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바다와 싸우다(9)

- 젊은 학생과의 대화 -

이인제의원은 2004년 10월 7일, 오랜만에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젊은 대학생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정치학 수업의 일환으로 이인제 의원을 만난 노아성군과 조성철군은 장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대화록을 정리하여 이 곳에 싣는다.

-IJ월드-


이인제의원 (이하 ‘이’로 표기) :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좋군요. 뭐든지 궁금한 점은 다 물어보고 대화하도록 하지요. 발표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정치인을 많이 만나고 있겠네요?

학생(이하 ‘학’으로 표기) : 네

: 나를 만나는 것은 본인들이 선택한 것인가요, 아니면 교수님이 지정해준 것인가요?

: 학생들 자유로 선택해서 정치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원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 아... 무엇이든지 물어봐요.

: 유권자의 민원이나 여론을 어떻게 접수하고 파악하시는지요.

: 당에 많은 조직이 있습니다. 읍․면별로 협의회장이 있고, 당에는 간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로부터 지역구의 민원이 접수되면 시간을 정해서 그 민원인과 만납니다. 그래서 해결방안을 찾죠. 지구당을 법적으로는 없앴지만 당조직은 살아있으니까 그 조직으로부터 민원을 접수받기도 하고, 지금은 전화나 팩스, 이메일 등 통신이 많이 발달했으니까 그 통신수단을 이용해서 받기도 합니다.

: 당론과 개인의사가 다른 경우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서 소속의원들이 충분히 토론을 하고 그때 자기의 의견을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당론을 정할 경우에는 다수의 의견 중심으로 당론이 정해지기 때문에 소수의견을 가진 의원들은 갈등을 겪게 되죠. 당론은 권고적인 경우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꼭 관철시켜야겠다는 경우, 이렇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권고적일 경우에는 자기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 표결에 참여하면 되고, 확고한 당론일 경우에는 본인이 결심을 해야 되겠죠. 당론과 마찰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생각대로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죠. 그러한 경우에는 당과 갈등을 겪게 되겠지요. 당의 경우에는 징계를 한다던지... 자기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현재 국가의 가장 큰 현안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외교나 안보, 국제 등 여러 문제가 있는데요.

: 제일 큰 현안은 경제입니다. 경제! 우리 경제가 아주 후퇴하고 있으니까 경제를 어떻게 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죠. 예전에는 분배모순이나 불평등이라는 말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제 그런 주장을 하던 사람들도 요즘에는 경제 성장의 원천이 고갈되고 성장 동력이 결핍이 됐다는 것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경제 성장의 원천을 넓히고 경제 성장 동력을 새롭게 충전하느냐‘ 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안보에 있어서 한․미 동맹 약화라든지 북한 핵개발을 비롯한 한반도 정세 불안정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그 자체로도 큰 문제이지만 이것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경제문제라고 봅니다.

: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상임위에서 어떤 활동을 하실 계획이신지요.

: 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 있습니다. 노동, 환경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환경은 그 자체가 생명이고, 삶의 질이고, 경제 문제이기 때문에 환경 행정이 쉬지 않고 발전해야 됩니다. 또 노동은 경제 발전에 맞추어서 빠른 속도로 노동시장이 변화하고 있잖아요. 산업사회일 때는 단순하고 획일적인 노동 그리고 집단적인 노사관계 이런 것들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지식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시장은 개인의 특성, 자질이나 능력이나 이런 것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게 되고, 집단적인 노사 관계 보다는 개별적인 노사관계가 더 중시되고, 그런 그 경제 발전 단계에 맞는 노동시장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분야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노동행정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그것에 맞춰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 지금 맡고 계신 환경노동위원회가 전공 영역에 맞는지요.

: 노동은 장관도 했었기 때문에 내 전문영역이고, 환경은 이번에 처음 하지만 평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기도지사 할 때 3가지를 내세웠는데 경제, 문화, 다른 하나가 환경이었습니다. 경기도지사 할 때 3대 가치 중 하나로 내세웠기 때문에 전문성이 있다고 봅니다. 내가 또 얼마 전에 ‘회의적환경주의자‘라는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 노동문제와 어떻게 인연을 맺으셔서 장관을 하시게 되셨는지요.

: 노동위원회에 4년 있었습니다. 13대 초선 때, 그래서 14대 문민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 지역구(충남 논산시, 계룡시, 금산군)에 대해서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 나는 지역구가 '논산, 계룡, 금산'입니다. 논산시장, 계룡시장, 금산군수 이런 분들이 지방의 특성을 잘 살려서 지역의 발전을 위한 비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에 맞춰서 나는 중앙에서 열심히 뒷받침을 해야죠. 논산, 금산은 주로 농업이 제일 앞서있어요. 금산은 인삼이라고 하는 특수한 작물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래서 그런 농업 분야가 선진 농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할 것입니다. 또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대전시에서 대덕 벨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거든요. 그곳이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연구 중심 단지입니다. 바로 논산, 계룡, 금산은 그 배후지역이기 때문에 앞으로 IT, BT를 비롯한 첨단 산업들의 입지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지역구가 첨단 산업의 입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 지역을 위한 핵심공약이 있으신지요.

