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R후보를 처음 본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한창이던 6월 어느 일요일 집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선거유세장에서였다.

선거 유세장 같은 곳은 좀처럼 가지 않았던 내가 R후보의 선거유세장을 찾아갔던 이유는 당시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도청의 단체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궁금증과 그가 5공 청문회 스타라는 강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당시 R후보는 이미 광주 5공 청문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타 정치인이었고 문민정부에서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노동부장관을 하면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켜 온 그런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이런 R후보의 선거유세장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내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많은 유권자들이 모여 그의 선거유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당 후보들과 맞서는 선거유세가 아님에도 꽤나 많은 유권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그들도 나처럼 R후보의 유명세에 관심을 갖고 나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인기 있는 정치인임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였다.

유세장에 나온 많은 유권자들 중에서는 특히 평소 내가 객지에 나와 알고 지내온 C지방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 통닭집 주인,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등 주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이들의 고향은 모두 R후보 같은 C지방 사람들임이 틀림없었다.

『어이! 자네 정말 오래간만이구먼..』
『이번 민선도지사는 OOO를 뽑아줘야 되는 거여』
『이 사람이 5공 청문회 때 전OO를 혼내준 그 사람 아닌감?』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사투리는 내가 어느 지방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날 유세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화제는 단연코 R후보와 관련된 5공 광주청문회 이야기였다. 5공 광주청문회와 관련된 R후보의 이미지는 젊은 사람이 아주 당차게 정치군인들을 혼내 주었다는 평이었다.

내 기억으로도 당시 R후보가 속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다른 어느 야당의 국회의원들보다도 두드러진 청문회활동을 통하여 국민들의 뇌리에 크게 각인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R후보의 청문회 활동은 당시 많은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이때부터 “청문회스타”라는 애칭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이날 선거유세장에는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 보고 들어왔던 L모, K모 같은 지명도 높은 여당 국회의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지역출신 L모 국회의원은 5,6공 시절 여당의 사무총장과 총무까지 지낸 막강한 권력의 실세였음에도 이날은 선거유세장에 나와 R후보가 도착하기 전 분위기를 잡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5.6공 시절 명성을 날리던 분의 격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정치현실이지만 그것이 또 그분들이 가야 할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L의원이 유세분위기를 잡고 다른 장소로 떠나자마자 이번에는 곧바로 이날의 주인공인 R후보가 등장하였다.

“ 이OO, 이OO.이....." 지지자들의 연호가 유세장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았다.

시끄러웠지만 처음 보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R후보가 단상위로 올라왔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 그리고 5공 청문회 때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친애하는 도민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당이 일방적으로 저를 도지사후보로 지명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당 일각에서는 제가 경선에서 패할 수 도 있으니 안전하게 지명을 받아 도지사 후보가 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저는 단호히 거절하고 끝까지 당당하게 경선을 하여 도지사후보가 되었습니다.』
R후보의 연설은 계속 되었다.

『저는 여당 사상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도지사 후보가 되었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꼭 본선에서 민선도지사로 당선되겠습니다.』

R후보의 연설내용은 자신이 경선을 통해 도지사 후보가 되었다는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사실 당시 R후보와 경쟁을 벌였던 전직 관선도지사 출신의 I씨는 경선 후 이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끝내 고배를 들고 말았다. R지사의 열정적이고 단호한 연설에 대하여 많은 청중들이 반응하였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 우렁찬 목소리에 현란한 수식어나 지루한 정치용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 토해내는 R후보의 연설에 나 자신도 빠져 드는 듯 하였다.

이날 R후보의 인상 깊은 연설과 함께 또 하나 나의 눈길을 끈 일은 동행한 부인의 행동이었다. R후보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연단 위에 앉아 있던 여성 한 분이 단상 밑으로 내려와 땅 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청중들에게 절을 하였다. 사회자가 R후보의 부인이라고 소개하여 주었다.

한 여성이 맨땅에 갑자기 엎드려 큰절을 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로서 많은 청중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청중들의 힘찬 박수 소리가 분위기를 잘 증명해 주었다. 단상에서는 후보가, 단하에서는 부인이 멋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듯 하였다. 부인의 이날 행동은 맨땅위에서의 큰절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을 하는 여러 가지 행동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 OOO 후보를 잘 부탁합니다. 제가 OOO 안사람입니다.』

남편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거나 후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모습들이 그랬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부인을 잘 만나야 되는 거여.』

여기저기에서 청중들의 덕담이 오고 갔다. 두 분은 유세가 끝난 뒤에도 계속 운동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누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도 두 분과 악수를 나누었다. R후보와 나눈 강한 악수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남긴 유세장의 하루였다.


사이언스 | 등록 2007/11/1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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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2)

양 날개의 곡예



▲ 노무현 대통령이 20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주말 나는 나라의 운명을 놓고 노 정권이 벌이는 두 가지의 곡예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었다. 하나는 멀리 미국에서 북핵 문제를 놓고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뒤 이어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있은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대화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정부가 추진한다는 뉴딜정책의 내용 가운데 국민들이 낸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한다는 이슈를 놓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반대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터진 파문이다.

   북핵문제가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운명에 직결되는 가장 뜨거운 문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10조가 넘는 연기금의 증시투입 문제도 이것이 실패로 끝날 때 몰고 올 사회 경제적 충격을 생각하면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리라.

