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R후보를 처음 본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한창이던 6월 어느 일요일 집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선거유세장에서였다.

선거 유세장 같은 곳은 좀처럼 가지 않았던 내가 R후보의 선거유세장을 찾아갔던 이유는 당시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도청의 단체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궁금증과 그가 5공 청문회 스타라는 강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당시 R후보는 이미 광주 5공 청문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타 정치인이었고 문민정부에서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노동부장관을 하면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켜 온 그런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이런 R후보의 선거유세장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내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많은 유권자들이 모여 그의 선거유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당 후보들과 맞서는 선거유세가 아님에도 꽤나 많은 유권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그들도 나처럼 R후보의 유명세에 관심을 갖고 나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인기 있는 정치인임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였다.

유세장에 나온 많은 유권자들 중에서는 특히 평소 내가 객지에 나와 알고 지내온 C지방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 통닭집 주인,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등 주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이들의 고향은 모두 R후보 같은 C지방 사람들임이 틀림없었다.

『어이! 자네 정말 오래간만이구먼..』
『이번 민선도지사는 OOO를 뽑아줘야 되는 거여』
『이 사람이 5공 청문회 때 전OO를 혼내준 그 사람 아닌감?』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사투리는 내가 어느 지방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날 유세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화제는 단연코 R후보와 관련된 5공 광주청문회 이야기였다. 5공 광주청문회와 관련된 R후보의 이미지는 젊은 사람이 아주 당차게 정치군인들을 혼내 주었다는 평이었다.

내 기억으로도 당시 R후보가 속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다른 어느 야당의 국회의원들보다도 두드러진 청문회활동을 통하여 국민들의 뇌리에 크게 각인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R후보의 청문회 활동은 당시 많은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이때부터 “청문회스타”라는 애칭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이날 선거유세장에는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 보고 들어왔던 L모, K모 같은 지명도 높은 여당 국회의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지역출신 L모 국회의원은 5,6공 시절 여당의 사무총장과 총무까지 지낸 막강한 권력의 실세였음에도 이날은 선거유세장에 나와 R후보가 도착하기 전 분위기를 잡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5.6공 시절 명성을 날리던 분의 격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정치현실이지만 그것이 또 그분들이 가야 할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L의원이 유세분위기를 잡고 다른 장소로 떠나자마자 이번에는 곧바로 이날의 주인공인 R후보가 등장하였다.

“ 이OO, 이OO.이....." 지지자들의 연호가 유세장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았다.

시끄러웠지만 처음 보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R후보가 단상위로 올라왔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 그리고 5공 청문회 때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친애하는 도민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당이 일방적으로 저를 도지사후보로 지명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당 일각에서는 제가 경선에서 패할 수 도 있으니 안전하게 지명을 받아 도지사 후보가 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저는 단호히 거절하고 끝까지 당당하게 경선을 하여 도지사후보가 되었습니다.』
R후보의 연설은 계속 되었다.

『저는 여당 사상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도지사 후보가 되었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꼭 본선에서 민선도지사로 당선되겠습니다.』

R후보의 연설내용은 자신이 경선을 통해 도지사 후보가 되었다는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사실 당시 R후보와 경쟁을 벌였던 전직 관선도지사 출신의 I씨는 경선 후 이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끝내 고배를 들고 말았다. R지사의 열정적이고 단호한 연설에 대하여 많은 청중들이 반응하였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 우렁찬 목소리에 현란한 수식어나 지루한 정치용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 토해내는 R후보의 연설에 나 자신도 빠져 드는 듯 하였다.

이날 R후보의 인상 깊은 연설과 함께 또 하나 나의 눈길을 끈 일은 동행한 부인의 행동이었다. R후보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연단 위에 앉아 있던 여성 한 분이 단상 밑으로 내려와 땅 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청중들에게 절을 하였다. 사회자가 R후보의 부인이라고 소개하여 주었다.

한 여성이 맨땅에 갑자기 엎드려 큰절을 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로서 많은 청중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청중들의 힘찬 박수 소리가 분위기를 잘 증명해 주었다. 단상에서는 후보가, 단하에서는 부인이 멋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듯 하였다. 부인의 이날 행동은 맨땅위에서의 큰절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을 하는 여러 가지 행동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 OOO 후보를 잘 부탁합니다. 제가 OOO 안사람입니다.』

남편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거나 후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모습들이 그랬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부인을 잘 만나야 되는 거여.』

여기저기에서 청중들의 덕담이 오고 갔다. 두 분은 유세가 끝난 뒤에도 계속 운동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누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도 두 분과 악수를 나누었다. R후보와 나눈 강한 악수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남긴 유세장의 하루였다.


사이언스 | 등록 2007/11/1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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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2)

양 날개의 곡예



▲ 노무현 대통령이 20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주말 나는 나라의 운명을 놓고 노 정권이 벌이는 두 가지의 곡예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었다. 하나는 멀리 미국에서 북핵 문제를 놓고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뒤 이어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있은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대화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정부가 추진한다는 뉴딜정책의 내용 가운데 국민들이 낸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한다는 이슈를 놓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반대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터진 파문이다.

   북핵문제가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운명에 직결되는 가장 뜨거운 문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10조가 넘는 연기금의 증시투입 문제도 이것이 실패로 끝날 때 몰고 올 사회 경제적 충격을 생각하면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리라.

