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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통일민주당
- 민주화세력의 본산 - 이후 김대중 탈당 / 90년 3당 합당 / 95년 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
1997년 국민신당
- 대통령 선거 - 이후 새천년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 2002년 12월 탈당 -  지역주의와 노무현의 급진주의 반대
2003년 자민련
- 김종필의 약속 - 이후 자민련의 김학원 등 한나라당으로 / 국중당으로 당명 변경
2007년 민주당 복당
- 민주당 권유 / 대권을 위하여 / 통합민주당-도로민주당 / 도로열린통합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 2008년 탈당 후 무소속으로 당선

이 어디에 국민을 배신한 흔적이 있는가?
이인제가 정의를 벗어나 동지를 버린 흔적이 있는가?
항상 배신 당하면서 배신했다는 모함을 듣는 정치인이 이인제다.

[정리] 통일민주당 - 민주당 - 자민련 - 민주당 - 무소속
- 전라도 경상도의 지역주의로 먹고사는 정치모리배들에게 당했을 뿐이다.
-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모리꾼 경상도 전두환 일당인 강재섭,
- 전라도 김대중 일당이 뒤에서 민 노무현, 충청도 김종필 일당에게

<출처> http://www.ijworld.or.kr/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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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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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정치의 희생양, 비운의 정치인 이인제

실컷 비웃고 가지고 놀아보자


아무리 조롱하고 맘껏 물어뜯는다 해도

이인제

그를 엄호할 세력은 어디에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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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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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출마에 즈음한 기자회견문>

“지역발전과 주민의 행복을 위한 큰 일꾼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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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고 사랑하는 논산, 금산, 계룡 주민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저 이인제에게 정치생명을 부여해주셨고 오늘까지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저는 잠시도 그 은혜를 잊어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이번 18대 총선에 출마하여 다시 주민 여러분의 심판을 받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중도개혁주의 노선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행복을 추구하는 민주당의 40만 당원이 민주적 경선을 통해 선출한 대통령후보였습니다. 그러나 민주당과 통합한 과거 열린우리당 핵심세력들이 저 이인제를 공천에서 탈락시켰습니다.


 이는 통합의 대의를 부정하고 중도개혁주의를 훼손한 폭력이며 최소한의 정치도의도 짓밟은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통합민주당은 저의 재의요구마저 묵살함으로써 사실상 저를 당에서 축출하였습니다.


 저는 깊은 고뇌 끝에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당의 이름이 아닌 주민의 이름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이번 총선에서 다시 국회의원이 되면 오직 지역발전과 주민의 행복을 위해 저의 모든 역량을 다 바쳐 헌신하겠다는 각오뿐이었습니다.

 저의 고향 논산, 금산, 계룡은 위대한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고장입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소외되고 낙후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큰 꿈을 성취하여 대대적으로 고향의 발전을 이루겠다는 소망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저의 부덕으로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주민들께 큰 실망만 안겨드렸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고향의 주민 여러분!


 저 이인제를 다시 여러분의 일꾼으로 세워주십시오! 

 다시 태어나는 각오로  지역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저의 모든 역량을 다 바치겠습니다. 항상 주민 곁에서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문제를 푸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4선의 의정활동, 노동부장관과 경기도지사로서 쌓은 모든 경험과 경륜을 지역발전과 주민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불태우겠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논산은 첨단 농업과 첨단산업 특히 첨단방위산업의 거점으로 발돋움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금산은 이제 인삼, 약초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적인 생명, 건강산업의 중심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계룡은 군사, 문화, 교육, 환경 그리고 첨단 연구역량이 결집된 전원도시로 육성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비전과 목표를 향하여 온 몸으로 뛰겠습니다. 

 장관이나 총리는 물론 대통령도 만나 필요한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내겠습니다.

 

  제가 당이 아닌 주민의 이름으로 출마하게 된 것도 초당적으로 지역발전에 나서라는 명령이라고 확신합니다.


한 없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주민 여러분!


 4년 전 17대 총선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비열한 정치보복을 물리치고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그 믿음과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 총선에서도 저 이인제에게 굳건한 믿음을 보내주십시오. 

