하지 않고, 그 위기의 원인에 관하여 깊이 있는 성찰은 외면한 채, 위기의 징후로 나타난 현상을 강제로 소멸시킬 권력적 수단을 확보하겠다는 한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노동관계법에는 “직권중재”제도나, 노동부장관의 “긴급조정권”이라는 수단이 있고, 헌법상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최소한의 필요한 처분이나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대통령의 긴급권”이 부여되어 있다.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단행할 때 바로 이 긴급권을 발동하였다.

도대체 이 정권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특별법을 운위하는지 알 수 없다. 알면서도 특별법의 제정을 추진하려 한다면 그들의 의도는 자명하다. 권위적 통치를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제도화하여 독재의 문을 열겠다는 의도이다. 헌법상의 긴급권은 그야말로 예외적으로 발동되는 최소한의 권력인데 그러한 권력을 대통령이 일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겠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시대에 독재라니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기 바란다.

현재의 위기상황은 세 방향으로부터 몰려오고 있다.
하나는 경제, 특히 서민경제의 파탄이다. 둘은 사회구성원간의 대립과 갈등이다. 사회통합을 위해 땀흘려야 할 권력은 오히려 집단과 집단간의 적대감을 키워 점점 더 화해를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셋은 안보이다. 특히 북한 핵이라는 절체절명의 이슈를 강건너 불처럼 바라보다가 나라를 고립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정권은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지 사회를 변혁하려 해서는 안된다. 국가경영은 경제를 성장시켜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일이며, 나라의 안보를 튼튼히 하여 사회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현재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에 이르며, 자고 일어나면 3,000명의 새로운 불량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전 정권이나 이 정권은 국민들에게 더 많은 휴일을 주지 못해 안달이다. 근면하게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기업인들은 또 어떠한가. 하루가 다르게 기업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투자, 고용, 생산, 소비의 선순환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모두 다 경제에 관한 비전과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정부정책을 믿지 못하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기꺼이 투자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물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한다. 이들 집단간의 이해관계를 미리미리 조절하여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이번 화물연대의 집단행동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정부에 중추신경조직이 살아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분쟁이 폭발했을 때 그 해결과정에서 정부가 원칙을 무너뜨리면 안된다. 그러나 이 정권 들어서 발생한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 등의 사태에서 원칙을 무너뜨린 측은 바로 정부였다. 입만 열면 원칙과 소신을 떠들던 사람들이 일만 터지면 우왕좌왕하면서 편법을 동원한다. 나쁜 선례는 반드시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마련이다. 이 컬럼을 쓰고 있는 시간에 교육부가 전교조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문제에 관하여 타협을 이루어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 대혼란을 예고하는 경적음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나라에 교육정책당국이 교육부외에 또 하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알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말 그대로 노동조합이다. 교육정책을 가지고 정부와 협상을 벌리거나 집단의 힘으로 정부를 굴복시킬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원칙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강둑이 무너지면 닥쳐올 것은 재앙밖에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닌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도,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이 정부에는 없는 것 같다.
                        
최근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을 놓고 많은 국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상테이블에 우리 스스로 앉지않아도 된다고 말해놓았는데 엊그제 미일정상회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그 협상테이블에 반드시 앉아야 된다고 합의하였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민족의 생존이 걸린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도대체 방관자인가, 국외자인가, 아니면 당사자인가. 참으로 처연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언제나 어려움은 있게 마련이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더 큰 성장과 도약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어려움의 본질을 외면하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리더십이 끝내 상황을 위기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 정권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려 할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본질을 꿰뚫고 비전과 전략을 마련한 다음 국민들에게 호소할 것은 호소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야 할 것이다. 1979년 집권한 대처 수상이 몰락하는 석양의 나라 영국을 어떻게 구해낼 수 있었는가. 70년대 기업과 자본의 탈출로 산업공동화의 위기를 맞은 미국의 경제를 레이건 대통령이 어떠한 리더십으로 소생시켰는가.

정답은 단 하나이다. 지도자의 용기있고 정직한 리더십이다. 위기적 상황은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직하고 용기있는 리더십에 의하여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국가위기대응특별법”문제를 놓고 불필요한 논쟁이 없기를 바란다.


