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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3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6) 한강은 흐른다
  2. 2008.01.09 [IJ 에세이] 한강을 달린다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6)

한강은 흐른다


  성큼 가을이 다가왔다. 하늘은 높아지고, 바람은 상큼해진다. 아침 약속이 없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 집 앞에서 탄천(炭川, 성남 방면에서 흘러와 올림픽 경기장 앞에서 한강으로 합류되는 지천)으로 나오면 국회의사당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막힘없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이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흐르는 한강과 나의 몸이 하나가 되는 기분에 젖는다.  소리 없이 도도하게, 유유히 흐르는 한강! 그 한강과 일체가 되는 희열에 피로를 느끼지 않고 여의도에 진입한다.

  한강 고수부지 곳곳에 비둘기들이 무리지어 먹이를 좇는다. 언제 보아도 비둘기는 그 부드러운 자태로 평화 그 자체를 상징한다. 번영, 평화, 하나 되는 통일! 소리 없이 흐르는 한강과 강변을 노니는 비둘기, 그리고 풍요로운 결실을 재촉하는 따가운 햇살의 가을 하늘! 이 위대한 자연의 앙상블 속을 질주하다 보면, 우울했던 마음은 어느새 희망으로 채워진다.

  아, 내가 구치소 독방의 창가에서 부화와 성장을 도우며 함께 지냈던 비둘기 가족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고독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나라는 60, 70년대 눈부신 산업화의 성공을 이룬다.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경제 성장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승전한 영국과 프랑스를 따돌리며 비약적인 경제부흥을 이루자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한강의 기적이 훨씬 더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비록 잿더미가 되었지만 산업사회의 전통과 훈련된 국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진정한 의미의 기적일 것이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라인강은 무슨 의미로 쓰일까? 내가 독일 사람들로부터 들은 바는 이렇다. 라인강은 자연의 수로로서 통일 전 서독의 물류를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었다. 화물 물동량은 거의 60%를 감당했다고 하니 믿기 어렵다. 이렇게 건설비도, 유지비도 필요없는 천혜의 자연 수로인 라인강 덕분에 기적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후 독일의 경제 기적은 라인강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한강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눈부신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낸 우리 ‘국민’ 또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상징한다. 저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는 우리 민족의 숨어있던 웅혼의 기상이 폭발하고, 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속에 녹아 있는 우리 국민의 열정과 근면함이 충일(充溢)한 결과, 기적같은 산업화의 성공이 가능했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도 한강은 흐른다. 한반도가 만들어진 그 날부터 지구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한강은 쉬지 않고 흐른다. 인류가 창조되면서부터 이 유역에 터전을 잡고 살아 온 우리 민족 또한 끝없이 문명을 진화시키면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온 인류가 기적이라고 칭송하는 산업화의 기적을 만들어 낸 역사를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며 흐를 것이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성공의 역사를 지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모두 아는 바대로 급속한 산업화의 그늘은 독재였다. 그러나 그 독재가 내세우는 명분은 경제성장이요, 자유민주주의이며 시장경제였다. 인민을 굶겨 죽이고 권력을 세습하면서 이미 실패한 이상(理想)으로 판명이 난 낡은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북의 이념독재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산업화의 성취와 더불어 민주화의 역량을 키웠고, 투쟁을 통해 마침내 민주주의의 지평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하나의 조건 또는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 질서, 문화, 가치 등 알맹이를 채우고 발전시켜 나갈 때,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국민의 행복은 증진된다.

  이렇게 우리의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하는 놀라운 성공의 역사이다. 다만, 민주화를 이끌어 온 세력이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한 1993년 이래 새로운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탁월한 전략을 세워 단합된 국민의 힘으로 이를 추진해 왔느냐이다. 누구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하리라. 오히려 절망하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생각해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나 또한 엄중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어디에 그 원인이 있을까.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독재가 사라지면서 끝이 난다. 더 이상 싸울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미래를 위해 창조와 개척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난 민주화 정권들은 사라진 독재의 그림자와 싸웠고, 미래의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마련하는 데 게을렀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국가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이다.

  그것도 모자라 현 정권은 아예 성공의 현대사를 주도해 온 모든 세력을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매도하고, 이들을 무대에서 밀어내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해서 무엇하느냐며 날을 세운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독재와 권위주의의 그림자와 전쟁을 선포하며, 나아가 이미 화석화 된 일제시대 역사까지 파헤치려 한다.

  산업화의 역사뿐만 아니라, 건국의 역사까지도 송두리째 부정해버리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성공한 역사를 발판으로 미래를 향해 질주해도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국의 추격에 고전을 면치 못할 판인데, 과거를 향해 돌진하며 내부의 분열과 대결을 고취하니, 오, 나라의 장래는 어찌되는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예견된 것이었고, 필연이었다. 나는 2002년 경선 당시부터 국민들에게 오늘의 운명을 말씀드리며 호소하지 않았던가. 오늘 보도를 보니, 국가의 원로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친북 반미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내가 얼마나 소리쳐 경고했던가. 친북 반미 세력은 안보를 무너뜨리고, 급진좌파는 경제를 붕괴시켜, 국가를 재앙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늦었지만, 그래도 성공의 현대사를 이끌어 온 원로들이 국민과 역사 앞에 용기 있게 올바른 말씀을 해 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넓게 보자. 개인이나, 회사나, 국가의 진운에 우여곡절은 있는 법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도 그 원인을 우리 사회 안에서  키워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극복하면 될 일이다. 극복은 부드럽지만 빠르게 해야 한다. 저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을 보라.  부드럽다.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쉬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대해에 합류한다.