: 4년 동안 앞서 말씀드린 첨단산업 등 여러 산업들을 유치해서 만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나의 핵심공약입니다.

: 막연한 질문이기는 하나 학생들에게 이인제의원이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 내가 나를 이야기 해보라고? (하하하) 나는 해방이후 세대이고, 농업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한 시대상황에서 젊은 날을 보낸 산업사회 세대이고, 농업사회 이후 세대이고, 6.25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후세대입니다. 요즘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예전에는 해방이전, 농업사회, 전전세대들이 한국사회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97년에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대통령 선거에 나왔던 사람이고, 그러면서 나는 2개의 국가 비전을 추구해온 사람입니다. 하나는 ‘통일한국‘이고, 또 하나는 ‘지식강국‘입니다. 통일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통일은 반드시 성취해야 되고, 성취할 수 있고,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민족이나 우리 이웃나라, 세계에 유익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또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는 아주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가 산업 사회에서 비약적인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는데, 그러나 진정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촉발된 지식경제, 지식사회 이것을 빨리 우리가 개척을 해서 지식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식경제, 지식사회에서는 가장 최고의 생산요소가 두뇌이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우리가 우위에 있고, 그 사회를 주도하는 정신은 창조정신, 개척정신인데 창조성, 개척정신에 있어서는 한국민족보다 더 우월한 민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입니다.

: 17대 국회에서 지역구 말고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하실지 말씀해주세요.

: 지역이 국가고, 국가가 지역인데...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는 ‘통일한국’, ‘지식강국’이라는 국가 비전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함께 우리국가가 진정 지향해야 될 미래는 ‘통일한국’이요, ‘지식강국’이라고 하는 것을 위해서 노력을 해 나가려고 하고, 그러한 비전과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정치세력의 결집을 위해서 노력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학생들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새로 생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을 빼고는 다른 정당들은 다 다녀봤어요. 그 정당들은 다 낡고 또 그 지도이념이나 국가 비전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21세기에 정말로 ‘통일 한국’과 ‘지식강국’이라는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성취해 낼 수 있는 그런 이념으로 뭉치고 결속된 정치세력의 형성이 긴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 그러면 그 의미가 신당인지요.

: 아마, 기존 정당들도 이합집산을 하던지 새로운 세력들도 참여를 하면서 되어야 하죠.

: 앞으로 어떻게 의정활동을 할 것인지요.

: 의정활동은 내 상임위에서 열심히 하고, 본회의에서는 5분 발언도 있고, 대정부 질문도 있는데, 그때마다 현 정부의 잘못된 노선과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투쟁을 계속 해 나아 갈 것입니다.

: 여기까지가 교수님께서 하라고 했던 질문이었구요.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뭐든 다 말하세요. 이렇게 만났으니까요. 대학교 3학년이면 신문에 나오더라고 post386이라고... (하하하) 시대가 자꾸 바뀌면 세대마다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달라지죠. 그리고 달라져야 되죠. 시대가 흐르는데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똑같을 수는 없죠.

: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인 이인제의원님의 지지자이셔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있게 봤습니다. 경선 탈락하실 때 그 원인을 김영삼대통령이 안밀어줘서 그런 것인지, 김영삼대통령이 이회창을 밀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당내 중진들이 이인제의원이 후보가 되면 자신들이 개혁의 대상이 될까봐 안밀어준 것인지.. 이런 여러 원인, 추측들 중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대체로 후자로 보면 맞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은 그때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있었고, 아들이 구속돼 있어서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고, 그 당시 신한국당(여당)에는 영남 패권을 추구하는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아까 내가 말한 전전세대, 해방전세대, 농업사회세대 등 구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영남패권 세력과 구세대가 이회창씨를 밀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래서 내가 그때 국민들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당내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죠.

: 그때도 여론조사가 1위였고, 민주당 경선때도 여론조사가 1위셨는데, 그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안밀어 주셨잖아요.

: 안밀어 준게 아니라 저쪽을 밀었죠.

: 네 노무현을 밀었잖아요. 그 이인제후보가 후보로 나감으로 인해서(97년 대선 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잖아요. 표가 분산되서..

: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지.

: 그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은인이신데 이후에 그런 결과가 나와서 그때 신한국당 탈당하고 민주당에 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셨어요.

: 나는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는 아주 오래 고뇌하고 나의 신념에 맡게 결정을 하기 때문에 그 후에 안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을 후회하는 일이 없습니다. 결과를 놓고 많이 교훈을 얻고 반성을 하지 후회는 안하려고 합니다.