200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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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개혁을 말한다.
-- 퇴보주의와의 전쟁(1)--


한국 정치의 최대 유행어는 “개혁”이다. 어느 시대이든 개혁이 운위되지 않은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 말이 홍수를 이룬 시대가 있었을까.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권의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변화와 개혁”이었다. 나는 그 정권의 초대 노동부 장관으로서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곧 이어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로서 지방경영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데 헌신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8년 국가부도의 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권에게도 임기 내내 개혁은 숙명적인 과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3년 출범한 이 정권에서 부르짖는 개혁의 구호 속에서는 과거 정권 시절의 그 것 속에 담겨있던 최소한의 진실성, 절박성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남발하여 혼란스럽게 느껴지고, 너무 시끄러워 오히려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개혁(reform)은 혁명(revolution)과 다르다.

낡은 집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자. 낡은 부분을 고쳐 모두 다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을 때, 그 구성원들의 동의와 참여 속에 집을 고친다면, 우리는 이것을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우월한 힘을 갖고 있는 세력이 자기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살면서 언제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 힘없는 사람들을 억누르며 집의 수리를 거부할 때, 억눌린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억누르는 자들을 타도하고 집을 허물어 새로운 집을 짓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개혁에는 설득해야 할 반대자는 있어도 타도해야 할 적은 없다. 이에 반하여 혁명에는 타도해야 할 적이 있다.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한다.

지금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누구를 설득할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누군가를 적대시하고, 적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한다. 통합을 외치면서 분열을 조장한다. 말은 개혁인데, 행동은 혁명을 닮았다. 자기들 내부에서조차 1966년 폭발한 중국 문화혁명의 선봉인 홍위병의 행동과 같다고 공공연히 비판하는 소리가 들린다.

혁명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도 좋다. 그러나 혁명을 위하여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과 열정 그리고 헌신이 뒤따라야 한다. 그들의 어디에서 이런 미덕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들의 외침은 메아리 없는 공허함으로 시대의 절망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혁명은 구호와 적대감만으로도 불이 붙을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은 비전, 목표, 청사진, 설계와 전략이 준비되지 않으면 구성원들의 동의와 참여를 끌어낼 방도가 없다.
다시 말하면, 혁명은 감성이요, 개혁은 과학이다. 그런데 그들의 몸짓에서 감성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그들의 행동에서 과학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입에서 진지한 고뇌 끝에 나오는 비전과 전략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모두 다 혼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개혁은 특정 세력, 특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우리 시대의 성공적인 개혁은 보수적인 세력에 의해 추진되었다. 영국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 몰락하는 영국을 다시 살려 놓았고, 미국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산업공동화로 치닫던 경제를 다시 회생시킨 사실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문화혁명의 극좌파를 몰아내고 중국의 현대화를 이끈 실용주의자 등소평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확고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개혁을 자기들의 전유물로 치부하고 자기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개혁의 적으로 공격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이보다 더 어리석고 가소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개혁이든 혁명이든 결국은 더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개혁과 혁명 모두 내재적으로 진보(progress)를 함축하는 개념인 것이다. 사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할지 모른다. 과연 그러한가. 나의 대답은 정반대이다. 그들이 타고 있는 궤도는 불행이도 퇴보(regress)이거나 퇴행(retrogress)의 궤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conservation)라는 말처럼 인기 없는 말도 드물다. 앞으로 그 원인을 분석하여 이 컬럼에 써 나갈 생각이다.          
     