 그 믿음 결코 저버리지 않고 여러분의 충직한 일꾼으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인구가 불어나는 고장, 경제는 풍요롭고 문화가 넘쳐 주민이 행복한 미래를 위해 저 이인제가 앞장설 것을 다짐합니다.


 많은 사랑과 성원을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8.     3.     21


                       이     인     제 

 

'이인제 논단 > 연설/성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IJ 성명] “진실은 오직 하나이다”  (0) 2008.01.06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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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R후보를 처음 본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한창이던 6월 어느 일요일 집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선거유세장에서였다.

선거 유세장 같은 곳은 좀처럼 가지 않았던 내가 R후보의 선거유세장을 찾아갔던 이유는 당시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도청의 단체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궁금증과 그가 5공 청문회 스타라는 강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당시 R후보는 이미 광주 5공 청문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타 정치인이었고 문민정부에서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노동부장관을 하면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켜 온 그런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이런 R후보의 선거유세장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내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많은 유권자들이 모여 그의 선거유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당 후보들과 맞서는 선거유세가 아님에도 꽤나 많은 유권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그들도 나처럼 R후보의 유명세에 관심을 갖고 나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인기 있는 정치인임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였다.

유세장에 나온 많은 유권자들 중에서는 특히 평소 내가 객지에 나와 알고 지내온 C지방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 통닭집 주인,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등 주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이들의 고향은 모두 R후보 같은 C지방 사람들임이 틀림없었다.

『어이! 자네 정말 오래간만이구먼..』
『이번 민선도지사는 OOO를 뽑아줘야 되는 거여』
『이 사람이 5공 청문회 때 전OO를 혼내준 그 사람 아닌감?』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사투리는 내가 어느 지방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날 유세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화제는 단연코 R후보와 관련된 5공 광주청문회 이야기였다. 5공 광주청문회와 관련된 R후보의 이미지는 젊은 사람이 아주 당차게 정치군인들을 혼내 주었다는 평이었다.

내 기억으로도 당시 R후보가 속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다른 어느 야당의 국회의원들보다도 두드러진 청문회활동을 통하여 국민들의 뇌리에 크게 각인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R후보의 청문회 활동은 당시 많은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이때부터 “청문회스타”라는 애칭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이날 선거유세장에는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 보고 들어왔던 L모, K모 같은 지명도 높은 여당 국회의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지역출신 L모 국회의원은 5,6공 시절 여당의 사무총장과 총무까지 지낸 막강한 권력의 실세였음에도 이날은 선거유세장에 나와 R후보가 도착하기 전 분위기를 잡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5.6공 시절 명성을 날리던 분의 격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정치현실이지만 그것이 또 그분들이 가야 할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L의원이 유세분위기를 잡고 다른 장소로 떠나자마자 이번에는 곧바로 이날의 주인공인 R후보가 등장하였다.

“ 이OO, 이OO.이....." 지지자들의 연호가 유세장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았다.

시끄러웠지만 처음 보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R후보가 단상위로 올라왔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 그리고 5공 청문회 때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친애하는 도민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당이 일방적으로 저를 도지사후보로 지명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당 일각에서는 제가 경선에서 패할 수 도 있으니 안전하게 지명을 받아 도지사 후보가 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저는 단호히 거절하고 끝까지 당당하게 경선을 하여 도지사후보가 되었습니다.』
R후보의 연설은 계속 되었다.

『저는 여당 사상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도지사 후보가 되었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꼭 본선에서 민선도지사로 당선되겠습니다.』

R후보의 연설내용은 자신이 경선을 통해 도지사 후보가 되었다는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사실 당시 R후보와 경쟁을 벌였던 전직 관선도지사 출신의 I씨는 경선 후 이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끝내 고배를 들고 말았다. R지사의 열정적이고 단호한 연설에 대하여 많은 청중들이 반응하였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 우렁찬 목소리에 현란한 수식어나 지루한 정치용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 토해내는 R후보의 연설에 나 자신도 빠져 드는 듯 하였다.

이날 R후보의 인상 깊은 연설과 함께 또 하나 나의 눈길을 끈 일은 동행한 부인의 행동이었다. R후보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연단 위에 앉아 있던 여성 한 분이 단상 밑으로 내려와 땅 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청중들에게 절을 하였다. 사회자가 R후보의 부인이라고 소개하여 주었다.

