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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2 양 날개의 곡예
  2. 2008.01.06 [IJ 논단] “국가위기대응특별법”을 마련한다는데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2)

양 날개의 곡예



▲ 노무현 대통령이 20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주말 나는 나라의 운명을 놓고 노 정권이 벌이는 두 가지의 곡예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었다. 하나는 멀리 미국에서 북핵 문제를 놓고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뒤 이어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있은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대화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정부가 추진한다는 뉴딜정책의 내용 가운데 국민들이 낸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한다는 이슈를 놓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반대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터진 파문이다.

   북핵문제가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운명에 직결되는 가장 뜨거운 문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10조가 넘는 연기금의 증시투입 문제도 이것이 실패로 끝날 때 몰고 올 사회 경제적 충격을 생각하면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리라.

   연기금의 증시투입은 국민의 피와 땀이 얼룩진 미래를 위한 담보까지도 거덜 낼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으로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본격적으로 거론하기로 하고 오늘은 북핵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13일 L.A.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북핵에 관하여 했다는 말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그는 말하기를,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경우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한 북한의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곧 ‘일 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수정한 뒤, 그 수정의 이유를 “북한이 합리적이란 표현에 대해선 미 국민이 매우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을 잘못 표현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미 국민이 싫어해서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말과 ‘일리 있다’는 표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북핵문제에 관하여 갖고 있는 속마음이 노출되었고, 그것이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의 진심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 나라의 이익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보자! 과연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이 자위를 위한 것이며 그들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인가. 핵에 자위를 위한 것과 공격을 위한 것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핵은 핵일 뿐이다. 그 자체로서 위협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오는 무기인 것이다. 북의 핵이 동경이나 워싱턴에 위협과 재앙이 되기보다는 서울을 직접적인 위협과 재앙의 범주 안에 넣는다는 것을 누가 부정한단 말인가.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차원을 떠나 우리는 북의 핵개발을 반대한다. 이미 1992년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공동으로 선언하였다. 나아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정에서 북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약속한 경수로 건설의 부담을 우리가 대부분 부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북의 배신이었다. 그들은 동결된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방식을 우회하여 우라늄 농축 방식을 통한 핵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자연히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세는 극도로 악화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 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틀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3차례에 걸친 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4차 회담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이 먼저 돌이킬 수 없는 검증의 방법으로 핵을 포기해야 하며, 그 후 북한이 요구하는 여러 사항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북은 미국의 보장과 보상이 있어야 하며 그 경우 북한은 핵을 동결할 수 있고, 이 두 가지는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의 포기도 아니고 핵의 동결이며, 도대체 보장과 보상이라는 수단과 범위가 막연하기만 한 협상조건을 들고 나와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틈이 나는 대로 이미 충분한 핵 억지력을 갖추었다고 우리와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처음부터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니 대한민국은 여기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와의 비핵화공동선언, 우리 부담으로 시행하던 경수로건설, 식량 등 인도적 지원과 경협을 통한 도움 같은 것은 아랑 곳 없다는 태도이다. 북핵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이것이 북이 우리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민감하고 결정적인 시점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다른 문제는 몰라도 북핵 문제는 북의 입장이 합리적이라던가, 일리가 있다는 말을 다른 자리도 아닌 미국에서 공식 연설을 통해 밝히다니, 아무리 선의로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이 핵 확산 방지를 위해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개인 차원에서는 호불호(好不好)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부 국가들은 엄청난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핵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를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북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합리적’ 또는 ‘일리 있다’는 수식어가 붙을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걸린 사안에 관하여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런 말을 미국에서 한 것이다. 9. 11 이후 미국은 반테러가 외교정책의 움직일 수 없는 틀이 되었다. 얼마 전 끝난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케리가 북핵에 관하여 부시보다 더 강경한 기조로 일관한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지난 20일(토요일) 산티아고에서 한미 정상이 만나 40분간 대화한 내용이 일부 공개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미국이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 관하여 견지해 온 입장에서 단 한치도 벗어난 것이 없다.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봉쇄나 무력이라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미리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국이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데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을 요구하는 것을 피하여 다자간의 틀을 만들었고,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노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솔직히 말하고, 그러기 때문에 미국이 북의 선(先) 핵 포기 주장을 완화하여 6자회담의 돌파구를 열어달라는 요청을 하고, 이에 대하여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 대통령은 L.A.에서 밝힌 자신의 생각을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일부 매체들은 ‘역대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출중한 회담’이었다며 낯 뜨거운 선전을 하는데 정말 낯이 뜨거울 뿐이다. L.A.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며 말하던 그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생각해보자. 북한이 왜 핵을 가지려 하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를 보장받고 경제지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개발하려 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고 또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었을 까닭이 없다. 그것이 아니라 현재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을 보유하는 길 밖에 없고, 따라서 핵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도라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변화를 수용할 생각이었다면 한반도에 이런 불안정한 정세는 조성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고,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아주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누가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한단 말인가. 오늘처럼 험악한 정세가 조성된 것은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거부하며 고립을 자초하고, 그런 상황에서 체제 유지의 길이 핵 보유라는 용납할 수 없는 전략을 들고 나온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조만간 4차 6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4차 회담의 향배가 평화적 해결이냐, 강제적 해결이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나는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 평화로 가는 첫 단추는 앞서 말한 대로 북한이 생각과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개방과 개혁으로 나올 때 핵이 북한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도움이 아니라 장애가 될 뿐이다. 개방과 개혁을 결단하고 국제사회에 진정한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진심으로 북한을 도울 것이며, 북을 위협할 세력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은 북한이 이렇게 생각과 전략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어설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당사국들에 어떤 양보를 구하며 허둥대는 것은 길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흥정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가 'vital issue'라고 말했다는데 vital은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이라는 뜻이다. 북핵이 미국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면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란 말인가. 나는 '운명이 걸려있는(fatal)'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저 흥정을 붙이는 자세로 될 일이 아니다. 근본으로부터 풀어내야 한다. 북이 개방과 개혁 이외에 길이 없는데 그것이 두려워 고립을 택하다 보니 핵개발이라는 어두운 골목에 갇히고 만 셈이 되었다. 그들이 개방과 개혁의 대도(大道)로 돌아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지 어설피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는 자세로는 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노 정권은 위험한 곡예를 그만 두고 진지한 자세로 북을 설득하는 일에 나서길 바란다.