사실 보수나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고르바쵸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칠 때 소비에트 사회주의체제를 옹호하는자들은 보수이고, 자본주의와 다원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은 진보였다. 반대로 자유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빈부격차를 시정하기 위하여 사회주의원리 일부를 원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진보이고, 이를 반대하면 보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 구분이 통용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세계화와 지식화의 거대한 물결이 과거의 패러다임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시대와 문명을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 어디를 보아도 미래를 향한 창조와 개척의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다 소멸되었거나 그냥 두어도 자연히 소멸할 과거의 모순을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 치환해 놓고 누군가를 적으로 몰며 소란을 피운다. 이것이 퇴보이고 퇴행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건강한 사람도 때로는 악몽에 시달릴 수 있다.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악몽의 그림자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한 나라, 한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진정한 적은 퇴보주의이다. 시대의 대전환을 외면하고 퇴보와 퇴행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워 그 악몽을 털고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퇴보주의의 악몽을 벗어났을 때 우리 모두는 위대한 미래의 창조를 향해 건강하고 생산적인 경쟁과 협력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2003.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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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유난히도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벌써 1월도 끝을 향하고 봄 기운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 몇 번이고 꽃샘 추위가 더 있겠지만 봄이 오는 대세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제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아내, 그리고 동서내외와 함께 여주에 있는 목아 박물관과 명성황후 생가를 찾았다.

목아 박물관은 내가 도지사 시절 방문한 이래 5년 가까이 찾아보지 못하였는데 이제 와 보니 큰 건물이 두 채나 더 지어져 있고 새로운 조각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예술가들을 알고 또 그분들을 존경하지만, 이 박물관의 박찬수 관장을 특히 존경한다. '불교 조각예술' 이 한 분야에 바치는 그 분의 예술 혼과 장인정신을 보노라면 내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나는 목숨을 걸고 정치인으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 하였던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 않고 불쑥 찾아 왔는데 누구로부터인가 연락을 받고 한참 관람중인 우리에게 관장께서 달려왔다. 얼마나 반가운 만남이란 말인가. 우리는 손을 꼭 잡고 한참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직 점심을 하지 못하였다고 하니 우리를 경내에 있는 식당 '걸구쟁이네 집'으로 안내한다. 아, 음식이 어찌 이리도 정갈하고 맛이 있을 수 있을까. 이곳에 오면 누구나 '걸구'라는 이름처럼 탐욕스럽게 과식할 것만 같다. 식후에 관장 사모님으로부터 영월 산 오미자 차와 산정의 곶감을 대접받았다. 옆방에서는 관장의 두 아들과 학예사 아가씨가 만여 점의 수장 예술품을 분류, 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관장 내외분께 '두 아들이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힘든 불교예술에 투신할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두 내외가 아주 자랑스러워 한다.

98년 봄쯤으로 기억된다. 실리콘밸리 샌 호세에 있는 휴렛 패커드사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 때 나는 2층 회장실 바로 옆에 아담한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는 것을 보고 아주 깊은 인상을 받은 일이 있다. 일본의 협력회사가 이 실내정원을 만들어 기증했다는 것이다. 세계적 회사 HP의 최고경영자가 일본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어떤 구상을 하게 될까? 나는 그때 문화와 비즈니스가 하나로 융합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문화적 역량없이 경제적 번영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1700 여 년 전 이 땅에 전래되어 찬란하게 꽃을 피운 불교 문화예술, 그 맥을 잇기 위해 오늘도 땀과 눈물과 혼을 쏟아 붓는 박 관장과 그 가족들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떠나는 나에게 박 관장이 덕담 한마디를 건넨다. "지사께서 설립한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매년 80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아 그래도 박물관 경영에 다소 도움이 됩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박물관을 나와 우리 일행은 여주읍 능현리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를 찾았다. 지사시절 생가 한 채만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당시 박용국 군수와 상의한 끝에 이 지역을 역사 유적지로 단장하여 교육과 관광의 명소로 만들자고 한 것이 8년 전쯤 일이다. 와서 보니 어느 정도 규모도 갖추고, 찾는 이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다. 구 한 말 스러져 가는 국운을 일으키려고 몸부림치다 순국한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의 생가가 이제 반듯한 모습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곳에서 우리는 국운이 쇠하고 나라가 망했을 때 어떤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한 위대한 여인의 생애를 통해 배우고 느끼게 된다.

일요일 오후 여주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멀기만 하다. 동해안과 태백산맥에서 휴식을 취한 사람들이 밀물처럼 돌아온다. 그러나 이 날 만큼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술의 심연과 역사의 격랑이 끝없는 상상력을 불어 넣어주기 때문이다. 아, 어제는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200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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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부는 바람(1) 붉은 태양은 떠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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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당의 단배식(團拜式)에 참석하였다. 대선에서의 참담한 패배와 총선에 대한 비관론 때문인지 당원의 수도 적고 열기도 전과 같지 않다.