한 여성이 맨땅에 갑자기 엎드려 큰절을 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로서 많은 청중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청중들의 힘찬 박수 소리가 분위기를 잘 증명해 주었다. 단상에서는 후보가, 단하에서는 부인이 멋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듯 하였다. 부인의 이날 행동은 맨땅위에서의 큰절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을 하는 여러 가지 행동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 OOO 후보를 잘 부탁합니다. 제가 OOO 안사람입니다.』

남편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거나 후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모습들이 그랬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부인을 잘 만나야 되는 거여.』

여기저기에서 청중들의 덕담이 오고 갔다. 두 분은 유세가 끝난 뒤에도 계속 운동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누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도 두 분과 악수를 나누었다. R후보와 나눈 강한 악수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남긴 유세장의 하루였다.


사이언스 | 등록 2007/11/17 18:02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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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3)

양 날개의 곡예(2)

   국가 경영의 양 날개는 안보와 경제이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말했다. 나라를 지킬 군대(兵)와 백성을 먹일 식량(糧), 그리고 임금과 신하와 백성 사이의 믿음(信)이 국가 경영의 세 가지 요체이다. 공자는 이 가운데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을 보면 공자가 무슨 말씀을 하실까. 정치하는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지난 번 나는 안보 문제를 두고 이 정권이 벌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곡예를 비판한 바 있다. 오늘은 경제 문제를 두고 벌이는 또 하나의 곡예를 살펴보자.

   국민의 연기금을 증시에 쏟아 붓겠다는 이 정권의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의를 제기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연기금의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당연히 의견을 말할 입장인데도 그의 의견 표출은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증폭시키며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나는 그의 말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다. 다만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장래를 위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관리하는 책임 장관으로서 국민을 위해 올바른 소리를 했다고 판단했다. 요즘처럼 광기가 지배하는 권력의 위력 앞에서 그래도 용기 있는 발언을 하는 장관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의 용기는 몇 시간을 지탱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런 말을 하지나 말지,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즉 연기금의 증시투입을 둘러싼 논쟁이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고 국민의 편에 서서 이 난폭한 정책을 막아줄 야당마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이 정책은 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아, 나에게 이것을 막아낼 힘이 없구나! 이 정책이 결국 어떤 재앙을 몰고 올 것인가?

(사진 : 대공황시대의 실업자들 행렬)

   나는 그것을 오늘 분명히 말해두어야 한다. 현재 연기금의 주식투자는 법에 의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아주 예외적으로 극히 일부가 증시에 투자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노 정권은 기금관리기본법을 고쳐 대부분 연기금의 증시투자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불쑥 이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소위 한국판 뉴딜정책을 거론하면서이다. 1930년대 미국에 불어 닥친 대공황과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불황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것인지 아무 설명도 없으면서 다짜고짜 뉴딜정책을 쓰겠다고 한다.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뉴딜정책은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미증유의 불황으로부터 탈출한 정책이지 기업의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여 성공한 정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당시 대규모의 토목사업 등 인프라 건설에 공공재원을 쏟아 부었지 증시에 쏟아 붓지 않았다.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한다면 일시 증시가 활황을 띄고 기업들이 자기자본을 조달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 정권의 사람들은 말로는 뉴딜과 불황탈출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그 막대한 연기금을 기업들의 자본조달을 도와주는 정책에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휩쓰는 이 참혹한 불황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 기업들이 투자할 곳은 많은데 값싸게 자금을 구하지 못해 애로를 겪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연기금의 증시 투입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책이다. 물론 나는 이 경우에도 찬성하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본질이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첫째는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비어 있다. 500만 명 가까이가 신용파탄상태이다. 1년에 만 명 이상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자살률 세계 최고라고 하니 어느 사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인가 착각을 느낀다. 특히 가장 왕성하게 소비할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실업상태에 있다. 이러니 소비가 줄고 장사가 안 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공급을 담당하는 기업은 어떠한가. 정부의 정책노선과 일관성에 절대적인 불신을 보낸다. 도대체 이 정권을 믿고 일년 계획이 아니라 한달 계획도 세울 수 없다고 야단이다. 신뢰가 사라진 시장은 사막처럼 활력을 잃고 삭막해진다. 소비수요가 마르니 더 투자할 곳이 없다. 반대로 자꾸 사람들을 내보내 실업자를 늘린다. 아직도 거미줄 같은 정부의 규제와 투쟁적인 노동조합의 파업 때문에 의욕조차 사라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죽기 살기로 투자유치를 위해 양탄자를 깔아놓고 유혹한다. 그래서 기업의 해외 탈출이 봇물을 이룬다. 기업이 값싼 자기자본을 조달할 수 없어 투자가 안 되고, 투자가 부진하여 고용과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 사회가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인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들은 국민들을 호도하며 국민들의 피와 땀이 얼룩진 연기금을 증시에 쓸어 넣겠다고 야단이다. 오, 어찌 이 광기를 막을 수 있을까!