   연기금의 증시투입은 국민의 피와 땀이 얼룩진 미래를 위한 담보까지도 거덜 낼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으로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본격적으로 거론하기로 하고 오늘은 북핵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13일 L.A.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북핵에 관하여 했다는 말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그는 말하기를,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경우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한 북한의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곧 ‘일 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수정한 뒤, 그 수정의 이유를 “북한이 합리적이란 표현에 대해선 미 국민이 매우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을 잘못 표현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미 국민이 싫어해서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말과 ‘일리 있다’는 표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북핵문제에 관하여 갖고 있는 속마음이 노출되었고, 그것이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의 진심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 나라의 이익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보자! 과연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이 자위를 위한 것이며 그들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인가. 핵에 자위를 위한 것과 공격을 위한 것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핵은 핵일 뿐이다. 그 자체로서 위협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오는 무기인 것이다. 북의 핵이 동경이나 워싱턴에 위협과 재앙이 되기보다는 서울을 직접적인 위협과 재앙의 범주 안에 넣는다는 것을 누가 부정한단 말인가.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차원을 떠나 우리는 북의 핵개발을 반대한다. 이미 1992년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공동으로 선언하였다. 나아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정에서 북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약속한 경수로 건설의 부담을 우리가 대부분 부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북의 배신이었다. 그들은 동결된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방식을 우회하여 우라늄 농축 방식을 통한 핵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자연히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세는 극도로 악화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 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틀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3차례에 걸친 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4차 회담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이 먼저 돌이킬 수 없는 검증의 방법으로 핵을 포기해야 하며, 그 후 북한이 요구하는 여러 사항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북은 미국의 보장과 보상이 있어야 하며 그 경우 북한은 핵을 동결할 수 있고, 이 두 가지는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의 포기도 아니고 핵의 동결이며, 도대체 보장과 보상이라는 수단과 범위가 막연하기만 한 협상조건을 들고 나와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틈이 나는 대로 이미 충분한 핵 억지력을 갖추었다고 우리와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처음부터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니 대한민국은 여기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와의 비핵화공동선언, 우리 부담으로 시행하던 경수로건설, 식량 등 인도적 지원과 경협을 통한 도움 같은 것은 아랑 곳 없다는 태도이다. 북핵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이것이 북이 우리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민감하고 결정적인 시점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다른 문제는 몰라도 북핵 문제는 북의 입장이 합리적이라던가, 일리가 있다는 말을 다른 자리도 아닌 미국에서 공식 연설을 통해 밝히다니, 아무리 선의로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이 핵 확산 방지를 위해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개인 차원에서는 호불호(好不好)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부 국가들은 엄청난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핵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를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북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합리적’ 또는 ‘일리 있다’는 수식어가 붙을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걸린 사안에 관하여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런 말을 미국에서 한 것이다. 9. 11 이후 미국은 반테러가 외교정책의 움직일 수 없는 틀이 되었다. 얼마 전 끝난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케리가 북핵에 관하여 부시보다 더 강경한 기조로 일관한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지난 20일(토요일) 산티아고에서 한미 정상이 만나 40분간 대화한 내용이 일부 공개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미국이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 관하여 견지해 온 입장에서 단 한치도 벗어난 것이 없다.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봉쇄나 무력이라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미리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국이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데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을 요구하는 것을 피하여 다자간의 틀을 만들었고,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노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솔직히 말하고, 그러기 때문에 미국이 북의 선(先) 핵 포기 주장을 완화하여 6자회담의 돌파구를 열어달라는 요청을 하고, 이에 대하여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 대통령은 L.A.에서 밝힌 자신의 생각을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일부 매체들은 ‘역대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출중한 회담’이었다며 낯 뜨거운 선전을 하는데 정말 낯이 뜨거울 뿐이다. L.A.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며 말하던 그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생각해보자. 북한이 왜 핵을 가지려 하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를 보장받고 경제지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개발하려 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고 또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었을 까닭이 없다. 그것이 아니라 현재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을 보유하는 길 밖에 없고, 따라서 핵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도라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변화를 수용할 생각이었다면 한반도에 이런 불안정한 정세는 조성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고,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아주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누가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한단 말인가. 오늘처럼 험악한 정세가 조성된 것은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거부하며 고립을 자초하고, 그런 상황에서 체제 유지의 길이 핵 보유라는 용납할 수 없는 전략을 들고 나온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조만간 4차 6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4차 회담의 향배가 평화적 해결이냐, 강제적 해결이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나는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 평화로 가는 첫 단추는 앞서 말한 대로 북한이 생각과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개방과 개혁으로 나올 때 핵이 북한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도움이 아니라 장애가 될 뿐이다. 개방과 개혁을 결단하고 국제사회에 진정한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진심으로 북한을 도울 것이며, 북을 위협할 세력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은 북한이 이렇게 생각과 전략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어설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당사국들에 어떤 양보를 구하며 허둥대는 것은 길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흥정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가 'vital issue'라고 말했다는데 vital은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이라는 뜻이다. 북핵이 미국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면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란 말인가. 나는 '운명이 걸려있는(fatal)'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저 흥정을 붙이는 자세로 될 일이 아니다. 근본으로부터 풀어내야 한다. 북이 개방과 개혁 이외에 길이 없는데 그것이 두려워 고립을 택하다 보니 핵개발이라는 어두운 골목에 갇히고 만 셈이 되었다. 그들이 개방과 개혁의 대도(大道)로 돌아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지 어설피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는 자세로는 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노 정권은 위험한 곡예를 그만 두고 진지한 자세로 북을 설득하는 일에 나서길 바란다.