: 의원님 사모님이 힐러리같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의원님이 보시기에 사모님이 정치를 해도 될 정도의 실력이 되시는 것 같은지요.

: 우리 집사람은 아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힐러리도 클린턴 처음 임기 때에는 악평을 많이 들었죠. 그러나 두 번째 임기 때는 힐러리가 평판이 좋아지고, 지금은 정치인으로 등장해서 상당히 촉망 받는 상원의원이잖아요. 힐러리가 악평 들을 때는 우리 집사람보고 힐러리 같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후에 평이 좋아지니까 힐러리 같다는 말을 안하더라구요. 우리 집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그리고 자기가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판단해서 행동하는 사람이지 그렇게 판단력이 흐린 사람이 아닙니다. 97년도 대선 때에도 양쪽진영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치탄압을 받았고 그 후에도 양대 세력에 의해서 늘 공격을 받다 보니깐, 특히 우리 집사람을 공격을 많이 했어요. 나 자신을 공격하기 보다는... 그래서 일방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잘못된 선입견이 많습니다. 우리 집사람을 한 번 만나본 사람들은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다 좋아합니다.    

: 이번에 북한 인권법이 통과됐는데, 찬성하시는지 반대하시는지요.

: 찬성하고 반대할 것이 없습니다. 북한 인권문제에 미국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반대할 성질이 아닙니다. 인권이라는 가치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북한 정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인류사회에 보편적인 가치로서 그것을 침해할 때에는 인류사회가 어떤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유신시절 인권문제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국제사회에 나가서 얼마나 호소를 했습니까.

: 지금 막 좌파나 열린우리당도 반대를 표명한거 같더라구요.

: 그분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분들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더 원칙을 가지고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남북대화라든지 남북협력에 있어서 그것을 이슈로 또 의제로 삼아야 하는데 자꾸 그것을 숨기고 뒤로 미루고 그러는 것입니다.

: 지금 저희 연대가 고교등급제를 한다고 문제를 갖고 있는데 사립학교의 학생 선발권이 교육부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님 자율권을 줘야한다고 보십니까?

: 나는 대학에 거의 제한 없는 자율을 줘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옛날부터 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학생의 선발, 교육, 또 교육방법이라든지 내용 이런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정부는 지원만 해주면 됩니다. 지금 연세대학교에서 고교등급제를 했네, 안했네 논쟁이 있던데, 그것이 어떤 고등학교를, 말하자면 합리적인 이유없이 차별하려고 한다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어떤 객관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선발하는데 참고가 되었다면, 그것은 대학의 양심과 자율에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학생 하나하나를 다 자기들의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선발하잖아요.

: 그러면 아직도 대권에 대한 마음이 있으십니까.

: 정치를 하는 이상은 나의 정치적인 꿈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겠지요. 또 그것이 나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지금 딱히 대통령감이 없는 것 같은데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박근혜씨, 열린우리당은 정동영씨 이정도 되는데 자민련에서 또 나오시면 조금 힘들것 같은데, 이합집산이 안되면 자민련 타이틀로는 워낙 당이 작으니까 아무리 의원님이 그렇다고 하신다고해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 그것은 대통령선거는 지금 하는 것이 아니고 3년후에 하는 것이니까요. 3년후까지 나는 ‘한국사회가 격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국가를 이끄는 리더십의 본질이 국가를 정상적으로 잘 경영해서 그 성과를 가지고 국민들로부터 다시 심판을 받겠다, 이런 것이 아니고 사회 변혁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학생들은, 지금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국가를 정상적으로 경영해 보겠다는 것보다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겠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든지, 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대한민국 건국은 누가했느냐? 또 산업화를 누가했느냐? 그럼 그때그때의 사람이 뭐하는 사람들이냐?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은... 그러나 대한민국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 두개의 가치와 제도, 이것을 바탕으로해서 만들어진 나라잖아요. 과거에는 독재도 많았고 또 관치경제도 있었고 그렇지만은 그것은 우리나라가 다 자유민주주의를 향해서, 시장경제를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지,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정권은 없었잖아요. 다 그리 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선 어떻게 하느냐? 우선 경제 개발, 건설 먼저 해야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잠시 자유를 유보해야겠다, 이런 것이었지, 그런 것과 전혀 모순되는 다른 가치와 이념을 지향했던 나라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됐어요? 민주주의의 지평이 열렸고 그 다음에 시장경제궤도에 진입을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요. 세계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국가관, 역사관도 다릅니다. 그래서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고요. 그래서 아까 내가 이야기했듯이 ‘통일한국’, ‘지식강국’ 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나라가 통일이 안되고서는 떳떳하고 당당하고 위대한 나라가 될 수가 없잖아요. 우리끼리 나뉘어서 서로 싸우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리고 또 이런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는 통일이 되면 예상했던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 없어요. 다 더 좋아집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 되어야 하는데,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을 해가지고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식경제가 경제의 주류로 등장하고, 거기서는 그야말로 인간의 두뇌가 최고의 생산요소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식강국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통일과 지식강국이고 하는 이 국가목표를 향해서 우리 국민들이 마음을 합쳐가지고 나아가야 한단 말이예요. 그런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치세력을 이루어가지고 이 나라를 그런 국가목표를 향해서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가 등장해야 합니다. 거기에 나는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 예전에 의원님이 토론을 잘 하셔가지고 인기가 좋으셨는데 요즘에는 미디어, 그러니까 TV쪽에 토론이나 이런데는 잘 안나가시는 것 같던데?