   연기금의 증시투입은 국민의 피와 땀이 얼룩진 미래를 위한 담보까지도 거덜 낼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으로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본격적으로 거론하기로 하고 오늘은 북핵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13일 L.A.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북핵에 관하여 했다는 말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그는 말하기를,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경우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한 북한의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곧 ‘일 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수정한 뒤, 그 수정의 이유를 “북한이 합리적이란 표현에 대해선 미 국민이 매우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을 잘못 표현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미 국민이 싫어해서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말과 ‘일리 있다’는 표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북핵문제에 관하여 갖고 있는 속마음이 노출되었고, 그것이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의 진심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 나라의 이익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보자! 과연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이 자위를 위한 것이며 그들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인가. 핵에 자위를 위한 것과 공격을 위한 것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핵은 핵일 뿐이다. 그 자체로서 위협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오는 무기인 것이다. 북의 핵이 동경이나 워싱턴에 위협과 재앙이 되기보다는 서울을 직접적인 위협과 재앙의 범주 안에 넣는다는 것을 누가 부정한단 말인가.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차원을 떠나 우리는 북의 핵개발을 반대한다. 이미 1992년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공동으로 선언하였다. 나아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정에서 북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약속한 경수로 건설의 부담을 우리가 대부분 부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북의 배신이었다. 그들은 동결된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방식을 우회하여 우라늄 농축 방식을 통한 핵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자연히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세는 극도로 악화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 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틀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3차례에 걸친 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4차 회담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이 먼저 돌이킬 수 없는 검증의 방법으로 핵을 포기해야 하며, 그 후 북한이 요구하는 여러 사항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북은 미국의 보장과 보상이 있어야 하며 그 경우 북한은 핵을 동결할 수 있고, 이 두 가지는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의 포기도 아니고 핵의 동결이며, 도대체 보장과 보상이라는 수단과 범위가 막연하기만 한 협상조건을 들고 나와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틈이 나는 대로 이미 충분한 핵 억지력을 갖추었다고 우리와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처음부터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니 대한민국은 여기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와의 비핵화공동선언, 우리 부담으로 시행하던 경수로건설, 식량 등 인도적 지원과 경협을 통한 도움 같은 것은 아랑 곳 없다는 태도이다. 북핵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이것이 북이 우리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민감하고 결정적인 시점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다른 문제는 몰라도 북핵 문제는 북의 입장이 합리적이라던가, 일리가 있다는 말을 다른 자리도 아닌 미국에서 공식 연설을 통해 밝히다니, 아무리 선의로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이 핵 확산 방지를 위해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개인 차원에서는 호불호(好不好)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부 국가들은 엄청난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핵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를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북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합리적’ 또는 ‘일리 있다’는 수식어가 붙을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걸린 사안에 관하여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런 말을 미국에서 한 것이다. 9. 11 이후 미국은 반테러가 외교정책의 움직일 수 없는 틀이 되었다. 얼마 전 끝난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케리가 북핵에 관하여 부시보다 더 강경한 기조로 일관한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지난 20일(토요일) 산티아고에서 한미 정상이 만나 40분간 대화한 내용이 일부 공개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미국이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 관하여 견지해 온 입장에서 단 한치도 벗어난 것이 없다.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봉쇄나 무력이라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미리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국이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데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을 요구하는 것을 피하여 다자간의 틀을 만들었고,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노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솔직히 말하고, 그러기 때문에 미국이 북의 선(先) 핵 포기 주장을 완화하여 6자회담의 돌파구를 열어달라는 요청을 하고, 이에 대하여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 대통령은 L.A.에서 밝힌 자신의 생각을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일부 매체들은 ‘역대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출중한 회담’이었다며 낯 뜨거운 선전을 하는데 정말 낯이 뜨거울 뿐이다. L.A.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며 말하던 그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생각해보자. 북한이 왜 핵을 가지려 하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를 보장받고 경제지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개발하려 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고 또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었을 까닭이 없다. 그것이 아니라 현재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을 보유하는 길 밖에 없고, 따라서 핵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도라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변화를 수용할 생각이었다면 한반도에 이런 불안정한 정세는 조성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고,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아주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누가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한단 말인가. 오늘처럼 험악한 정세가 조성된 것은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거부하며 고립을 자초하고, 그런 상황에서 체제 유지의 길이 핵 보유라는 용납할 수 없는 전략을 들고 나온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조만간 4차 6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4차 회담의 향배가 평화적 해결이냐, 강제적 해결이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나는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 평화로 가는 첫 단추는 앞서 말한 대로 북한이 생각과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개방과 개혁으로 나올 때 핵이 북한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도움이 아니라 장애가 될 뿐이다. 개방과 개혁을 결단하고 국제사회에 진정한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진심으로 북한을 도울 것이며, 북을 위협할 세력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은 북한이 이렇게 생각과 전략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어설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당사국들에 어떤 양보를 구하며 허둥대는 것은 길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흥정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가 'vital issue'라고 말했다는데 vital은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이라는 뜻이다. 북핵이 미국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면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란 말인가. 나는 '운명이 걸려있는(fatal)'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저 흥정을 붙이는 자세로 될 일이 아니다. 근본으로부터 풀어내야 한다. 북이 개방과 개혁 이외에 길이 없는데 그것이 두려워 고립을 택하다 보니 핵개발이라는 어두운 골목에 갇히고 만 셈이 되었다. 그들이 개방과 개혁의 대도(大道)로 돌아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지 어설피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는 자세로는 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노 정권은 위험한 곡예를 그만 두고 진지한 자세로 북을 설득하는 일에 나서길 바란다.