2004. 11. 22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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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부는 바람(3) 

 

융합의 시대


 모처럼 설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냈다. 그러다 보니 TV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하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 가운데 외국인 며느리를 맞은 가정의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했던가. 농촌 총각들이 장가를 가야 하는데 우리 처녀들이 농촌을 기피하여 큰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가 오래 되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주로 동남아를 비롯한 외국 처녀와의 국제결혼이었다.


 오랜 세월 단일 민족 공동체를 유지하던 나라에서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문화의 충돌을 유발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벌써 이렇게 국제결혼한 가정이 40만을 육박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多文化)가정은 예외가 아니라 일반의 문제가 되었다.


 나는 다문화 가정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우리 국민들이 어느 사이 이질적 문화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주목한다. 부끄러움이나 어색함은 찾을 길이 없다. 시부모도 동네 주민들도 축복으로 받아들인다.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몰고 온 이 거대한 흐름이 과연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나는 매우 긍정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다문화 가정은 곧 문화가 융합하는 현장이다. 문화의 융합이야말로 한 사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가져다준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유교문화, 불교문화, 기독교문화를 받아들여 전통문화와의 융합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질문화권의 사람을 받아들여 피를 섞는 융합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의도하지 않았던 이 놀라운 사람과 문화의 융합은 필연적으로 한국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우선 우리 사회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열 수 있는 개방성과 유연성을 키워줄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우리 국민들이 세계를 질주할 수 있는 강한 문화적 상상력을 충전시키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가 하나로 변모하는 시대를 맞아 역사의 신이 우리 민족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한 섭리라고 믿는다.


 미래학자 토플러가 말하였다. 정보기술이 제3의 물결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 융합하면서 제4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에서도 단연 융합기술(fusion technology)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술 뿐 만인가. 지식도 학문도 조직도 융합의 추세에 있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미래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역시 사람과 문화의 융합이리라.

 보라. 미국은 태생적으로 사람과 문화의 융합을 이루며 성장 발전해 온 사회이다. 그들이 세계화를 선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사람과 문화의 융합에 있다.


 우리 사회 다문화 가정에 대하여 이러한 긍정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국가의 정책도 사람과 문화의 융합을 통하여 한 가정의 행복은 물론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융합의 전선(前線)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다문화 가정 가족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2008.     2.     1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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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9)

- 젊은 학생과의 대화 -

이인제의원은 2004년 10월 7일, 오랜만에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젊은 대학생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정치학 수업의 일환으로 이인제 의원을 만난 노아성군과 조성철군은 장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대화록을 정리하여 이 곳에 싣는다.

-IJ월드-


이인제의원 (이하 ‘이’로 표기) :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좋군요. 뭐든지 궁금한 점은 다 물어보고 대화하도록 하지요. 발표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정치인을 많이 만나고 있겠네요?

학생(이하 ‘학’으로 표기) : 네

: 나를 만나는 것은 본인들이 선택한 것인가요, 아니면 교수님이 지정해준 것인가요?

: 학생들 자유로 선택해서 정치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원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 아... 무엇이든지 물어봐요.

: 유권자의 민원이나 여론을 어떻게 접수하고 파악하시는지요.

: 당에 많은 조직이 있습니다. 읍․면별로 협의회장이 있고, 당에는 간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로부터 지역구의 민원이 접수되면 시간을 정해서 그 민원인과 만납니다. 그래서 해결방안을 찾죠. 지구당을 법적으로는 없앴지만 당조직은 살아있으니까 그 조직으로부터 민원을 접수받기도 하고, 지금은 전화나 팩스, 이메일 등 통신이 많이 발달했으니까 그 통신수단을 이용해서 받기도 합니다.

: 당론과 개인의사가 다른 경우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서 소속의원들이 충분히 토론을 하고 그때 자기의 의견을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당론을 정할 경우에는 다수의 의견 중심으로 당론이 정해지기 때문에 소수의견을 가진 의원들은 갈등을 겪게 되죠. 당론은 권고적인 경우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꼭 관철시켜야겠다는 경우, 이렇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권고적일 경우에는 자기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 표결에 참여하면 되고, 확고한 당론일 경우에는 본인이 결심을 해야 되겠죠. 당론과 마찰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생각대로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죠. 그러한 경우에는 당과 갈등을 겪게 되겠지요. 당의 경우에는 징계를 한다던지... 자기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현재 국가의 가장 큰 현안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외교나 안보, 국제 등 여러 문제가 있는데요.

: 제일 큰 현안은 경제입니다. 경제! 우리 경제가 아주 후퇴하고 있으니까 경제를 어떻게 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죠. 예전에는 분배모순이나 불평등이라는 말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제 그런 주장을 하던 사람들도 요즘에는 경제 성장의 원천이 고갈되고 성장 동력이 결핍이 됐다는 것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경제 성장의 원천을 넓히고 경제 성장 동력을 새롭게 충전하느냐‘ 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안보에 있어서 한․미 동맹 약화라든지 북한 핵개발을 비롯한 한반도 정세 불안정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그 자체로도 큰 문제이지만 이것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경제문제라고 봅니다.

: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상임위에서 어떤 활동을 하실 계획이신지요.

: 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 있습니다. 노동, 환경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환경은 그 자체가 생명이고, 삶의 질이고, 경제 문제이기 때문에 환경 행정이 쉬지 않고 발전해야 됩니다. 또 노동은 경제 발전에 맞추어서 빠른 속도로 노동시장이 변화하고 있잖아요. 산업사회일 때는 단순하고 획일적인 노동 그리고 집단적인 노사관계 이런 것들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지식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시장은 개인의 특성, 자질이나 능력이나 이런 것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게 되고, 집단적인 노사 관계 보다는 개별적인 노사관계가 더 중시되고, 그런 그 경제 발전 단계에 맞는 노동시장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분야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노동행정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그것에 맞춰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 지금 맡고 계신 환경노동위원회가 전공 영역에 맞는지요.