: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죠. 지금은 새로 들어오신 분들이 다 나가고 싶어하니까, 그분들이 하셔야죠.(하하하) 나는 이제 앞으로, 안 좋은 일도 있고 그랬었는데 내가 10월21일날 재판 판결이 선고되니까 나의 결백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우선 국민들 한가운데로 나가서, 전국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과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리고 이제, 우리 국민들이 정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속에서 정말로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지고... 그다음에 이제 미디어에 등장하는 날이 오겠죠.

: 두 당에서요 당내조직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딸렸는지 아니면 윗세대분들에게 아부를 좀 안하셔서 그런 것인지 둘 중에서 어떠신거 같으세요? 아무래도 젊으시고 그러니까 당에 있었던 기간이 다른 후보보다는 짧아서 그런 것인지...

: 아.. 경선에 실패한 것이?

: 예.

: 아, (하하하)그래요. 우리나라 정치는 지금까지는 주로 지역 패권구도로 움직였어요. 정당 자체도 그랬고 또 실제 정당내부의 역학관계도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제일 큰 패권세력이 영남이고, 그 다음이 호남이고, 충청은 JP중심으로 자민련이 조금 있었으나 아주 급속도로로 약화되어 있었어요. 나는 영남패권세력이 주도하는 과거의 신한국당이나, 또 호남패권세력이 주도하는 새천년 민주당에 있었을 때, 역시 그 주류에 편입되기 보다는 나는 뭐, 충청이고 또 경기도에서 도지사를 하고 했기 때문에 결국 주류세력들과 일체감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은 그런 가운데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그런 구태의연한 정치를 표방했다면 일찌감치 충청도가 있는 당에 와가지고 충청지역패권을 거머쥐고 그런 일을 했겠지요, 그러나 한국정치가 지역패권,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정당들에 속해있었고 결국은 그런 지역패권중심으로 움직이는 당내 역학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당을 새로 만들고 이념중심으로 정치를 하면서 사회변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반동으로 야당쪽도 지역패권은 약해지고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그런 이념이나, 노선이나 정책이나 이런 것들 중심으로 재편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 지역보다는 아무래도 이념으로....

: 그렇습니다.

: 그런데 의원님은 우파이시잖아요.

: 난 중도우파쯤에 해당하지요. 우냐 좌냐 이제는 여러 가지 스팩트럼으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과거의 스팩트럼은 효용이 떨어졌어요. 잘 맞지를 않습니다.

: 사람마다 워낙 다르니까요.

: 아니, 사회 ․ 경제적인 판이 달라져가지고요...

: 그때 FTA, 한.칠레 자유무역협상 비준동의안에 반대를 하셨는데요.

: 나는 본질적으로는 찬성인데, 다만 그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FTA를 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농민들이 있잖아요. 과수농가라든지.. 이런 분들에 대한 지원하는 법률안이 상정되어 있었어요. 그것과 같이 해야지.. 그런데 그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회의도 못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거기서(농림해양수산위원회) 회의를 안하는데 왜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비준동의안을 먼저 처리를 하느냐? 난 찬성이지만. 같이해야지... 그런 차원에서 반대를 했던 것이지 FTA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 마지막으로요, 저희가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입니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조언을 해주시면요.

: 난,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학 책은 조금 읽어봤지만요... 정치학도 주로 서양에서 발달한 학문을 가지고 공부하겠는데, 물론 기초원리라든지 분석의 도구라든지 이런 것들은 잘 연마를 해야 되겠죠. 그러나 결국은 한국사회의 정치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되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현실, 현실속에는 과거도 들어있고, 미래도 들어있는 것이니까, 그 부분에 관해서 실증적인 관심을 많이 가지고 연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자료들, 통계를 가지고 토론도 하고... 그래서 명분이라든지 추상적인 이론에만 의존하면 결론이 이상하게 나올 수 있으니까, 명분과 추상적인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체, 실존에 관한 인식을 항상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모든게 다 흐름이니까요. 추세니까요. 현재 ‘정치적인 의식이 이렇다’ 그렇다고해서 그것만 가지고 분석을 할 수 없어요. 과거에 어떤 변화의 추세를 보여왔는가. 변화의 원인에는 사회, 경제적인 어떤 충격이 있었는가. 이런 것에 관해서 아주 입체적인 이런 접근태도를 늘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학문이 책속에 아카데믹하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현실과 만났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정치 분야에 필요한 자료나 통계를 늘 확보해가지고 서로 나누어보고 그리고 그 흐름으로써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이런 능력을 갖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 바쁘신데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오랜만에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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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8)

오, 우리의 大地!  오, 나의 스승!