2004. 11. 22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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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1)

태풍의 전조(前兆)들

    그동안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미국 대선에서 부시 현 대통령의 재선일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부시의 재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행복한 모습을 보였고, 부시와 공동 운명의 동맹을 추구해 온 영국의 블레어 총리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다. 반면에 공공연히 케리의 당선을 지지한 유럽의 지도자들은 아주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한반도의 표정은 어떤가. 평양은 내심으로 아주 당황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그동안 6자회담에 불응하고 정세를 긴장시켜 왔는데, 다시 부시가 당선되었으니 그들의 의도대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북은 알아야 한다. 민주당의 케리가 당선된들 무슨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미국은 그저 미국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대외정책을 검토(review)하느라 6개월이 소요되는데, 평양이 그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상당한 사람들이 케리가 당선돼도 북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더 강경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는 사실을 평양은 명심해야 한다. 평양은 이제 핵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서울은 어떨까. 북핵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의 대선 결과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문제는 청와대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이다. 이에 관하여 최근 언론에 아주 흥미 있는 보도가 눈에 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미기업연구소(AEI)'의 한반도 전문가인 선임연구원 니콜라스 에버스타트(Nicolas Eberstadt)박사가 부시의 낙선을 기원한 청와대 인사를 모두 알고 있으며, 부시의 재선을 보며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나아가 앞으로 한미관계가 험난해질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청와대가 이를 부인하였지만 문제는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이다.

   나는 에버스타트를 잘 안다. 처음 그의 논문 “한반도조기통일론 (Hastening the Reunification of Korean Peninsula)"을 읽으며 큰 감명을 받았다. 나의 관점과 일치하는 바가 너무나 많았다. 그의 저서 ”북한의 종말 (The End of North Korea)"도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내가 1999년 워싱턴에 있을 때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 대사에게 그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릴리 대사는 당시 AEI의 아시아 담당 책임자로 있었기 때문에 나의 부탁을 듣고 “아, 닠(니콜라스를 줄여 닠이라 불렀다) 말이군요, 그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원이기도 해서 반은 워싱턴에 있고 반은 대학에 있는데 곧 만나게 해드리죠”라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아주 젊은 유태계 학자였다. 전공은 정치경제학이었다. 그는 아주 냉정하고 과학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분석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래도 우리 민족의 문제이므로 감정이나 정서가 개입 되게 마련이지만, 그는 철저하게 실증적으로만 접근하였다. 그래서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당시 그는 북의 식량문제와 이를 지원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북에서 94년부터 몇 명이나 굶어 죽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30만 명에서 300만 명의 이야기가 있는데, 나의 판단은 300만 명입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기간 중 홍콩으로 탈출한 중국인들이 약 5,000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이야기하였는데, 그 때 누구도 그 말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끝나고 중국이 개방되었을 때, 그 말은 진실로 밝혀졌습니다. 북한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는 몇 명되지 않는 한반도 전문가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사람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하는 몇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런 그가 앞서와 같은 다분히 감정 섞인 말을 하였다니 나의 기분도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야당이나 다른 단체가 아니라 청와대는 나라의 상징이고, 결과는 국익으로 직결되니 말이다. 앞으로 한반도는 북핵문제로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우리와 미국이 하나가 되어 신중하게 대처해도 긴장이 어디까지 높아질지 숨이 막히는데, 에버스타트 박사의 말대로 부시 행정부가 청와대를 불신하고 홀로 전략을 구사한다면, 우리의 국익은 누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단 말인가. 암담한 생각이 앞선다.

   하기야 요즘 저 사람들 하는 행동을 보면 걱정은 나나 국민의 몫이지 그들의 관심은 아닌 듯 싶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경제위기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던 사람들이 요즘엔 자기들 입으로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년부터 국민의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하는 등 한국의 뉴-딜 정책을 쓰겠습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위기가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나라가 대공황의 계곡에 갇혀 있을 때에나 나올 수 있는 말이 국정을 책임진 저들의 입에서 쉽게도 나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한국사회 혼란의 원인을 극명하게 지적한 말이 또 미국 교수의 입을 통해 나왔다. 조지타운 대학의 스타인버그(David Steinberg)교수가 “사회혁명이 한국을 흔들고 있다(A social revolution shakes South Korea)"고 한 말이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저들은 개혁이라고 강변하지만 미국 내 가장 권위 있는 한반도 전문가이자 원로교수인 스타인버그가 개혁(reform)이 아니라 혁명(revolution)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나는 스타인버그 교수를 몇 차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그는 정말 신중하고 사려 깊은 노 교수이다. 그 인품이 동양의 어른 같은 분이다. 가장 오랫동안 한반도 문제에 연구를 거듭해 온 학자 중의 하나이다. 그의 아내도 한국인으로서 조지 워싱턴 대학의 교수이다. 그런 그가 혁명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최근 여당 인사들이 갑자기 야당을 향해 왜 자기들을 친북좌파라고 규정하느냐며 신경질을 낸다. 자신들의 행동이 개혁인지 혁명인지를 먼저 성찰하기 바란다. 혁명이라면 무엇을 지향하는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이 미국의 노 교수가 걱정하는 바를 곱씹어보기 바란다.

   혁명이란 권력을 잡기 위해 하는 것인데 정권을 잡은 자신들이 무엇을 더 얻으려 혁명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답이 나오면 숨기지 말고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오늘 혼란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일은 저들이 진정한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노선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숨기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태풍은 저 멀리 남 지나해에서 생성한다. 올라오며 에너지를 보강한다. 그리고 약한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무서운 재앙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오늘 한반도를 향해 빠른 속도로 태풍의 핵이 성립하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 나라 안팎의 어둡고 습기 찬 기운이 그 태풍의 위력을 키울 것만 같은 두려움을 또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며, 운명의 주인공이라는 믿음으로 나서야 한다. 태풍의 눈을 소멸시키고, 태풍에 힘을 보탤 기운을 약화시키고, 태풍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최선을 다 할 때 하늘은 우리를 도와주실 것으로 믿는다.

2004. 11. 13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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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0)

폭란(暴亂)의 시대

    지난 10월 21일은 나와 나라에 큰 충격이 발생한 날이다. 이날 오전 10시 나에 대한 1심 판결 선고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판결이었다. 법정을 나서는데 어느 기자가 물어 나도 모르게 대답하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난폭한 판결이오!”