   이 정권은 지금이라도 불황의 본질을 찾아 탈출의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엄혹한 겨울을 만들어 놓고 추위에 떠는 초목에게 모닥불을 피우며 성장을 재촉하는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한다.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국민들의 미래를 위한 밑천을 긁어다 부으면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는가. 결국 연기금만 다 소진되고 더 큰 절망만이 기다릴 것이다. 겨울은 시장을 훼손하는 권력의 개입, 즉 좌파노선으로부터 찾아왔다. 용기 있게 노선을 바꾸어야 한다. 저 브라질의 룰라로부터 배우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온갖 규제를 혁파하고 노동시장을 개혁하여 기업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도전과 창조의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지 않고 무슨 수로 시장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이 정권은 이렇게 뉴딜정책을 외치고 경기부양을 위해 연기금의 증시투입을 주장하더니, 이론이 궁했는지 연기금의 투자수익률 증대와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들고 나온다. 즉, 저금리 때문에 연기금의 가치증식을 위해서는 금융상품에 의존하던 종래 방식에서 증시투자라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주식을 외국 자본이 절반 이상 매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든 적대적 M&A가 가능하므로, 이 경우에 대비하여 연기금이 기관투자가로서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은 참으로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우선 투자수익률 제고이다. 연기금은 사회안전망의 물적 수단이다. 따라서 그 기금의 운영은 안전과 안정이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투자를 위한 기금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의 연기금은 모두 법에 의해 강제로 징수하는 세금과 다를 것이 없는 공공 성격의 돈이다. 다른 나라의 임의적인 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 목적 또한 국민들의 미래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담보이다. 위험이 따르는 곳에는 절대로 투자할 수 없는 것이다. 위험이 현실화하는 날에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처음 연기금을 설계할 때 높은 금리를 전제로 하였는데 지금은 저금리가 되었으니 증시투자 외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증권시장이야말로 가장 불안정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 증시는 그 불안정성과 위험성의 강도가 심하다. 증시에 투자된 돈 가운데 외국 자본이 44%가 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학자들은 40%가 넘으면 정부의 정책이 자본시장에 먹혀들 수 없다고 한다. 이미 우리 증시의 주도권은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앞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연기금을 쏟아 붓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

   또 우리나라에는 선진국처럼 고도의 역량을 갖춘 투자전문그룹도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가 독립된 기구에서 운용한다고 말은 그럴 듯 하게 하지만, 결국 관변 단체 비슷한 곳에서 방만하게 운영하다가 큰 화근을 키울 것이 분명하다.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과거 3년 간 주식시장 침체로 민간 연금자산의 1/3을 잃고 연기금 보장기구의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연기금은 모두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증시에 투자하는 정책은 현 단계에서 전혀 고려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하여 연기금이 동원될 수 있다는 발상 또한 놀라울 뿐이다.

   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표적 기업들 즉, 포스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KT, 국민은행 같은 기업들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에 의해 경영권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한다. 아직은 외국자본들이 주식의 차익을 노리는 이른바 portfolio 이지만 언제 경영권을 목표로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공적 연기금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동원되는 일은 소의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 된다.  