   ‘주여, 들판에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귀가 입 안을 맴돈다. 따사로운 햇볕은 신의 은총처럼 쏟아지고, 싱그러운 바람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아! 마지막 결실을 재촉하는 저 들판, 들판!  

   그 풍요로운 대지의 가슴 위를 달려 찾아 가는 곳, 우리의 고향이다. 오늘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날,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께, 그 부모를 낳아준 조상들께, 우리를 키워준 고향의 山河에게, 저 알곡을 영글게 하여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자연에게, 우리의 정신을 살찌워준 스승에게 그리고 우리를 두발로 서 있도록 허락해주고 숨결을 불어 넣어주는 이 풋풋한 대지에게, 가슴을 열고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9. 28 추석 아침 부모님이 땀 흘리며 일하시던 벌판을 바라보며 나는 오랜만에 어머님의 품에 안기는 안온함을 느낀다. 거친 풍파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고향의 품 안에서 나와 같이 넉넉한 마음을 가지리라.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간다. 우리 집 종손인 초등학교 3학년 내준이도 따라 나선다. 나에게 어머님이 그에게는 벌써 증조모이시다. 아, 세대의 흐름이 이토록 빠른 것을! 에이브러햄 링컨이 항상 중얼거렸다는 말이 떠오른다. ‘죽어야 할 숙명의 인간들이 왜 이리도 당당한가!’ 종산 군데군데에 들어서 있는 역대 조상님들의 묘역을 나이 어린 증손자와 함께 돌아보며 삶의 엄숙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짧은 생애의 인간들이 조상과 후대들을 생각하며 더 겸허하게 자연의 섭리를 받들어야 한다는 믿음이 오늘 추석 아침 나만이 갖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대지의 아들들이다. 이 산 저 산을 찾아 성묘하는 사람들을 보라. 흙으로 돌아간 조상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허락된 시간을 살고 나면 어김없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흙으로부터 생명이 주어지고 대지의 기운으로 살아가기에 말이다.

   어릴 때 살던, 지금은 헐려 없어진 옛 집터를 찾는다.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동산에 오른다. 인자한 웃음으로 나를 사랑해주던 어른들이 분주하게 오가던 골목길을 걷는다. 추억은 생생한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시간의 파도가 몰고 오는 변화의 엄숙함이다. 오!  모든 것이 하나이다. 사람도 대지도, 삶도 죽음도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로 만나는 추석은 최대의 명절이다. 오늘 우리는 문명을 떠나 그 먼지를 잊고 고향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초월한 자연의 품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산 자도 죽은 자도, 이 대지의 넉넉한 품 안에서 둘이 아닌 하나로 만난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 우리의 어머니 대자연에 감사를 드린다.

   대지가 나의 몸을 살찌워준다면 스승은 나의 정신을 살찌워준다. 그래서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그 절반은 스승들의 은덕(恩德) 위에 서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추석, 대지와 더불어 스승께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体)라 했던가. 땅을 임금이요 국가라 한다면 국가와 스승과 어버이가 하나라는 이 가르침은 오늘에도 변함없는 진리라고 믿는다.

   나는 대학생활 4년을 거의 학생운동에 헌신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사법시험 준비를 소홀히 하였다. 결국 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관으로 군에 가지 못하고, 일반병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사병으로 군을 제대한 다음 해 나는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면접시험이 문제였다. 비록 형식적인 절차였으나 그 때까지 남아있던 연좌제와 반독재 학생운동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 면접에서 불합격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는 유신 말기의 험악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비록 내가 학생운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일은 없었으나 그래도 일말의 불안을 느끼며 면접시험장에 나갔다.

   그 곳에는 4명의 면접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중 한 분이 헌법학자이신 나의 스승 김철수 교수였다.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시며 첫마디가 “자네는 문제없어. 문제가 있는 사람은 미리 메모가 전달되는데 자네에게는 그런 메모가 없다네. 수고 많았지. 앞으로 잘하게.”