   나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많은 모략과 중상을 당하였다. 정적, 언론, 그리고 일부 정치검찰로부터 거짓과 편견으로 얼룩진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나는 눈 섶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러한 공격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그런데 저들은 비열하게 거짓을 만들어 나를 법정에 세웠다.

   모든 권력이 통치자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봉건사회가 해체되면서 사법권은 행정권, 입법권과 함께 3권의 하나로서 다른 권력으로부터 분리, 독립되었다. 다시 말해 정치적 패배자, 사회 경제적 약자의 진실과 정의를 지켜주기 위한 철학적 근거를 가지고 독립된 권력으로 설계된 것이 곧 사법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사법부는 권력의 편을 들어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국민이 사법부에 대하여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판사 출신으로 사법부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저버린 일이 없었다.

   나는 깊은 충격에 빠져 지난 일주일 동안 말을 잊었다. 정치탄압으로 고통 받는 내가 진실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붕괴될 때, 나는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내 마음의 상처가 언제 치유될 수 있을지 솔직히 알 수가 없다.

   BC 44. 3. 15 로마의 종신집정관이던 시저(Caesar, Gaius Julius)가 원로원 공화정 옹호파들의 칼을 맞고 숨진다. 시저는 평소 적대세력들이 언제든지 자기를 공격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적들의 칼날이 날아들 때 그가 절망감을 느꼈을까. 아니다. 그가 믿었던 그의 양아들 부루투스마저 그를 찌를 때 그는 비로소 절망감에 빠져 외친다. “부루투스, 너 마저도!”

   소수자, 약자의 진실을 지켜주어야 할 사법부의 실상을 확인하는 나의 심정은 괴롭다. 부루투스의 눈을 바라보는 시저의 심정이 이랬을까. 하지만 나는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이 절망감이 어찌 나만의 문제일 것인가. 따지고 보면 이러한 현실을 모른 채 안일하게 살아 온 나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일어서야 한다.

   이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렇다. 이 사건의 진실은 하늘이 알고 있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결국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고 정의가 승리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점 점 어두움이 깔리고 절망이 깊어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정의로운 힘으로 절망을 몰아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소명임을 믿는다.

   10월 21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가 수도이전사업은 헌법개정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졌다. 노 정권이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하지 않은 채 정략적으로 밀어붙이던 수도이전사업이 일대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헌재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반발해 시민단체인 자자치연대와 노사모가 항의 집회를 하는 모습)

   헌법재판소의 헌법해석은 뒤집을 수 없다. 물론 학자나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의견을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지고, 또는 다중의 힘으로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면 헌정질서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상을 보라. 노 정권의 실세들이 순순히 승복하지 않는다. 노 정권의 홍위병들이 다중의 위력으로 헌재 재판관들을 겁주려 한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 대한민국의 헌법이 그들의 눈에는 휴지 조각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대통령은 헌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취임한다. 헌법을 무시하고 이 나라와 사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변혁시키고자 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혁명가로 나서면 될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들이 꿈꾸는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그들을 지지한다면,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할 일도 없을 것이다.

   헌법에 충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오직 헌법의 정신을 해석하는 재판관들을 공공연히 공격하는 일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이런 때를 위하여 준비해 둔 헌법상 국민의 권력이 저항권이다. 국민이 헌법에 의해 세운 정권이 헌법을 배반할 때, 국민은 이 헌법상 저항권을 발동하여 그 정권을 허물게 된다.

   노 정권은 지금이라도 겸허한 자세로 헌법에 충성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헌재의 결정에 복종하는 것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복종하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일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헌재의 결정은 무조건 수도이전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고 하려면 헌법개정절차를 밟아서 하라는 것이다.그러므로 하나의 길은 수도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내는 일이요, 다른 길은 수도이전사업을 포기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일이다.

   국민 누구도 말하지 않던 수도이전을 공약하고 정권을 잡은 그들은 그 공약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설득하여 수도이전의 공감대가 확산되면 헌법개정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국민이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데 야당이 무슨 수로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국민을 설득할 책임은 전적으로 노 정권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롭고 나라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때 그들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할 당사자는 없다. 헌재에 무슨 책임이 있는가. 야당에도 아무 책임이 없다. 야당이 반대해서 국민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반대하니 야당이 반대한다.

   헌재 결정을 떠나서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도이전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이다. 적어도 15년~20년 정권이 세 네 번 바뀌어야 완성되는 사업을 국민적 동의 없이 무슨 수로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노 정권은 수도이전을 빌미로 충청도 민심을 볼모삼아 20년 장기집권을 꿈꾸는 모양인데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노 정권은 헌법개정이든 사업 포기이던 빨리 결단을 내려야한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적 책임의 내용은 국민의 뜻에 따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어설피 책임을 전가하려하거나 다른 무슨 대안을 내놓고 책임을 호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책임을 질 수도 없는 공약을 내놓고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다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들, 특히 충청지역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정권이 무슨 낯으로 대안을 내놓는다는 말인가. 내놓은들 누가 그것을 믿는단 말인가. 노 정권은 이제 겸손하게 정도를 걸어야 한다.

   얼마 전 총리라는 사람이 “조선, 동아는 까불지 마라”, “동아, 조선은 내 손에 있다”라는 말을 하였다. 보도를 전제로 말이다.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되지 않는다. 언론이 권력의 손아귀에 있다면 이미 이 나라 민주주의에는 조종(弔鍾)이 울렸다는 말이 아닌가.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은밀하게 언론을 겁주었던 독재시절을 경험하고 이제 민주주의의 지평이 열렸다고 모두 믿고 있는데, 난데없이 권력이 언론을 향해 공개적으로 까불지 말라고 협박하니 이런 난폭한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제 오늘은 또 휴전선 철책이 문제이다. 그 삼엄한 3중 철책이 뚫렸는데 군이 서둘러 우리 민간인이 월북한 것이라고 발표한다. 우리 국민 가운데 무슨 ‘람보’라도 있다는 말인가. 북의 공작원이 침투하였거나, 남에서 암약하던 북의 공작원이 월북한 것이 분명한데, 남의 민간인이라니! 어찌하다 우리 군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지장을 줄까 염려되어 그러는가. 군이 정치화되거나, 정치에 예속되어버리면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는가.