 
(사진 : STX 적대적 인수합병설)

   먼저 우리의 연기금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돈이다. 이 돈이 기업의 경영과 지배구조에 영향을 준다면 이미 그 자체로서 시장경제의 원칙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관치경제의 막이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그 부정적 파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원칙 안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아무 쓸모도 없는 불필요한 규제이다.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런 규제를 풀어 우리 기업들이 스스로 길을 찾도록 해주는 일이 시급하다. 또한 자본 시장을 건강하게 육성하여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은 돈을 증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면 외국자본의 비중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지난 김대중 정권 때 잘못된 신용카드 정책으로 오늘 우리 사회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가. 지금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신용카드 남발과 신용한도 책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가. 그 때에도 정권의 목표에 맞추어 경제 관료들이 궤변을 늘어놓으며 그 정책을 태연히 추진하였다. 그리고 지금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오늘 120조에 이르는 연기금을 불안정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증시에 투자하겠다고 야단이다. 경제 관료들이 앞장서서 자신만만이다. 저들이 틀림없이 큰일을 저지르려 한다. 하지만 후일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일이 터지고 나면 그들이 책임을 진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저들이 키우는 재앙을 보고 있으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의 시인 김춘수 선생이 운명하셨다. 시인은 꿈과 사랑을 노래한다. 시인은 실존과 희망을 추구한다.

   오, 오늘 우리는 절망의 어둠 속을 걷고 있으나 내일은 희망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런데 저들이 내일을 위한 최소한의 담보마저 위험한 강에 던져버리려 한다!

   김춘수 시인의 명복을 빌며, 우리의 희망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2004. 11. 30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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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2)

양 날개의 곡예



▲ 노무현 대통령이 20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주말 나는 나라의 운명을 놓고 노 정권이 벌이는 두 가지의 곡예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었다. 하나는 멀리 미국에서 북핵 문제를 놓고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뒤 이어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있은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대화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정부가 추진한다는 뉴딜정책의 내용 가운데 국민들이 낸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한다는 이슈를 놓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반대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터진 파문이다.

   북핵문제가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운명에 직결되는 가장 뜨거운 문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10조가 넘는 연기금의 증시투입 문제도 이것이 실패로 끝날 때 몰고 올 사회 경제적 충격을 생각하면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리라.