참으로 큰 책임을 통감한다. 

나는 국립묘지를 향해 한강 강변도로를 달리며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았다. 2008년 새해를 밝히는 첫 태양이다. 오늘의 태양은 유난히도 커  보인다. 우리 겨레의 소망을 모두 담은 탓일까. 아무쪼록 올 한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신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빈다.

우리는 호국영령에 대한 참배를 마치고 수유리 4.19 묘지를 찾았다.  새해 원단(元旦)의 햇빛이 도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묘역을 가득 메우고 있다.

참배객이라고는 우리 일행 밖에 없다. 몇 몇 어머니들이 있어 살펴보니 바로 유족회 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다. 48년 전 민주혁명의 제단에 아들을 바친 어머니들의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있는 것을 보았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이다.  묘역 뒤로 인수봉이 아침 태양을  반사하지만 시내보다 훨씬 더 추위를 느낀다. 그래도 여성 당원들이 주는 커피 한 잔을 마시니 그 향(香)과 인정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묘역을 뒤로 한 채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상념에 젖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흔히 자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한다. 그 지방자치가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모두 한나라당의 일당 지배로 떨어졌다.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의회까지 전혀 견제세력이 없는 완전한 일당 지배로 말이다.

한 마디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사라졌다.

이제 중앙정부까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남은 것은 국회뿐이다. 이번 총선에서 과연 견제세력이 만들어질 것인가. 대선을 휩쓴 민심의 쓰나미(tsunami, 해일)가 총선에도 이어진다면 한나라당이 230석을 넘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회마저 일당 지배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게 되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사망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고귀한 생명을 바친 영령들께 방금 내가 무슨 낯으로 머리를 숙였는지 혼란을 느낀다. 나의 무능과 무력감이 뼛속 깊이 스며온다. 

나는 다시 눈을 들어 붉은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 우리 가슴에 희망과 열정도 식지 않으리라! 나의 가슴은 다시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렇다!  우리는 민주주의 지평을 지켜야 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흉포해지고 부패하게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선에서 견제세력을 만드는 일은 나와 민주당의 사명이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    

집에 도착하니 대모산 정상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시간은 위대한 변화를 몰고 온다. 이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나는 변화의 흐름을 읽는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으리!



2008.   1.    1
이     인     제


 

"IJ World를 지켜주시는 네티즌 여러분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망하시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복된 한해가 되기를 빕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함께 사랑하고 고뇌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인입니다.
우리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꿈이 너무나 아름답고 크기에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시련을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사전에 포기나 좌절은 없습니다.
꿈을 향한 도전!  이로써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언제나 건강하며 신의 은총 충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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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복 된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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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해 역사적인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만 끼쳐드렸습니다.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반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주당에 큰 부담을 안겨드린 일입니다. 모두 다 저의 능력이 부족하고 덕이 모자란 탓입니다.

저는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백의종군 할 각오입니다.

국민은 이 땅의 위대한 주인으로서 한번 결단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이명박 대통령은 어려운 경제를 살리고 서민 중산층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오직 국민의 편에 서서 새 정부가 국민을 위해 올바로 일할 수 있도록 모든 역할을 다하려 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절망의 그림자를 지우고 희망의 빛을 채워야 합니다.

저의 꿈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지식경제 강국이 되고 문화 대국이 되며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을 이루는 일입니다.

저는 20년 전 정치를 시작하면서 키워 온 이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심해 본 일이 없습니다. 시련이 닥칠 때마다 저를 지켜준 것은 바로 이 꿈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저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주신 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다시 광야의 바람 앞에 서 있는 저에게 더 뜨거운 사랑과 더 무거운 채찍을 동시에 허락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불굴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서 국민의 뜻을 받들고 나라의 장래를 개척하는 정치인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망만 끼쳐드린데 대하여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올 한해 새로운 계획들이 뜻대로 이루어지고 가정에 평안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저의 인사를 마칩니다.

항상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2008.  새해 아침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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