(황중선 합동참모본부 작전처장이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 최전방 철책선 절단 상황과 관련한 합동조사 결과 남측 민간인이 월북하면서 생긴 철책 절단으로 잠정 결론 지었다.)

   요 며칠 사이 나의 마음은 무겁고 우울하다.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같을 것이다. 참으로 폭란(暴亂)의 시대이다. 진실도, 헌법도, 민주주의와 안보까지도 난폭하게 짓밟히며 찢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힘 있는 자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정상(正常)으로 돌아오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가치로 귀의(歸依)하라. 지금 우리 국민들이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가. 경제의 활력과 미래의 희망이다. 그 갈망에 답하지 않는 한 민생의 안정은 이룰 수 없다. 이것이 그대들의 엄중한 책무임을 잊지 말라. 국민은 오래 참지만 교만한 권력을 용납한 적이 없다.

   러시아의 대시인 푸쉬긴이 노래했던가. “ 우울한 날들을 참고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난기류를 헤쳐 나가는 원천은 힘이다. 힘을 모아야 한다. 참고 견딤을 넘어 세상을 따뜻하고 정의롭게 만들 힘을 키워야 한다.

   폭란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과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오늘 나는 다시 일어선다.

2004. 10. 28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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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8)

오, 우리의 大地!  오, 나의 스승!


   ‘주여, 들판에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귀가 입 안을 맴돈다. 따사로운 햇볕은 신의 은총처럼 쏟아지고, 싱그러운 바람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아! 마지막 결실을 재촉하는 저 들판, 들판!  

   그 풍요로운 대지의 가슴 위를 달려 찾아 가는 곳, 우리의 고향이다. 오늘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날,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께, 그 부모를 낳아준 조상들께, 우리를 키워준 고향의 山河에게, 저 알곡을 영글게 하여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자연에게, 우리의 정신을 살찌워준 스승에게 그리고 우리를 두발로 서 있도록 허락해주고 숨결을 불어 넣어주는 이 풋풋한 대지에게, 가슴을 열고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9. 28 추석 아침 부모님이 땀 흘리며 일하시던 벌판을 바라보며 나는 오랜만에 어머님의 품에 안기는 안온함을 느낀다. 거친 풍파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고향의 품 안에서 나와 같이 넉넉한 마음을 가지리라.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간다. 우리 집 종손인 초등학교 3학년 내준이도 따라 나선다. 나에게 어머님이 그에게는 벌써 증조모이시다. 아, 세대의 흐름이 이토록 빠른 것을! 에이브러햄 링컨이 항상 중얼거렸다는 말이 떠오른다. ‘죽어야 할 숙명의 인간들이 왜 이리도 당당한가!’ 종산 군데군데에 들어서 있는 역대 조상님들의 묘역을 나이 어린 증손자와 함께 돌아보며 삶의 엄숙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짧은 생애의 인간들이 조상과 후대들을 생각하며 더 겸허하게 자연의 섭리를 받들어야 한다는 믿음이 오늘 추석 아침 나만이 갖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대지의 아들들이다. 이 산 저 산을 찾아 성묘하는 사람들을 보라. 흙으로 돌아간 조상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허락된 시간을 살고 나면 어김없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흙으로부터 생명이 주어지고 대지의 기운으로 살아가기에 말이다.

   어릴 때 살던, 지금은 헐려 없어진 옛 집터를 찾는다.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동산에 오른다. 인자한 웃음으로 나를 사랑해주던 어른들이 분주하게 오가던 골목길을 걷는다. 추억은 생생한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시간의 파도가 몰고 오는 변화의 엄숙함이다. 오!  모든 것이 하나이다. 사람도 대지도, 삶도 죽음도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로 만나는 추석은 최대의 명절이다. 오늘 우리는 문명을 떠나 그 먼지를 잊고 고향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초월한 자연의 품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산 자도 죽은 자도, 이 대지의 넉넉한 품 안에서 둘이 아닌 하나로 만난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 우리의 어머니 대자연에 감사를 드린다.

   대지가 나의 몸을 살찌워준다면 스승은 나의 정신을 살찌워준다. 그래서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그 절반은 스승들의 은덕(恩德) 위에 서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추석, 대지와 더불어 스승께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体)라 했던가. 땅을 임금이요 국가라 한다면 국가와 스승과 어버이가 하나라는 이 가르침은 오늘에도 변함없는 진리라고 믿는다.

   나는 대학생활 4년을 거의 학생운동에 헌신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사법시험 준비를 소홀히 하였다. 결국 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관으로 군에 가지 못하고, 일반병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사병으로 군을 제대한 다음 해 나는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면접시험이 문제였다. 비록 형식적인 절차였으나 그 때까지 남아있던 연좌제와 반독재 학생운동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 면접에서 불합격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는 유신 말기의 험악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비록 내가 학생운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일은 없었으나 그래도 일말의 불안을 느끼며 면접시험장에 나갔다.

   그 곳에는 4명의 면접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중 한 분이 헌법학자이신 나의 스승 김철수 교수였다.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시며 첫마디가 “자네는 문제없어. 문제가 있는 사람은 미리 메모가 전달되는데 자네에게는 그런 메모가 없다네. 수고 많았지. 앞으로 잘하게.”