: 노동은 장관도 했었기 때문에 내 전문영역이고, 환경은 이번에 처음 하지만 평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기도지사 할 때 3가지를 내세웠는데 경제, 문화, 다른 하나가 환경이었습니다. 경기도지사 할 때 3대 가치 중 하나로 내세웠기 때문에 전문성이 있다고 봅니다. 내가 또 얼마 전에 ‘회의적환경주의자‘라는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 노동문제와 어떻게 인연을 맺으셔서 장관을 하시게 되셨는지요.

: 노동위원회에 4년 있었습니다. 13대 초선 때, 그래서 14대 문민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 지역구(충남 논산시, 계룡시, 금산군)에 대해서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 나는 지역구가 '논산, 계룡, 금산'입니다. 논산시장, 계룡시장, 금산군수 이런 분들이 지방의 특성을 잘 살려서 지역의 발전을 위한 비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에 맞춰서 나는 중앙에서 열심히 뒷받침을 해야죠. 논산, 금산은 주로 농업이 제일 앞서있어요. 금산은 인삼이라고 하는 특수한 작물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래서 그런 농업 분야가 선진 농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할 것입니다. 또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대전시에서 대덕 벨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거든요. 그곳이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연구 중심 단지입니다. 바로 논산, 계룡, 금산은 그 배후지역이기 때문에 앞으로 IT, BT를 비롯한 첨단 산업들의 입지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지역구가 첨단 산업의 입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 지역을 위한 핵심공약이 있으신지요.

: 4년 동안 앞서 말씀드린 첨단산업 등 여러 산업들을 유치해서 만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나의 핵심공약입니다.

: 막연한 질문이기는 하나 학생들에게 이인제의원이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 내가 나를 이야기 해보라고? (하하하) 나는 해방이후 세대이고, 농업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한 시대상황에서 젊은 날을 보낸 산업사회 세대이고, 농업사회 이후 세대이고, 6.25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후세대입니다. 요즘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예전에는 해방이전, 농업사회, 전전세대들이 한국사회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97년에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대통령 선거에 나왔던 사람이고, 그러면서 나는 2개의 국가 비전을 추구해온 사람입니다. 하나는 ‘통일한국‘이고, 또 하나는 ‘지식강국‘입니다. 통일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통일은 반드시 성취해야 되고, 성취할 수 있고,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민족이나 우리 이웃나라, 세계에 유익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또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는 아주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가 산업 사회에서 비약적인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는데, 그러나 진정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촉발된 지식경제, 지식사회 이것을 빨리 우리가 개척을 해서 지식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식경제, 지식사회에서는 가장 최고의 생산요소가 두뇌이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우리가 우위에 있고, 그 사회를 주도하는 정신은 창조정신, 개척정신인데 창조성, 개척정신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보다 더 우월한 민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입니다.

: 17대 국회에서 지역구 말고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하실지 말씀해주세요.

: 지역이 국가고, 국가가 지역인데...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는 ‘통일한국’, ‘지식강국’이라는 국가 비전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함께 우리국가가 진정 지향해야 될 미래는 ‘통일한국’이요, ‘지식강국’이라고 하는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해 나가려고 하고, 그러한 비전과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정치세력의 결집을 위해서 노력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학생들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새로 생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을 빼고는 다른 정당들은 다 다녀봤어요. 그 정당들은 다 낡고 또 그 지도이념이나 국가 비전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21세기에 정말로 ‘통일 한국’과 ‘지식강국’이라는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성취해 낼 수 있는 그런 이념으로 뭉치고 결속된 정치세력의 형성이 긴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 그러면 그 의미가 신당인지요.

: 아마, 기존 정당들도 이합집산을 하던지 새로운 세력들도 참여를 하면서 되어야 하죠.

: 앞으로 어떻게 의정활동을 할 것인지요.

: 의정활동은 내 상임위에서 열심히 하고, 본회의에서는 5분 발언도 있고, 대정부 질문도 있는데, 그때마다 현 정부의 잘못된 노선과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투쟁을 계속 해 나아 갈 것입니다.

: 여기까지가 교수님께서 하라고 했던 질문이었구요.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뭐든 다 말하세요. 이렇게 만났으니까요. 대학교 3학년이면 신문에 나오더라고 post386이라고... (하하하) 시대가 자꾸 바뀌면 세대마다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달라지죠. 그리고 달라져야 되죠. 시대가 흐르는데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똑같을 수는 없죠.

: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인 이인제의원님의 지지자이셔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있게 봤습니다. 경선 탈락하실 때 그 원인을 김영삼대통령이 안밀어줘서 그런 것인지, 김영삼대통령이 이회창을 밀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당내 중진들이 이인제의원이 후보가 되면 자신들이 개혁의 대상이 될까봐 안밀어준 것인지.. 이런 여러 원인, 추측들 중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대체로 후자로 보면 맞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은 그때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있었고, 아들이 구속돼 있어서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고, 그 당시 신한국당(여당)에는 영남 패권을 추구하는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아까 내가 말한 전전세대, 해방전세대, 농업사회세대 등 구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영남패권 세력과 구세대가 이회창씨를 밀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래서 내가 그때 국민들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당내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죠.