   연기금의 증시투입은 국민의 피와 땀이 얼룩진 미래를 위한 담보까지도 거덜 낼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으로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본격적으로 거론하기로 하고 오늘은 북핵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13일 L.A.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북핵에 관하여 했다는 말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그는 말하기를,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경우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한 북한의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곧 ‘일 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수정한 뒤, 그 수정의 이유를 “북한이 합리적이란 표현에 대해선 미 국민이 매우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자신의 생각을 잘못 표현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미 국민이 싫어해서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다. ‘합리적’이라는 말과 ‘일리 있다’는 표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북핵문제에 관하여 갖고 있는 속마음이 노출되었고, 그것이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의 진심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 나라의 이익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보자! 과연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이 자위를 위한 것이며 그들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인가. 핵에 자위를 위한 것과 공격을 위한 것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핵은 핵일 뿐이다. 그 자체로서 위협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오는 무기인 것이다. 북의 핵이 동경이나 워싱턴에 위협과 재앙이 되기보다는 서울을 직접적인 위협과 재앙의 범주 안에 넣는다는 것을 누가 부정한단 말인가.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차원을 떠나 우리는 북의 핵개발을 반대한다. 이미 1992년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공동으로 선언하였다. 나아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정에서 북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약속한 경수로 건설의 부담을 우리가 대부분 부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북의 배신이었다. 그들은 동결된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방식을 우회하여 우라늄 농축 방식을 통한 핵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자연히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세는 극도로 악화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 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틀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3차례에 걸친 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4차 회담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이 먼저 돌이킬 수 없는 검증의 방법으로 핵을 포기해야 하며, 그 후 북한이 요구하는 여러 사항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북은 미국의 보장과 보상이 있어야 하며 그 경우 북한은 핵을 동결할 수 있고, 이 두 가지는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의 포기도 아니고 핵의 동결이며, 도대체 보장과 보상이라는 수단과 범위가 막연하기만 한 협상조건을 들고 나와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틈이 나는 대로 이미 충분한 핵 억지력을 갖추었다고 우리와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처음부터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니 대한민국은 여기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와의 비핵화공동선언, 우리 부담으로 시행하던 경수로건설, 식량 등 인도적 지원과 경협을 통한 도움 같은 것은 아랑 곳 없다는 태도이다. 북핵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이것이 북이 우리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민감하고 결정적인 시점에서 이 나라 대통령이 다른 문제는 몰라도 북핵 문제는 북의 입장이 합리적이라던가, 일리가 있다는 말을 다른 자리도 아닌 미국에서 공식 연설을 통해 밝히다니, 아무리 선의로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이 핵 확산 방지를 위해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개인 차원에서는 호불호(好不好)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부 국가들은 엄청난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핵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를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북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합리적’ 또는 ‘일리 있다’는 수식어가 붙을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걸린 사안에 관하여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런 말을 미국에서 한 것이다. 9. 11 이후 미국은 반테러가 외교정책의 움직일 수 없는 틀이 되었다. 얼마 전 끝난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케리가 북핵에 관하여 부시보다 더 강경한 기조로 일관한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지난 20일(토요일) 산티아고에서 한미 정상이 만나 40분간 대화한 내용이 일부 공개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미국이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 관하여 견지해 온 입장에서 단 한치도 벗어난 것이 없다.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봉쇄나 무력이라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미리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국이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데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을 요구하는 것을 피하여 다자간의 틀을 만들었고,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노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솔직히 말하고, 그러기 때문에 미국이 북의 선(先) 핵 포기 주장을 완화하여 6자회담의 돌파구를 열어달라는 요청을 하고, 이에 대하여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 대통령은 L.A.에서 밝힌 자신의 생각을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일부 매체들은 ‘역대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출중한 회담’이었다며 낯 뜨거운 선전을 하는데 정말 낯이 뜨거울 뿐이다. L.A.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며 말하던 그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생각해보자. 북한이 왜 핵을 가지려 하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를 보장받고 경제지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개발하려 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고 또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었을 까닭이 없다. 그것이 아니라 현재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을 보유하는 길 밖에 없고, 따라서 핵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도라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변화를 수용할 생각이었다면 한반도에 이런 불안정한 정세는 조성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고,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아주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누가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한단 말인가. 오늘처럼 험악한 정세가 조성된 것은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거부하며 고립을 자초하고, 그런 상황에서 체제 유지의 길이 핵 보유라는 용납할 수 없는 전략을 들고 나온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조만간 4차 6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4차 회담의 향배가 평화적 해결이냐, 강제적 해결이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나는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 평화로 가는 첫 단추는 앞서 말한 대로 북한이 생각과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개방과 개혁으로 나올 때 핵이 북한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도움이 아니라 장애가 될 뿐이다. 개방과 개혁을 결단하고 국제사회에 진정한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진심으로 북한을 도울 것이며, 북을 위협할 세력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은 북한이 이렇게 생각과 전략을 바꾸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어설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당사국들에 어떤 양보를 구하며 허둥대는 것은 길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흥정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가 'vital issue'라고 말했다는데 vital은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이라는 뜻이다. 북핵이 미국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면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란 말인가. 나는 '운명이 걸려있는(fatal)'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저 흥정을 붙이는 자세로 될 일이 아니다. 근본으로부터 풀어내야 한다. 북이 개방과 개혁 이외에 길이 없는데 그것이 두려워 고립을 택하다 보니 핵개발이라는 어두운 골목에 갇히고 만 셈이 되었다. 그들이 개방과 개혁의 대도(大道)로 돌아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지 어설피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는 자세로는 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노 정권은 위험한 곡예를 그만 두고 진지한 자세로 북을 설득하는 일에 나서길 바란다.

2004. 11. 22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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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부는 바람(3) 

 

융합의 시대


 모처럼 설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냈다. 그러다 보니 TV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하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 가운데 외국인 며느리를 맞은 가정의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했던가. 농촌 총각들이 장가를 가야 하는데 우리 처녀들이 농촌을 기피하여 큰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가 오래 되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주로 동남아를 비롯한 외국 처녀와의 국제결혼이었다.