   스승은 합격자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을 미리 알고 혹시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면접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것이 틀림없다. 그 때 나는 나에게 문제가 없어 안도하는 마음을 가지기보다 졸업한지 오래된 제자를 걱정해주시는 스승에게 너무나 감동하고 고마워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전 나는 그 스승 김철수 교수를 만났다. 몸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글을 통해 만났다. 이제 칠순이 넘으신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교수님! 단 한번도 명리(名利)를 좇아 외도를 하지 않으시고 오직 상아탑 안에서 제자를 가르치시고 헌법학 발전을 위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 대학자! 내 비록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그 스승에 대한 경외심을 한시도 잊어본 일이 없다. 나는 그 분으로부터 네 학기 헌법학 강의를 들었는데 기이하게도 모두 A학점을 받았다. 학생운동으로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해 다른 과목의 학점은 신통치 못했지만 유독 헌법만은 모두 A학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분의 미소와 만나지 못하고 그 분의 걱정과 울분을 만났다. 이제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관조(觀照)하며 진리를 말씀하셔야 할 고희를 넘기신 노교수께서 격정의 노여움으로 토하시는 울분과 마주친 것이다. 이 얼마나 면구스러운 일인가. 더욱이 스승께서는 잘못된 정치를 호되게 꾸짖고 계신다. 정치하는 제자로서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숨으려 해도 숨을 곳이 없다.

   최근 모 잡지에 발표한 ‘최후의 헌법수호자인 국민이 일어나야 한다’는 글에서 교수님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헌법의 위기를 극명하게 해부한다.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헌법수호의 최후수단인 국민의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나는 스승 김철수 교수로부터 헌법의 정신을 배웠다. 입헌주의, 법의 지배, 3권분립,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국가 권력과 국민의 행복에 관하여 배웠다. 가장 모범적이었던 입헌주의 헌법 바이마르공화국헌법이 히틀러의 나찌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도 배웠다.

   그런데 교수님은 지금 우리 헌법의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고 걱정하신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헌법수호의 최고책임자로서 헌법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 대통령에 의해서 말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한데에는 교수님의 제자인 나의 잘못이 너무나 크다. 싸우긴 싸웠으되 왜 더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는지 후회가 막급하다.

   김철수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권위주의적 대통령제가 지배하고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가 여당을 움직이고,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여당이 야당과의 타협 없이 다수의 힘으로 제압하려 드는 현상은 법치주의와 입헌정치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위헌적 행태를 적시하면서도 탄핵결정을 기각했던 헌법재판소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하고 입헌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쳤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면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현실 정치 논리에 밀려 탄핵결정을 회피한 결과, 제왕적 대통령제와 코드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됐다.”  “남북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위한 법률이 제정되거나, 헌법상 영토조항을 없애는 헌법 개정이 발안될 수 있다........민족공조를 주장하는 통일지상주의자, 북한의 인권탄압에는 눈을 감으면서 남한의 과거 인권탄압을 청산하겠다는 자칭 진보세력,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북핵개발을 허용하겠다는 친북행위자 등이 발호하고 있는 터에......한국의 좌경화 내지는 북한과의 동질화, 공산통일까지 가능할지 모른다.”  “이런 암담한 장래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고,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이 절실히 요망된다. 국민은 ‘최후의 헌법수호자’로서 헌법 보장에 앞장서야 한다.”

   김철수 교수는 절규하듯 이렇게 호소한다. “국민은 헌법보장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가권력이 위헌.불법적으로 행사되는 경우에는 저항권을 행사하여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 우리의 자유민주 체제를 지켜낼 수 있는지 여부는 온 국민의 헌법 수호 의지에 달려 있다. 한 개인은 무력할지라도 국민 개개인이 의지를 모으면 그 힘은 엄청나게 커진다.”

   오, 한 평생을 헌법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 오신 원로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 나의 스승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이 메시지를 읽으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결심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하면 정(正)이 된다. 불의에 저항하면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다. 김철수 교수는 헌법의 가치가 파괴되는 이 암울한 국가위기 앞에서 용기 있게 행동할 것을 우리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다.

   추석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며 위대한 대지와 어버이 같은 스승의 숨결을 다시 느껴 본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대지! 불의에 저항하여 이 땅에 정의를 세우라고 외치는 스승! 나의 가슴은 다시 넓고 뜨거워지기만 한다. 나는 일어서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일어서야 한다. 위대한 조국과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암담하게 현실을 짓누르는 이 먹구름을 밀어내버려야 한다. 야만이 문명을 삼키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2004. 09. 28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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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필자는 연세대 부총장시절 이인제 의원을 만난 이후 강원도 원주 상지대 총장 시절 자주 만나면서 이인제 후보의 인간적인 면을 알게 되었다.

필자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로 경주 김씨 분파 청도 김씨 11대 장손이다. 1950년 연세대학교 학생시절 6·25에 아버지와 상의하여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과거 친일파들은 일제시대에 자식들을 과학기술자로 빼돌려 병역기피 했는데 최근에도 정치인들이 몸무게, 고도 근시 등으로 자식, 사위까지 빼돌리는 등 친일파들의 대를 이은 병역회피가 계속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외국처럼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비겁하지 않고 용기 있게 자손들을 병역의무에 참여시켜야 군통수권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병역회피 정치인은 스스로 정치에서 물러나야 하고, 국민은 이러한 정치인을 추방시켜야 한다.