: 그때도 여론조사가 1위였고, 민주당 경선때도 여론조사가 1위셨는데, 그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안밀어 주셨잖아요.

: 안밀어 준게 아니라 저쪽을 밀었죠.

: 네 노무현을 밀었잖아요. 그 이인제후보가 후보로 나감으로 인해서(97년 대선 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잖아요. 표가 분산되서..

: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지.

: 그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은인이신데 이후에 그런 결과가 나와서 그때 신한국당 탈당하고 민주당에 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셨어요.

: 나는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는 아주 오래 고뇌하고 나의 신념에 맡게 결정을 하기 때문에 그 후에 안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을 후회하는 일이 없습니다. 결과를 놓고 많이 교훈을 얻고 반성을 하지 후회는 안하려고 합니다.

: 의원님 사모님이 힐러리같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의원님이 보시기에 사모님이 정치를 해도 될 정도의 실력이 되시는 것 같은지요.

: 우리 집사람은 아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힐러리도 클린턴 처음 임기 때에는 악평을 많이 들었죠. 그러나 두 번째 임기 때는 힐러리가 평판이 좋아지고, 지금은 정치인으로 등장해서 상당히 촉망 받는 상원의원이잖아요. 힐러리가 악평 들을 때는 우리 집사람보고 힐러리 같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후에 평이 좋아지니까 힐러리 같다는 말을 안하더라구요. 우리 집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그리고 자기가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판단해서 행동하는 사람이지 그렇게 판단력이 흐린 사람이 아닙니다. 97년도 대선 때에도 양쪽진영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치탄압을 받았고 그 후에도 양대 세력에 의해서 늘 공격을 받다 보니깐, 특히 우리 집사람을 공격을 많이 했어요. 나 자신을 공격하기 보다는... 그래서 일방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잘못된 선입견이 많습니다. 우리 집사람을 한 번 만나본 사람들은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다 좋아합니다.    

: 이번에 북한 인권법이 통과됐는데, 찬성하시는지 반대하시는지요.

: 찬성하고 반대할 것이 없습니다. 북한 인권문제에 미국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반대할 성질이 아닙니다. 인권이라는 가치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북한 정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인류사회에 보편적인 가치로서 그것을 침해할 때에는 인류사회가 어떤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유신시절 인권문제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국제사회에 나가서 얼마나 호소를 했습니까.

: 지금 막 좌파나 열린우리당도 반대를 표명한거 같더라구요.

: 그분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분들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더 원칙을 가지고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남북대화라든지 남북협력에 있어서 그것을 이슈로 또 의제로 삼아야 하는데 자꾸 그것을 숨기고 뒤로 미루고 그러는 것입니다.

: 지금 저희 연대가 고교등급제를 한다고 문제를 갖고 있는데 사립학교의 학생 선발권이 교육부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님 자율권을 줘야한다고 보십니까?

: 나는 대학에 거의 제한 없는 자율을 줘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옛날부터 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학생의 선발, 교육, 또 교육방법이라든지 내용 이런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정부는 지원만 해주면 됩니다. 지금 연세대학교에서 고교등급제를 했네, 안했네 논쟁이 있던데, 그것이 어떤 고등학교를, 말하자면 합리적인 이유없이 차별하려고 한다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떤 객관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선발하는데 참고가 되었다면, 그것은 대학의 양심과 자율에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학생 하나하나를 다 자기들의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선발하잖아요.

: 그러면 아직도 대권에 대한 마음이 있으십니까.

: 정치를 하는 이상은 나의 정치적인 꿈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겠지요. 또 그것이 나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지금 딱히 대통령감이 없는 것 같은데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박근혜씨, 열린우리당은 정동영씨 이정도 되는데 자민련에서 또 나오시면 조금 힘들것 같은데, 이합집산이 안되면 자민련 타이틀로는 워낙 당이 작으니까 아무리 의원님이 그렇다고 하신다고해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 그것은 대통령선거는 지금 하는 것이 아니고 3년후에 하는 것이니까요. 3년후까지 나는 ‘한국사회가 격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국가를 이끄는 리더십의 본질이 국가를 정상적으로 잘 경영해서 그 성과를 가지고 국민들로부터 다시 심판을 받겠다, 이런 것이 아니고 사회 변혁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학생들은, 지금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국가를 정상적으로 경영해 보겠다는 것보다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겠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든지, 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대한민국 건국은 누가했느냐? 또 산업화를 누가했느냐? 그럼 그때그때의 사람이 뭐하는 사람들이냐?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은... 그러나 대한민국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 두개의 가치와 제도, 이것을 바탕으로해서 만들어진 나라잖아요. 과거에는 독재도 많았고 또 관치경제도 있었고 그렇지만은 그것은 우리나라가 다 자유민주주의를 향해서, 시장경제를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지,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정권은 없었잖아요. 다 그리 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선 어떻게 하느냐? 우선 경제 개발, 건설 먼저 해야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잠시 자유를 유보해야겠다, 이런 것이었지, 그런 것과 전혀 모순되는 다른 가치와 이념을 지향했던 나라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됐어요? 민주주의의 지평이 열렸고 그 다음에 시장경제궤도에 진입을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요. 세계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국가관, 역사관도 다릅니다. 그래서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고요. 그래서 아까 내가 이야기했듯이 ‘통일한국’, ‘지식강국’ 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나라가 통일이 안되고서는 떳떳하고 당당하고 위대한 나라가 될 수가 없잖아요. 우리끼리 나뉘어서 서로 싸우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리고 또 이런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는 통일이 되면 예상했던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 없어요. 다 더 좋아집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 되어야 하는데,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을 해가지고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식경제가 경제의 주류로 등장하고, 거기서는 그야말로 인간의 두뇌가 최고의 생산요소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식강국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통일과 지식강국이고 하는 이 국가목표를 향해서 우리 국민들이 마음을 합쳐가지고 나아가야 한단 말이예요. 그런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치세력을 이루어가지고 이 나라를 그런 국가목표를 향해서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가 등장해야 합니다. 거기에 나는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 예전에 의원님이 토론을 잘 하셔가지고 인기가 좋으셨는데 요즘에는 미디어, 그러니까 TV쪽에 토론이나 이런데는 잘 안나가시는 것 같던데?