   스승은 합격자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을 미리 알고 혹시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면접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것이 틀림없다. 그 때 나는 나에게 문제가 없어 안도하는 마음을 가지기보다 졸업한지 오래된 제자를 걱정해주시는 스승에게 너무나 감동하고 고마워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전 나는 그 스승 김철수 교수를 만났다. 몸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글을 통해 만났다. 이제 칠순이 넘으신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교수님! 단 한번도 명리(名利)를 좇아 외도를 하지 않으시고 오직 상아탑 안에서 제자를 가르치시고 헌법학 발전을 위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 대학자! 내 비록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그 스승에 대한 경외심을 한시도 잊어본 일이 없다. 나는 그 분으로부터 네 학기 헌법학 강의를 들었는데 기이하게도 모두 A학점을 받았다. 학생운동으로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해 다른 과목의 학점은 신통치 못했지만 유독 헌법만은 모두 A학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분의 미소와 만나지 못하고 그 분의 걱정과 울분을 만났다. 이제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관조(觀照)하며 진리를 말씀하셔야 할 고희를 넘기신 노교수께서 격정의 노여움으로 토하시는 울분과 마주친 것이다. 이 얼마나 면구스러운 일인가. 더욱이 스승께서는 잘못된 정치를 호되게 꾸짖고 계신다. 정치하는 제자로서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숨으려 해도 숨을 곳이 없다.

   최근 모 잡지에 발표한 ‘최후의 헌법수호자인 국민이 일어나야 한다’는 글에서 교수님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헌법의 위기를 극명하게 해부한다.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헌법수호의 최후수단인 국민의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나는 스승 김철수 교수로부터 헌법의 정신을 배웠다. 입헌주의, 법의 지배, 3권분립,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국가 권력과 국민의 행복에 관하여 배웠다. 가장 모범적이었던 입헌주의 헌법 바이마르공화국헌법이 히틀러의 나찌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도 배웠다.

   그런데 교수님은 지금 우리 헌법의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고 걱정하신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헌법수호의 최고책임자로서 헌법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 대통령에 의해서 말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한데에는 교수님의 제자인 나의 잘못이 너무나 크다. 싸우긴 싸웠으되 왜 더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는지 후회가 막급하다.

   김철수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권위주의적 대통령제가 지배하고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가 여당을 움직이고,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여당이 야당과의 타협 없이 다수의 힘으로 제압하려 드는 현상은 법치주의와 입헌정치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위헌적 행태를 적시하면서도 탄핵결정을 기각했던 헌법재판소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하고 입헌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쳤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면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현실 정치 논리에 밀려 탄핵결정을 회피한 결과, 제왕적 대통령제와 코드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됐다.”  “남북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위한 법률이 제정되거나, 헌법상 영토조항을 없애는 헌법 개정이 발안될 수 있다........민족공조를 주장하는 통일지상주의자, 북한의 인권탄압에는 눈을 감으면서 남한의 과거 인권탄압을 청산하겠다는 자칭 진보세력,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북핵개발을 허용하겠다는 친북행위자 등이 발호하고 있는 터에......한국의 좌경화 내지는 북한과의 동질화, 공산통일까지 가능할지 모른다.”  “이런 암담한 장래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고,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이 절실히 요망된다. 국민은 ‘최후의 헌법수호자’로서 헌법 보장에 앞장서야 한다.”

   김철수 교수는 절규하듯 이렇게 호소한다. “국민은 헌법보장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가권력이 위헌.불법적으로 행사되는 경우에는 저항권을 행사하여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 우리의 자유민주 체제를 지켜낼 수 있는지 여부는 온 국민의 헌법 수호 의지에 달려 있다. 한 개인은 무력할지라도 국민 개개인이 의지를 모으면 그 힘은 엄청나게 커진다.”

   오, 한 평생을 헌법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 오신 원로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 나의 스승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이 메시지를 읽으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결심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하면 정(正)이 된다. 불의에 저항하면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다. 김철수 교수는 헌법의 가치가 파괴되는 이 암울한 국가위기 앞에서 용기 있게 행동할 것을 우리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다.

   추석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며 위대한 대지와 어버이 같은 스승의 숨결을 다시 느껴 본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대지! 불의에 저항하여 이 땅에 정의를 세우라고 외치는 스승! 나의 가슴은 다시 넓고 뜨거워지기만 한다. 나는 일어서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일어서야 한다. 위대한 조국과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암담하게 현실을 짓누르는 이 먹구름을 밀어내버려야 한다. 야만이 문명을 삼키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2004. 09. 28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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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부는 바람(2)


거산(巨山)과 거인(巨人)


 큰 산(巨山)에 오를 때 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느끼게 된다.     산은 말없이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 준다. 정상에 올라 발아래 도회(都會)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또 얼마나 무모하게 인생을 살아가는지 깨닫게 된다. 물론 산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느 사이 세파(世波)에 파묻혀버리지만 말이다.


 나는 며칠 전 거산(巨山)의 팔순(八旬) 축하모임에 참석해 말석을 지킨 일이 있다. 내가 정치에 입문한지 꼭 20년이 되었는데 처음 10년은 거산의 문하에서 성장하였다. 그 때 함께 정치하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권좌(權座)를 떠난 지 10년. 그래도 거산을 만나러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친다. 요즘과 달리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가 말한다.  “나는 감히 고백하거니와 한 인간으로서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나는 사사로운 이익을 탐해 본 일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니 큰 산을 오를 때처럼 나 자신이 너무나 작아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나는 정치 초년 시절 대변인을 하면서 1년 가까이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관찰한 경험이 있다. 


 나는 단 한번도 그가 자세를 흩트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는 언제나 당당하였다. 당당함이란 도덕적으로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미덕이다. 역사 앞에서, 동지 앞에서 그리고 시대의 요구 앞에서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였다.