이인제 후보는 과거 서울 법대 학생시절 운동권 학생으로써 정의, 민주, 진리, 자유를 추구하였고, 육군 병장으로 병역의 의무를 완수하고 지장, 용장, 덕장으로서 대통령의 자격이 100% 있다고 본다. 더구나 재치와 유머를 겸비하여 한국의 정치를 선진화, 민주화 시키리라 확신한다.

그는 사법부(판사, 인권변호사), 입법부(3선 국회의원), 중앙정부(노동부장관), 지방정부(민선 경기도지사) 등의 풍부한 국정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지도자로서의 국정운영능력을 국민으로부터 충분히 검증받은 인물이다.

특히 중앙과 지방의 행정경험을 동시에 갖춘 유일한 대선 주자라는 점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더구나 교육자 집안의 딸이고 교사출신인 김은숙 여사는 현모양처로 미국의 부시 대통령 로라 여사처럼 교육에 관심이 많다.

김은숙 여사는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처럼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가로서 효를 중시하고 예절을 갖추는 한국 최고의 영부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이인제 의원과 김은숙 여사는 금상첨화의 커플로 두 딸을 연세대와 고려대학생으로 훌륭하게 잘 키우고 있고 여성을 위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3김시대로 상징되는 대결과 투쟁의 시대를 마감한다. 3김의 장점을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이인제 후보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결단력,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치유력과 창의력, 김종필 총재의 중용을 모두 겸비한 현명한 정치인이다.

또한 출신지역이나 정치적 배경, 그 어느 모로 봐도 지역주의의 선입관을 갖거나 편중됨이 없이 골고루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도자다.

필자는 고향이 경상도인데 이제 경상도에서 이인제 후보를 확실하게 100% 후원하여 지역이기주의를 타파할 지도자로 키워야 할 것이다.

창조정신, 개척정신, 도전정신으로 무장된 젊고 강력한 지도력을 국민의 힘으로 건설해야 한다. 특히 그는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잘 사는 사람은 더 살게, 못사는 사람도 더 잘살게 하기 위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이가 60세가 넘어가면 인간은 뇌의 위축이 온다. 따라서 젊은 대통령이 한국을 이끌어 가야만 나라가 젊어지고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리라 확신한다.

이인제는 '경제살리기'의 출발점으로 '정경협조'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고 기업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유일무일한 '차기 대통령감'이다.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굳은 신념과 도덕성이 뒷받침된 참된 지도자라야만 정경유착의 유혹을 뿌리치고 진정한 '정경협조'의 모델을 만들어 '경제살리기'에 나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인제는 재벌, 중·소상공인, 기업인, 노동자, 농·어민 등 한국의 전체 국민의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직접 청취하고 확인하는 현장행정을 몸소 실천해온 인물이다.

50대의 건강한 몸으로 직접 마라톤까지 하면서 국민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제 젊은 세대교체를 통하여 노인, 중·장년층을 우대하고 젊은이를 키우고 청소년, 영·유아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고 의료인이 대접받고 환자들도 의료혜택을 잘 받는 사회복지국가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교육개혁을 잘 시켜서 국민들의 사기진작을 시킬 것이다. 또한 이인제 의원은 정보통신, 생명공학을 발전시킬 것이며 창의성 있는 인재를 육성시켜 한국을 젊고 활기찬 나라로 만들 것이다. 더 나아가 이인제 후보는 한국을 번영과 남북통일로 이끄리라 확신한다.

필자는 구약학에 예언을 연구한 사람으로 젊은 대통령, 경제 대통령, 국방 대통령, 문화 대통령, 의료·교육 대통령, 과학·정보 대통령, 일꾼 대통령으로 어진 인술로 국민을 치료하는 인제(仁濟)의 성명처럼 나라를 고치는 대의(大醫)로서 "젊은 한국, 건강한 사회, 일자리를 만드는 대통령", 이인제 의원을 2002년 대통령으로 4700만 국민이 뽑아야 하고, 100% 당선되리라 확신한다. / 김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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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준비하고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정치가 이렇게 국민의 불신을 받는 때에 정치인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래도 계면쩍은 일이다. 이런 유형의 글은 아무리 기교를 부려 본다 한들 핀잔받기 십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시작하는 용기를 갖는 것은 내가 이인제 고문에게 거는 어떤 신앙같은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인제 고문을 처음 만난 것은 25년 전 라면맛이 그렇게도 좋았던 시절이다. 이고문이나 나나 인생의 표류기적 상황에서 삶의 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조우하게 되었다. 내가 이고문을 처음 보고 언뜻 느낀 인상은 의연하고 통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 느낌은 서로 사귀면서 계속 확인되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빈털터리 상황이었는데도 도대체 기가 죽는 법이 없었다. 주머니가 비면 이래저래 어느정도 주눅이 들게 마련인데도 그에게서는 그런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얻어먹어도 당당하게 얻어먹는다. 이런 기질은 부친의 영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인제 지사는 부친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부친은 가난한 농부이면서도 세상사를 보는 시선이 확연하고 꿋꿋하게 사신 분으로 아들 이인제에게 그 기질을 넘겨준 것 같다.