: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죠. 지금은 새로 들어오신 분들이 다 나가고 싶어하니까, 그분들이 하셔야죠.(하하하) 나는 이제 앞으로, 안 좋은 일도 있고 그랬었는데 내가 10월21일날 재판 판결이 선고되니까 나의 결백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우선 국민들 한가운데로 나가서, 전국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과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리고 이제, 우리 국민들이 정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속에서 정말로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지고... 그다음에 이제 미디어에 등장하는 날이 오겠죠.

: 두 당에서요 당내조직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딸렸는지 아니면 윗세대분들에게 아부를 좀 안하셔서 그런 것인지 둘 중에서 어떠신거 같으세요? 아무래도 젊으시고 그러니까 당에 있었던 기간이 다른 후보보다는 짧아서 그런 것인지...

: 아.. 경선에 실패한 것이?

: 예.

: 아, (하하하)그래요. 우리나라 정치는 지금까지는 주로 지역 패권구도로 움직였어요. 정당 자체도 그랬고 또 실제 정당내부의 역학관계도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제일 큰 패권세력이 영남이고, 그 다음이 호남이고, 충청은 JP중심으로 자민련이 조금 있었으나 아주 급속도로로 약화되어 있었어요. 나는 영남패권세력이 주도하는 과거의 신한국당이나, 또 호남패권세력이 주도하는 새천년 민주당에 있었을 때, 역시 그 주류에 편입되기 보다는 나는 뭐, 충청이고 또 경기도에서 도지사를 하고 했기 때문에 결국 주류세력들과 일체감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은 그런 가운데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그런 구태의연한 정치를 표방했다면 일찌감치 충청도가 있는 당에 와가지고 충청지역패권을 거머쥐고 그런 일을 했겠지요, 그러나 한국정치가 지역패권,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정당들에 속해있었고 결국은 그런 지역패권중심으로 움직이는 당내 역학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당을 새로 만들고 이념중심으로 정치를 하면서 사회변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반동으로 야당쪽도 지역패권은 약해지고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그런 이념이나, 노선이나 정책이나 이런 것들 중심으로 재편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 지역보다는 아무래도 이념으로....

: 그렇습니다.

: 그런데 의원님은 우파이시잖아요.

: 난 중도우파쯤에 해당하지요. 우냐 좌냐 이제는 여러 가지 스팩트럼으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과거의 스팩트럼은 효용이 떨어졌어요. 잘 맞지를 않습니다.

: 사람마다 워낙 다르니까요.

: 아니, 사회 ․ 경제적인 판이 달라져가지고요...

: 그때 FTA, 한.칠레 자유무역협상 비준동의안에 반대를 하셨는데요.

: 나는 본질적으로는 찬성인데, 다만 그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FTA를 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농민들이 있잖아요. 과수농가라든지.. 이런 분들에 대한 지원하는 법률안이 상정되어 있었어요. 그것과 같이 해야지.. 그런데 그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회의도 못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거기서(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를 안하는데 왜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비준동의안을 먼저 처리를 하느냐? 난 찬성이지만. 같이해야지... 그런 차원에서 반대를 했던 것이지 FTA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 마지막으로요, 저희가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입니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조언을 해주시면요.

: 난,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학 책은 조금 읽어봤지만요... 정치학도 주로 서양에서 발달한 학문을 가지고 공부하겠는데, 물론 기초원리라든지 분석의 도구라든지 이런 것들은 잘 연마를 해야 되겠죠. 그러나 결국은 한국사회의 정치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되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현실, 현실속에는 과거도 들어있고, 미래도 들어있는 것이니까, 그 부분에 관해서 실증적인 관심을 많이 가지고 연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자료들, 통계를 가지고 토론도 하고... 그래서 명분이라든지 추상적인 이론에만 의존하면 결론이 이상하게 나올 수 있으니까, 명분과 추상적인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체, 실존에 관한 인식을 항상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모든게 다 흐름이니까요. 추세니까요. 현재 ‘정치적인 의식이 이렇다’ 그렇다고해서 그것만 가지고 분석을 할 수 없어요. 과거에 어떤 변화의 추세를 보여왔는가. 변화의 원인에는 사회, 경제적인 어떤 충격이 있었는가. 이런 것에 관해서 아주 입체적인 이런 접근태도를 늘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학문이 책속에 아카데믹하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현실과 만났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정치 분야에 필요한 자료나 통계를 늘 확보해가지고 서로 나누어보고 그리고 그 흐름으로써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이런 능력을 갖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 바쁘신데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오랜만에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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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7)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생각의 힘은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로부터 나온다. 또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것처럼 ‘사회적 동물’이다. 결국 사람들은 사회적 공동체로서 국가를 이루며, 자기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부단히 사고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이념과 체제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것이 한 나라의 역사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념논쟁이 한창이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지겨워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제 와서 이 논쟁을 피할 수도 없다. 아니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치열하고 빠르게 이 논쟁을 종결시켜 나라의 이념과 사회의 가치를 한 차원 높이 고양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 안보의 불안, 경제의 침체, 사회의 무질서 등 온갖 병폐가 따지고 보면 바로 이 이념과 가치의 문제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보자! 지금 정권을 잡은 세력과 그들의 전위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념적 정체를 ‘진보’라고 자처한다. 과연 진보인가. 그렇지 못한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보자! 지금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야말로 ‘보수’라고 자부한다. 과연 보수인가. 그렇다면 왜 저들이 이들을 가리켜 ‘냉전 수구 꼴통’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는데도 이 말이 대중들에게 먹혀드는 것인가. 우리는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사람의 가치지향을 규정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근대사회가 성립되면서 등장한다. 특히 근대사회의 경제체제인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냉전이 격화되면서, 진보와 보수는 사회발전을 이끄는 양대 축(軸)의 개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봉건사회로부터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 시민사회를 이끌어낸 유럽 사회에서 무리 없이 통용될 수 있는 설명이다.