 그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거산(巨山) 안에 있을 때  산의 크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거인(巨人)의 품 안에 있을 때 얼마나 큰 인물인지를 느끼지 못하였던 것은 아닐까!


 나는 새삼스럽게 이 시대의 한 거인을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지난 시절 그로부터 정치를 배우고 역사의 물결을 헤쳐 나온 일이 한없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관대한 마음으로, 그러나 자신에게는 너무나 엄격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었던 거인!  아, 언제나 청년 같던 그가 이제 팔순을 맞이하다니,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된다.


 그는 거듭 거듭 위대한 국민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고난과 영광을 함께했던 동지들에게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였다.      그리고 지난 세월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을 때의 고통을 떠올리며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노구를 이끌고라도 언제든지 투쟁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다짐하였다.

 한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노병(老兵)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외친 맥아더를 연상하였다.


 엄혹하기만 했던 독재의 어둠을 뚫고 민주주의의 아침을 열었던 거인 김영삼!  역사의 지평에서 거산처럼 우뚝 솟아 영원한 민주주의의 이정표(里程標)로 남을 것이다.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시기를!



2008.  1.  14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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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할머니는 전쟁 때의 이야기며, 중견 탤런트인 강부자씨가 옛날 함께 살았는데 얼마 전 만났던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들려 주셨다.

“할머님, 130세까지 건강하게 살으셔서 우리들의 자랑이 되어 주세요”

내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할머니는 뜻밖에도 “글세 130을 더 살을지 못 살을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사는데까지 사는거지” 이렇게 대답을 하신다.

순간 나를 비롯하여 우리 일행들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노인 어른께 오래 오래 살으시라고 덕담을 하면 대개는 지금까지도 오래 살았는데 더 오래 살면 무엇을 하느냐, 빨리 죽어야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이 할머님은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며느님께도 많은 것을 여쭈어 보았다. 모두 4남 1녀를 두었는데 결혼한 후 각자 나가 살고 있고 이렇게 할머니를 모시고 구멍가게를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유옥녀라며 웃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송옥례라고 한다. 할머니의 이름이 “옥녀”라! 옥녀봉 밑의 옥녀! 나는 문득 그 어떤 숙명의 끈이 이 두 여인과 옥녀봉의 두 느티나무 사이에 단단히 묶여있다는 영감에 사로잡혔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옥황상제의 딸 옥녀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다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올라오라는 부름을 받고 올라가게 되었는데, 급한 나머지 그만 앞가슴을 내놓고 옥황상제 앞에 나서게 되었다. 이를 본 상제께서 화가 난 나머지 거울 하나만을 주며 땅에 내려가 살도록 명령을 내렸고, 옥녀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울다 이곳에서 죽게 되었는데 그녀가 가지고 있던 거울은 바위로 변하여 옥녀봉 바로 밑의 용영대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두 여인이 그 쌓이는 연륜, 불변의 효심으로 분명 먼 훗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나갈 전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고부간의 사랑과 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 아름다운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두 여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다시 옥녀봉 정상에 오른다. 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낀다. 금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 평원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이렇게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은 이어져 가고 있구나!

옥녀봉을 내려와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상념에 잠겼다. 나의 소년 시절, 잠시도 쉬지 않고 가족을 위해 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봄이면 밀짚모자의 재료가 되는 밀대를 따가지고 내다 팔았는데 밀짚모자 공장이 강경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짠 밀대를 머리에 가득 이고 이 강경까지 나오시곤 하셨다.

연산 집에서 강경까지는 줄잡아 12km가 넘는다. 언제나 걸어다니셨으니 왕복 24km이다.
밀대를 판 돈으로 강경의 명물인 황새기 젓갈을 사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 대지와 같은 여인의 위대함이여!


2003. 3. 26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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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달린다.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에서 강변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강남구 자곡동의 집까지 약 24km를 달린다. 작년 연말부터 골프를 멀리하고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는데 정말 좋은 운동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 두 분이 꼭 자전거를 타보라고 권유해 온 것이다. 자기들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즐기던 골프를 거의 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분들의 말이 틀린 소리가 아니다. 자전거의 매력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오늘은 마침 저녁 약속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일찍 퇴근을 하기로 하였다.

한강은 흐른다. 민족의 혼이 용해되어 흐르는 강이다. 태백준령으로부터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황해에 이르는 강.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 속에서 거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살아 온 선인들의 숨결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때마침 서풍이 불어 물결이 서에서 동으로 굽이친다. 마치 강물이 나와 함께 동쪽을 향해 흐르는 것만 같다. 그러나 한갓 바람이 어떻게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으리요. 한강은 여전히 황해를 향해 서쪽으로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을.

그러므로 바람에 흔들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흐름의 본질을 놓치고 표면의 현상에 매몰되어 사태를 잘못 판단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 시대의 진운을 거꾸로 가려다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던 구한말의 어리석은 역사. 한강은 오늘도 우리에게 그 어리석음을 결코 되풀이 하지 말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하나가 되어가고, 인간의 창조적 역량이 폭발한다. 그리하여 지구촌 시대가 열리고, 지식문명의 시대가 밝아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떨치고 문을 활짝 열어 세계로 나가야 한다. 권력은 개입의 유혹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무한의 자유를 허용하며 그들이 도전과 개척의 전선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과연 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강물 여기 저기 위로 점점이 이름 모를 철새들이 무리지어 먹이를 찾고 있다. 강가의 모래톱에는 오리떼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어디에서 날아 온 새들일까.