2004. 11. 22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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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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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권이 출범한지 석달을 넘어서고 있다. 이 짧은 기간동안 경제, 사회, 안보와 외교 현장에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물론 정권 초기에는 불가피하게 국정의 혼란이 일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권 초기의 일시적 혼란을 국가위기로 연결하여 국민들이 걱정하는 일은 가까운 우리 헌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물며 국정을 담당한 정권 스스로가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특별한 대응을 논의하고 있으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람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이나 한나라당이 이를 맞받아 “국민 노릇 못해먹겠다”는 논평을 내놓는 모습을 바라보며 분노와 실망 이전에 허탈과 절망 속에 빠져들 국민들의 가슴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다.                      
             
과연 우리의 현 상황은 위기인가? 위기라면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위기 극복의 희망은 있는 것인가?

정부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일으킨다고 판단되는 파업과 집단행동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민간의 인력과 장비 징발, 업무복귀 명령 등을 할 수 있는 “국가위기대응특별법”의 제정을 검토중이라 한다.

무엇이 위기인지는 말하지 않고, 그 위기의 원인에 관하여 깊이 있는 성찰은 외면한 채, 위기의 징후로 나타난 현상을 강제로 소멸시킬 권력적 수단을 확보하겠다는 한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노동관계법에는 “직권중재”제도나, 노동부장관의 “긴급조정권”이라는 수단이 있고, 헌법상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최소한의 필요한 처분이나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대통령의 긴급권”이 부여되어 있다.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단행할 때 바로 이 긴급권을 발동하였다.