나는 그가 그 당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한 후였고 군입대 문제 등으로 화급한 심정으로 책과 씨름해야 할 처지인데도 그는 호연지기적 표류를 계속하고 있었다. 냇가에서 천렵을 즐기고 산열매를 찾으러 산을 헤매기도 하고 소주를 마시며 천하를 논하고 바둑으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많았다. 그 친구의 유형도 매우 다양했다. 고향, 학교, 연령, 계층이 각각 다른 잡색군의 친구들이었다. 명문학교를 나온 소위 모범새의 일반적 체취를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다양한 친구들이 청년 이인제를 중심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졌고 한잔 술에 대통령 한번 해보라는 소리도 나왔다. 나는 은연중에 그의 리더쉽과 정치적 자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청년시절 표류를 군입대로 끝을 맺는다. 입대 3일전 그야말로 백수의 입장에서 신부에게 은반지 하나 채워주지 못하는 결혼식을 올리고 훈련소를 떠났다.

제대 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환웅이 점지한 이 땅의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법조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장년 이인제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점은 그가 항상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새로운 목표을 찾아 돛을 올린다.

새로운 향해을 떠나는 부둣가에서 그를 배웅해 왔던 나는 그가 지닌 또 다른 모습들을 보았다. 그의 가슴은 매우 여리고 섬세하며 항상 뜨거운 불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만큼 고독하다. 동시에 그는 민심의 밑바닥을 훑는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현학적인 정치적 사변의 허구를 뚫고 본질을 직시하는 통찰력이 있다. 이것은 내가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제 그가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그 새로운 장도를 배웅하면서 10여년 전의 한 장면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정치에 처음 입문해 안양 갑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첫 합동유세를 하던 날, 그는 아침 일찍 안양에 있는 충혼탑에 올라 묵념을 하고 충혼탑에 두 손을 대고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다. 나는 못본 적하면서 먼 허공을 응시했지만 그가 앞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다.  / 방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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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호사였던 이인제 후보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판사직을 떠나서 변호사 개업을 한지 약 일년 쯤되었을 때였다.

그때 절친한 친구가 딱한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그가 어려운 사건을 맡아 승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료변론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마운 일을 나의 친구뿐만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의아해하는 내게 친구가 인사하러 가는데 동행하자고 하여 같이 찾아간 곳이 시청앞에 있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첫 인상에 그는 지적이고 겸손하고 온화한 평범한 동년배였다.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고마운 뜻에 감동하여 특급호텔 고급식당에 예약을 해놓고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친구가 간곡하게 요청하자, 따라나선 그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해장국집이었다. 진수성찬보다 친구의 마음을 받겠다면서 그릇을 비우는 그가 소박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 하나가 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리고 2년후 그가 낯선 곳인 안양에서 국회의원에 출마를 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나는 그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와 함께 유세장으로 그를 찾아 나섰다.

어디서 그토록 유창하고 후련하게 가슴을 치며 유권자를 압도하는 힘이 솟구치는 것일까? 그의 힘차고 논리적인 연설에 감동한 친구가 속삭였다. “미래의 대통령감이다!”

그랬다. 정치입문 석 달만에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국회로 진입한 그는 가시밭 정치현장에서 정도를 걸어와 오늘에 이르렀다.

그 성장의 힘은 지위는 변해도 불변의 의리와 능력을 지닌 그의 인간 됨됨이에서 발현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는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엄청난 힘을 보여줬다.

나는 <왕건> 촬영을 하면서 힘이 들때마다 이인제 후보를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우리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오늘날까지 정을 나눠왔기에 나는 그의 그릇을 안다.

이인제 후보! 그는 정이 깊고 아픔을 알고 힘과 능력이 있는 지도자이다. 내가 그를 지지하는 이유이다.


2003/01/30 11:01
탤런트 서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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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인제(사진) 전 대선 후보가 대선 4수에 도전할 뜻임을 시사했다.

이 전 후보는 3일 기자들과 만찬을 겸한 간담회에서 향후 진로를 묻는 질문에 “당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면서 “5년 후에 (대선에) 다시 나오지 않겠느냐. 포커판(지난 대선)에서 돈(지지율)은 다 잃었지만, 개평을 얻어서라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후보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퇴진하면서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면서 “나는 21년째 허업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실업(實業)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서는 “우파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올 한 해 경제는 좋을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변수가 될 수 있지만 이 당선인이 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http://news.media.daum.net/politics/others/200801/05/donga/v19499051.htm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447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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