   이민 개척자들이 자유의 정신으로 나라를 세운 미국 사회에서는 아예 사회주의 자체가 힘을 얻지 못하여 유럽과 같은 진보의 개념도 사회 발전의 축을 이루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progressive가 아닌 liberal이 보수(conservative)에 대칭을 이루고 있다. 미국 사회의 liberal이 유럽 사회의 progressive와 다른 개념임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은 어떠한가. 한반도를 놓고 보면 치열한 냉전구도가 아직도 해체되지 못하고 있다. 남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냉전체제하에서 이를 부정하는 반체제세력은 지하에 숨어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북과 연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세력들은 그동안 여와 야로 나뉘어 투쟁해 왔다. 한편은 상대를 독재로 몰아 세웠고, 다른 한 편은 경제 건설이 우선이라며 자유의 유보를 합리화 시켰다. 이렇게 그동안 제도권 안의 정치세력은 크게 보면 그 가치 지향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편은 권위주의적이었고, 다른 한편은 이를 해체하고자 투쟁하였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산업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우리 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다원화되어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의 전통적인 좌파정당과 같은 정당이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게 되었다. 또 과거 반체제 운동에 젊음을 바쳤던 세력의 일부가 정권의 핵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제도상으로는 완성되었는지 모르나, 권력의 문화나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는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된다. 시장경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도 개발경제시대로부터 힘겹게 시장경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구체적 모순들은 저 유럽의 자유로운 시장으로부터 생겨난 모순과는 판이하다. 오히려 국가권력의 개입과 간섭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유럽에서의 진보란 시장을 지배하는 자유의 과잉으로부터 생겨난 모순, 이를테면 빈부의 격차, 사회적 불평등 같은 잘못을 사회주의적 원리를 제한적으로 적용하여 시정함으로써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념적 지향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모순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럽 사회의 모순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원리를 들고 나온다면, 우리가 그러한 주장에 진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한 태도는 그저 사회주의적이거나 반체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궁극적인 가치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국가권력이 넘치는 시장과 독재가 판을 치는 사회를 통해 기득권을 키워온 사람들이 마치 보수의 상징인 것처럼 행세한다면 이 또한 중대한 착각이다. 보수란 가능한 한 시장과 사회에 자유가 넘치도록 하려는 가치지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그들이 보수를 외쳐도 힘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인류문명도 마찬가지이다. 변화의 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계화와 지식화이다. 국민국가시대가 해체되고 지구촌시대가 다가온다. 산업문명으로부터 지식문명이 밝아온다. 이제 모든 국가, 기업, 국민들이 이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말하자면 판(板)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앞서가는 나라들에서는 과거 이념의 스펙트럼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이 내세우는 ‘제3의 길’, 독일 사민당이 표방하는 ‘새로운 중도’는 이 이념적 과도기에서 겪는 혼란과 고민을 상징하는 개념들이다. 당연히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서 사회주의 본영(本營)은 와해되었다. 중국은 점진적으로 현대화 개혁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므로 사회주의 골격이 유지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경제는 물론 정치도 종국적으로는 다원주의로 나갈 것으로 믿는다. 쿠바와 북한만이 변화의 물결을 거부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사회에 더 이상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이나 열정은 살아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피폐한 인민의 삶과 앙상한 권력의 독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좋든 싫든 그것은 객관적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나 사회주의적 원리를 내세우며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관하여 무지하며, 세계 변화에 둔감한지를 자각해야 한다. 그들의 태도는 과학적으로 분석할 때 진보(progressive)가 아니라 퇴보(regressive) 또는 퇴영(retrogressive)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와 체제를 따른다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21세기 지식강국으로 가겠는가, 낙후된 과거로 가겠는가. 미래가 없는 허구의 이념에 더 이상 우리 사회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체제의 실체를 내세워야 한다. 특히 과거 독재와 관치경제의 특혜를 누렸던 사람들은 통절한 자기성찰 위에서 자기가  헌신할 비전과 가치를 명백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저 기득권에 집착해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거나 맹목적 반대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의 실체를 포장하는데 적절치 못하다. 참다운 진보도, 진정한 보수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 한 가운데 있을 뿐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여러 모순들을 해결하며 부단히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치와 체제야 말로 참다운 진보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성공한 역사로 평가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 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면, 그러한 신념은 진정한 보수이자 동시에 진보를 의미한다. 우리의 미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세계화와 지식화에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는 현재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 역사를 전진시키려는 세력과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세력이 충돌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참으로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다. 오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냉혹한 세계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유럽 사회에서, 그것도 지난 시대에나 통용되던 진보라는 빛바랜 깃발을 가지고는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후퇴시켜 우리 모두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우리 젊은이들이 이 진보라는 허구의 울타리에 더 이상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참다운 역사의 진보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허구의 진보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뭉쳐 싸울 줄 안다. 또 교묘한 위장과 기만에 능하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숨기고 끊임없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한 발짝씩 목표에 접근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각심을 높여 그들과 싸워야 한다. 그들의 정체를 여지없이 폭로하며 무엇이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길인지를 국민들께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이 싸움의 승패가 21세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기회의 평등, 시장경제, 자주적인 세계화, 지식강국 그리고 이러한 가치 중심의 통일국가 건설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러한 가치를 위해 우리 모두는 단결하여 싸워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 길이다.