도대체 이 정권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특별법을 운위하는지 알 수 없다. 알면서도 특별법의 제정을 추진하려 한다면 그들의 의도는 자명하다. 권위적 통치를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제도화하여 독재의 문을 열겠다는 의도이다. 헌법상의 긴급권은 그야말로 예외적으로 발동되는 최소한의 권력인데 그러한 권력을 대통령이 일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겠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시대에 독재라니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기 바란다.

현재의 위기상황은 세 방향으로부터 몰려오고 있다.
하나는 경제, 특히 서민경제의 파탄이다. 둘은 사회구성원간의 대립과 갈등이다. 사회통합을 위해 땀흘려야 할 권력은 오히려 집단과 집단간의 적대감을 키워 점점 더 화해를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셋은 안보이다. 특히 북한 핵이라는 절체절명의 이슈를 강건너 불처럼 바라보다가 나라를 고립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정권은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지 사회를 변혁하려 해서는 안된다. 국가경영은 경제를 성장시켜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일이며, 나라의 안보를 튼튼히 하여 사회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현재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에 이르며, 자고 일어나면 3,000명의 새로운 불량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전 정권이나 이 정권은 국민들에게 더 많은 휴일을 주지 못해 안달이다. 근면하게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기업인들은 또 어떠한가. 하루가 다르게 기업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투자, 고용, 생산, 소비의 선순환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모두 다 경제에 관한 비전과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정부정책을 믿지 못하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기꺼이 투자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물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한다. 이들 집단간의 이해관계를 미리미리 조절하여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이번 화물연대의 집단행동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정부에 중추신경조직이 살아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분쟁이 폭발했을 때 그 해결과정에서 정부가 원칙을 무너뜨리면 안된다. 그러나 이 정권 들어서 발생한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 등의 사태에서 원칙을 무너뜨린 측은 바로 정부였다. 입만 열면 원칙과 소신을 떠들던 사람들이 일만 터지면 우왕좌왕하면서 편법을 동원한다. 나쁜 선례는 반드시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마련이다. 이 컬럼을 쓰고 있는 시간에 교육부가 전교조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문제에 관하여 타협을 이루어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 대혼란을 예고하는 경적음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나라에 교육정책당국이 교육부외에 또 하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알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말 그대로 노동조합이다. 교육정책을 가지고 정부와 협상을 벌리거나 집단의 힘으로 정부를 굴복시킬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원칙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강둑이 무너지면 닥쳐올 것은 재앙밖에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닌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도,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이 정부에는 없는 것 같다.
                        
최근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을 놓고 많은 국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상테이블에 우리 스스로 앉지않아도 된다고 말해놓았는데 엊그제 미일정상회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그 협상테이블에 반드시 앉아야 된다고 합의하였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민족의 생존이 걸린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도대체 방관자인가, 국외자인가, 아니면 당사자인가. 참으로 처연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언제나 어려움은 있게 마련이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더 큰 성장과 도약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어려움의 본질을 외면하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리더십이 끝내 상황을 위기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 정권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려 할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본질을 꿰뚫고 비전과 전략을 마련한 다음 국민들에게 호소할 것은 호소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야 할 것이다. 1979년 집권한 대처 수상이 몰락하는 석양의 나라 영국을 어떻게 구해낼 수 있었는가. 70년대 기업과 자본의 탈출로 산업공동화의 위기를 맞은 미국의 경제를 레이건 대통령이 어떠한 리더십으로 소생시켰는가.

정답은 단 하나이다. 지도자의 용기있고 정직한 리더십이다. 위기적 상황은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직하고 용기있는 리더십에 의하여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국가위기대응특별법”문제를 놓고 불필요한 논쟁이 없기를 바란다.


2003. 5. 26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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