  오늘 우리에게 직면한 이 역사의 도전에 당황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국민 아닌가.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권력은 국민이 세우고 국민이 허문다. 우리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이 국민의 위대한 주권으로 계속하여 시대에 맞는 권력을 세워 왔다. 권력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주권자를 배반할 때, 국민의 위대한 힘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리하여 쉬지 않고 진화를 거듭할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 그 한강이 소리 없이 흐른다. 위대한 국민의 힘이 넘친다. 무서운 주권자의 결단이 일렁인다. 역사를 두려워하라! 나는 한강을 달리며 온 몸으로 오늘을 받아들인다. 한강은 말한다. 또 한번의 기적이 필요하다고. 번영과 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한 또 한번의 기적! 그 기적을 위해 오늘의 시련은 약이 될 수 있다고!

  온 몸이 땀으로 젖는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침묵으로 던지는 소리에 나의 마음도 흠뻑 젖는다.


2004.  9.  10

이   인   제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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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달린다.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에서 강변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강남구 자곡동의 집까지 약 24km를 달린다. 작년 연말부터 골프를 멀리하고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는데 정말 좋은 운동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 두 분이 꼭 자전거를 타보라고 권유해 온 것이다. 자기들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즐기던 골프를 거의 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분들의 말이 틀린 소리가 아니다. 자전거의 매력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오늘은 마침 저녁 약속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일찍 퇴근을 하기로 하였다.

한강은 흐른다. 민족의 혼이 용해되어 흐르는 강이다. 태백준령으로부터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황해에 이르는 강.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 속에서 거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살아 온 선인들의 숨결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때마침 서풍이 불어 물결이 서에서 동으로 굽이친다. 마치 강물이 나와 함께 동쪽을 향해 흐르는 것만 같다. 그러나 한갓 바람이 어떻게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으리요. 한강은 여전히 황해를 향해 서쪽으로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을.

그러므로 바람에 흔들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흐름의 본질을 놓치고 표면의 현상에 매몰되어 사태를 잘못 판단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 시대의 진운을 거꾸로 가려다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던 구한말의 어리석은 역사. 한강은 오늘도 우리에게 그 어리석음을 결코 되풀이 하지 말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하나가 되어가고, 인간의 창조적 역량이 폭발한다. 그리하여 지구촌 시대가 열리고, 지식문명의 시대가 밝아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떨치고 문을 활짝 열어 세계로 나가야 한다. 권력은 개입의 유혹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무한의 자유를 허용하며 그들이 도전과 개척의 전선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과연 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강물 여기 저기 위로 점점이 이름 모를 철새들이 무리지어 먹이를 찾고 있다. 강가의 모래톱에는 오리떼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어디에서 날아 온 새들일까.

나는 지난 해 바이칼 호수를 여행한 일이 있다. 몽골의 울란바투르를 거쳐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여 마침내 꿈에 그리던 바이칼의 품에 안기었다. 징기스칸의 어머니 허엘룬이 태어나 성장한 아론 섬에서 하루 밤을 보낸 것이다. 지구 총 담수의 20%를 담고 있다는 바이칼의 위용 앞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가장 깊은 곳이 1800m가 넘는 이 호수의 파도는 바다 못지 않게 높고 거칠기만 하다. 그래서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일체 배의 출항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호수도 혹독한 시베리아의 추위에는 견디지 못하고 긴 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게 마련이다. 얼음의 두께가 1m 50cm에 이르기 때문에 대형 트럭들이 호수 위를 질주한다고 한다. 그러니 시베리아의 새들이 그 긴 겨울 동안 먹이를 찾아 이 곳 한강을 찾아 왔으리라.


한강에 철새들이 많이 몰려 올수록 그만큼 먹이 감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지난 40여년 동안 한강의 생태계는 얼마나 긴고통의 터널을 달려 왔을까. 이제 한강은 다시 생명이 넘치는 강으로 태어나야 한다.

즐비한 새들의 무리를 바라보며 생명의 냄새를 맡는다. 비싼 값의 깨비아가 철갑상어의 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철갑상어가 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 한강을 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경기지사로 일할 때 상어만을 박제하는 전문가를 초청하여 전시회를 연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본 멋진 철갑상어의 박제가 바로 60년대 초 한강에서 잡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한 2년 전 쯤인가, 나는 한 텔레비전 프로에서 철갑상어의 치어가 한강에서 잡혔다는 보도를 접하고 잔잔한 흥분을 느낀 일이 있다.

그렇다. 이제 한강을 생명이 충만한 강으로 만들어나가야지. 철갑상어가 회유하고 온갖 생태계가 복원되도록 해야지. 앞으로는 더 이상 자연이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지. 나는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중얼 중얼 생각을 이어 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도심의 미로가 아닌 강을 따라 달리다 보니 생명의 신비와 경외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한강을 달린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문명의 숲이 보일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는 도시의 빌딩들, 그리고 강변 좌우를 달리는 끝없는 자동차의 물결. 한강을 달리며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의 신비함을 호흡한다. 문명의 탁류속을 숨가쁘게 살아가며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말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으로부터 자연과 조화하는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말 그대로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출발한지 한시간 쯤 지나자 잠실종합체육관이 눈 앞에 보인다. 왼 쪽으로 탄천을 따라 달리면 탄천 본류와 양재천의 합류지점이 나온다. 종전처럼 탄천 본류를 따라 가기로 하였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 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비가 온데다 공사 차량들이 다니면서 길을 온통 진흙탕으로 만들어 놓았다. 도저히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다. 다시 돌아나와 양재천을 따라 큰 길로 올라 선다. 그리고 보도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세상은 어두움에 싸이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다. 몸과 마음이 새처럼 가벼워진다. 참으로 상쾌한 퇴근길이다.



2003. 3. 10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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