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난히도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벌써 1월도 끝을 향하고 봄 기운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 몇 번이고 꽃샘 추위가 더 있겠지만 봄이 오는 대세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제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아내, 그리고 동서내외와 함께 여주에 있는 목아 박물관과 명성황후 생가를 찾았다.

목아 박물관은 내가 도지사 시절 방문한 이래 5년 가까이 찾아보지 못하였는데 이제 와 보니 큰 건물이 두 채나 더 지어져 있고 새로운 조각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예술가들을 알고 또 그분들을 존경하지만, 이 박물관의 박찬수 관장을 특히 존경한다. '불교 조각예술' 이 한 분야에 바치는 그 분의 예술 혼과 장인정신을 보노라면 내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나는 목숨을 걸고 정치인으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 하였던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 않고 불쑥 찾아 왔는데 누구로부터인가 연락을 받고 한참 관람중인 우리에게 관장께서 달려왔다. 얼마나 반가운 만남이란 말인가. 우리는 손을 꼭 잡고 한참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직 점심을 하지 못하였다고 하니 우리를 경내에 있는 식당 '걸구쟁이네 집'으로 안내한다. 아, 음식이 어찌 이리도 정갈하고 맛이 있을 수 있을까. 이곳에 오면 누구나 '걸구'라는 이름처럼 탐욕스럽게 과식할 것만 같다. 식후에 관장 사모님으로부터 영월 산 오미자 차와 산정의 곶감을 대접받았다. 옆방에서는 관장의 두 아들과 학예사 아가씨가 만여 점의 수장 예술품을 분류, 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관장 내외분께 '두 아들이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힘든 불교예술에 투신할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두 내외가 아주 자랑스러워 한다.

98년 봄쯤으로 기억된다. 실리콘밸리 샌 호세에 있는 휴렛 패커드사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 때 나는 2층 회장실 바로 옆에 아담한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는 것을 보고 아주 깊은 인상을 받은 일이 있다. 일본의 협력회사가 이 실내정원을 만들어 기증했다는 것이다. 세계적 회사 HP의 최고경영자가 일본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어떤 구상을 하게 될까? 나는 그때 문화와 비즈니스가 하나로 융합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문화적 역량없이 경제적 번영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1700 여 년 전 이 땅에 전래되어 찬란하게 꽃을 피운 불교 문화예술, 그 맥을 잇기 위해 오늘도 땀과 눈물과 혼을 쏟아 붓는 박 관장과 그 가족들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떠나는 나에게 박 관장이 덕담 한마디를 건넨다. "지사께서 설립한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매년 80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아 그래도 박물관 경영에 다소 도움이 됩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박물관을 나와 우리 일행은 여주읍 능현리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를 찾았다. 지사시절 생가 한 채만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당시 박용국 군수와 상의한 끝에 이 지역을 역사 유적지로 단장하여 교육과 관광의 명소로 만들자고 한 것이 8년 전쯤 일이다. 와서 보니 어느 정도 규모도 갖추고, 찾는 이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다. 구 한 말 스러져 가는 국운을 일으키려고 몸부림치다 순국한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의 생가가 이제 반듯한 모습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곳에서 우리는 국운이 쇠하고 나라가 망했을 때 어떤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한 위대한 여인의 생애를 통해 배우고 느끼게 된다.

일요일 오후 여주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멀기만 하다. 동해안과 태백산맥에서 휴식을 취한 사람들이 밀물처럼 돌아온다. 그러나 이 날 만큼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술의 심연과 역사의 격랑이 끝없는 상상력을 불어 넣어주기 때문이다. 아, 어제는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2003. 1. 20.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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