2004.  9.  21

이   인   제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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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개혁을 말한다.
-- 퇴보주의와의 전쟁(1)--


한국 정치의 최대 유행어는 “개혁”이다. 어느 시대이든 개혁이 운위되지 않은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 말이 홍수를 이룬 시대가 있었을까.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권의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변화와 개혁”이었다. 나는 그 정권의 초대 노동부 장관으로서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곧 이어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로서 지방경영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데 헌신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8년 국가부도의 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권에게도 임기 내내 개혁은 숙명적인 과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3년 출범한 이 정권에서 부르짖는 개혁의 구호 속에서는 과거 정권 시절의 그 것 속에 담겨있던 최소한의 진실성, 절박성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남발하여 혼란스럽게 느껴지고, 너무 시끄러워 오히려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개혁(reform)은 혁명(revolution)과 다르다.

낡은 집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자. 낡은 부분을 고쳐 모두 다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을 때, 그 구성원들의 동의와 참여 속에 집을 고친다면, 우리는 이것을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우월한 힘을 갖고 있는 세력이 자기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살면서 언제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 힘없는 사람들을 억누르며 집의 수리를 거부할 때, 억눌린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억누르는 자들을 타도하고 집을 허물어 새로운 집을 짓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개혁에는 설득해야 할 반대자는 있어도 타도해야 할 적은 없다. 이에 반하여 혁명에는 타도해야 할 적이 있다.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한다.

지금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누구를 설득할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누군가를 적대시하고, 적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한다. 통합을 외치면서 분열을 조장한다. 말은 개혁인데, 행동은 혁명을 닮았다. 자기들 내부에서조차 1966년 폭발한 중국 문화혁명의 선봉인 홍위병의 행동과 같다고 공공연히 비판하는 소리가 들린다.

혁명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도 좋다. 그러나 혁명을 위하여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과 열정 그리고 헌신이 뒤따라야 한다. 그들의 어디에서 이런 미덕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들의 외침은 메아리 없는 공허함으로 시대의 절망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혁명은 구호와 적대감만으로도 불이 붙을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은 비전, 목표, 청사진, 설계와 전략이 준비되지 않으면 구성원들의 동의와 참여를 끌어낼 방도가 없다.
다시 말하면, 혁명은 감성이요, 개혁은 과학이다. 그런데 그들의 몸짓에서 감성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그들의 행동에서 과학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입에서 진지한 고뇌 끝에 나오는 비전과 전략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모두 다 혼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개혁은 특정 세력, 특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우리 시대의 성공적인 개혁은 보수적인 세력에 의해 추진되었다. 영국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 몰락하는 영국을 다시 살려 놓았고, 미국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산업공동화로 치닫던 경제를 다시 회생시킨 사실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문화혁명의 극좌파를 몰아내고 중국의 현대화를 이끈 실용주의자 등소평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확고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개혁을 자기들의 전유물로 치부하고 자기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개혁의 적으로 공격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이보다 더 어리석고 가소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개혁이든 혁명이든 결국은 더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개혁과 혁명 모두 내재적으로 진보(progress)를 함축하는 개념인 것이다. 사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할지 모른다. 과연 그러한가. 나의 대답은 정반대이다. 그들이 타고 있는 궤도는 불행이도 퇴보(regress)이거나 퇴행(retrogress)의 궤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conservation)라는 말처럼 인기 없는 말도 드물다. 앞으로 그 원인을 분석하여 이 컬럼에 써 나갈 생각이다.          
     
사실 보수나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고르바쵸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칠 때 소비에트 사회주의체제를 옹호하는자들은 보수이고, 자본주의와 다원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은 진보였다. 반대로 자유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빈부격차를 시정하기 위하여 사회주의원리 일부를 원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진보이고, 이를 반대하면 보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 구분이 통용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세계화와 지식화의 거대한 물결이 과거의 패러다임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시대와 문명을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 어디를 보아도 미래를 향한 창조와 개척의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다 소멸되었거나 그냥 두어도 자연히 소멸할 과거의 모순을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 치환해 놓고 누군가를 적으로 몰며 소란을 피운다. 이것이 퇴보이고 퇴행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건강한 사람도 때로는 악몽에 시달릴 수 있다.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악몽의 그림자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한 나라, 한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진정한 적은 퇴보주의이다. 시대의 대전환을 외면하고 퇴보와 퇴행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워 그 악몽을 털고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퇴보주의의 악몽을 벗어났을 때 우리 모두는 위대한 미래의 창조를 향해 건강하고 생산적인 경쟁과 협력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2003. 6. 3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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