나는 지난 해 바이칼 호수를 여행한 일이 있다. 몽골의 울란바투르를 거쳐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여 마침내 꿈에 그리던 바이칼의 품에 안기었다. 징기스칸의 어머니 허엘룬이 태어나 성장한 아론 섬에서 하루 밤을 보낸 것이다. 지구 총 담수의 20%를 담고 있다는 바이칼의 위용 앞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가장 깊은 곳이 1800m가 넘는 이 호수의 파도는 바다 못지 않게 높고 거칠기만 하다. 그래서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일체 배의 출항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호수도 혹독한 시베리아의 추위에는 견디지 못하고 긴 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게 마련이다. 얼음의 두께가 1m 50cm에 이르기 때문에 대형 트럭들이 호수 위를 질주한다고 한다. 그러니 시베리아의 새들이 그 긴 겨울 동안 먹이를 찾아 이 곳 한강을 찾아 왔으리라.


한강에 철새들이 많이 몰려 올수록 그만큼 먹이 감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지난 40여년 동안 한강의 생태계는 얼마나 긴고통의 터널을 달려 왔을까. 이제 한강은 다시 생명이 넘치는 강으로 태어나야 한다.

즐비한 새들의 무리를 바라보며 생명의 냄새를 맡는다. 비싼 값의 깨비아가 철갑상어의 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철갑상어가 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 한강을 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경기지사로 일할 때 상어만을 박제하는 전문가를 초청하여 전시회를 연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본 멋진 철갑상어의 박제가 바로 60년대 초 한강에서 잡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한 2년 전 쯤인가, 나는 한 텔레비전 프로에서 철갑상어의 치어가 한강에서 잡혔다는 보도를 접하고 잔잔한 흥분을 느낀 일이 있다.

그렇다. 이제 한강을 생명이 충만한 강으로 만들어나가야지. 철갑상어가 회유하고 온갖 생태계가 복원되도록 해야지. 앞으로는 더 이상 자연이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지. 나는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중얼 중얼 생각을 이어 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도심의 미로가 아닌 강을 따라 달리다 보니 생명의 신비와 경외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한강을 달린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문명의 숲이 보일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는 도시의 빌딩들, 그리고 강변 좌우를 달리는 끝없는 자동차의 물결. 한강을 달리며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의 신비함을 호흡한다. 문명의 탁류속을 숨가쁘게 살아가며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말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으로부터 자연과 조화하는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말 그대로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출발한지 한시간 쯤 지나자 잠실종합체육관이 눈 앞에 보인다. 왼 쪽으로 탄천을 따라 달리면 탄천 본류와 양재천의 합류지점이 나온다. 종전처럼 탄천 본류를 따라 가기로 하였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 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비가 온데다 공사 차량들이 다니면서 길을 온통 진흙탕으로 만들어 놓았다. 도저히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다. 다시 돌아나와 양재천을 따라 큰 길로 올라 선다. 그리고 보도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세상은 어두움에 싸이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다. 몸과 마음이 새처럼 가벼워진다. 참으로 상쾌한 퇴근길이다.



2003. 3. 10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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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로 태평양을 건너며 굽어보는 대양은 그야말로 "큰 평화" 그 자체이다.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배도 한 점의 낭만으로 보인다. 그러나 배를 타고 파도에 흔들릴 때 바다의 힘을 느낀다.

2년 전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국정감사를 가서 잠수함을 타볼 기회를 가졌다. 수 십 미터까지 잠수하였을 때 느꼈던 외부세계로부터 일체의 소음을 허용하지 않는 침묵의 무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98년으로 기억이 되는데, 동해안에서 스킨스쿠버 훈련을 받은 일이 있다. 바다 속에는 겉에서 볼 수 없는 물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바다는 시간이 가져다 주는 변화말고도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치는 민심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다. 그런데 그 민심의 변화와 존재 양식은 바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나는 그동안 비행기에서 대양을 굽어보듯 민심을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 그 힘과 무게와 흐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 무거운 침묵과 격렬한 힘 그리고 일정한 법칙을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흐름에 나를 던져야 한다.

일주일 동안 내 지역구인 금산과 논산에서 많은 주민들과 만나 인사도 드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가능한 한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은 거론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많은 기대를 갖고 성원해 주셨는데 대통령이 되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아직 젊으니까 다음 기회가 또 있지 않느냐, 너무 실망하지 말라, 이렇게 격려도 많이 해 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당을 옮겼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잘 설명해야 한다고 걱정을 해 주신다. 아무 말 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농촌 지역을 돌면서 새삼 절박한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농가부채나 농업의 채산성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이다.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동네의 초등학교는 폐교되어 인삼 가공공장으로 쓰이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농촌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쉰 살의 농업전문 경영인이 자기가 동네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어이가 없는지 허허 웃는다.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살맛이 나는데 노인 어른들만 모여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서대산 동쪽 산간 마을에 가니 월남에서 며느리를 맞이해 온 가정이 있었다. 아들이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도 신부 감을 구할 수 없어 월남의 처녀를 데려와 결혼을 시켰는데 얼마 전 딸을 낳았다고 그 아버지께서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우리말은 많이 배웠느냐고 묻자 아주 쉽게 배워 지금은 큰 불편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이 농민들의 이 절박한 심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는지 깊이 반성한다. 얼마 전 13대 때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농민 출신의 박경수 의원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 분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열심히 펼치던 일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는 장가를 못가 고민하는 젊은이가 우리 농촌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걱정이다.

나는 수영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다. 힘을 빼고 물결에 몸을 맡겨야 수영을 잘 할 수 있다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생활 일선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만나며 나 자신이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일엽편주처럼 느껴진다. 바다의 섭리를 따라 항해를 해 나가듯 민심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만 정치는 진전을 이룬다.

마음을 비우고 민심의 바다에 그대로의 나를 던져야 한다. 더욱 겸손하게 순한 양처럼 바다의 물결에 나를 맡겨야 한다.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2003. 2. 15.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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