 오랜 세월 단일 민족 공동체를 유지하던 나라에서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문화의 충돌을 유발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벌써 이렇게 국제결혼한 가정이 40만을 육박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多文化)가정은 예외가 아니라 일반의 문제가 되었다.


 나는 다문화 가정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우리 국민들이 어느 사이 이질적 문화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주목한다. 부끄러움이나 어색함은 찾을 길이 없다. 시부모도 동네 주민들도 축복으로 받아들인다.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몰고 온 이 거대한 흐름이 과연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나는 매우 긍정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다문화 가정은 곧 문화가 융합하는 현장이다. 문화의 융합이야말로 한 사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가져다준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유교문화, 불교문화, 기독교문화를 받아들여 전통문화와의 융합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질문화권의 사람을 받아들여 피를 섞는 융합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의도하지 않았던 이 놀라운 사람과 문화의 융합은 필연적으로 한국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우선 우리 사회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열 수 있는 개방성과 유연성을 키워줄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우리 국민들이 세계를 질주할 수 있는 강한 문화적 상상력을 충전시키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가 하나로 변모하는 시대를 맞아 역사의 신이 우리 민족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한 섭리라고 믿는다.


 미래학자 토플러가 말하였다. 정보기술이 제3의 물결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 융합하면서 제4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에서도 단연 융합기술(fusion technology)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술 뿐 만인가. 지식도 학문도 조직도 융합의 추세에 있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미래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역시 사람과 문화의 융합이리라.

 보라. 미국은 태생적으로 사람과 문화의 융합을 이루며 성장 발전해 온 사회이다. 그들이 세계화를 선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사람과 문화의 융합에 있다.


 우리 사회 다문화 가정에 대하여 이러한 긍정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국가의 정책도 사람과 문화의 융합을 통하여 한 가정의 행복은 물론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융합의 전선(前線)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다문화 가정 가족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2008.     2.     1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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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8)

오, 우리의 大地!  오, 나의 스승!


   ‘주여, 들판에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귀가 입 안을 맴돈다. 따사로운 햇볕은 신의 은총처럼 쏟아지고, 싱그러운 바람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아! 마지막 결실을 재촉하는 저 들판, 들판!  

   그 풍요로운 대지의 가슴 위를 달려 찾아 가는 곳, 우리의 고향이다. 오늘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날,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께, 그 부모를 낳아준 조상들께, 우리를 키워준 고향의 山河에게, 저 알곡을 영글게 하여 우리를 먹여 살리는 자연에게, 우리의 정신을 살찌워준 스승에게 그리고 우리를 두발로 서 있도록 허락해주고 숨결을 불어 넣어주는 이 풋풋한 대지에게, 가슴을 열고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9. 28 추석 아침 부모님이 땀 흘리며 일하시던 벌판을 바라보며 나는 오랜만에 어머님의 품에 안기는 안온함을 느낀다. 거친 풍파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고향의 품 안에서 나와 같이 넉넉한 마음을 가지리라.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간다. 우리 집 종손인 초등학교 3학년 내준이도 따라 나선다. 나에게 어머님이 그에게는 벌써 증조모이시다. 아, 세대의 흐름이 이토록 빠른 것을! 에이브러햄 링컨이 항상 중얼거렸다는 말이 떠오른다. ‘죽어야 할 숙명의 인간들이 왜 이리도 당당한가!’ 종산 군데군데에 들어서 있는 역대 조상님들의 묘역을 나이 어린 증손자와 함께 돌아보며 삶의 엄숙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짧은 생애의 인간들이 조상과 후대들을 생각하며 더 겸허하게 자연의 섭리를 받들어야 한다는 믿음이 오늘 추석 아침 나만이 갖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대지의 아들들이다. 이 산 저 산을 찾아 성묘하는 사람들을 보라. 흙으로 돌아간 조상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허락된 시간을 살고 나면 어김없이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흙으로부터 생명이 주어지고 대지의 기운으로 살아가기에 말이다.

   어릴 때 살던, 지금은 헐려 없어진 옛 집터를 찾는다.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동산에 오른다. 인자한 웃음으로 나를 사랑해주던 어른들이 분주하게 오가던 골목길을 걷는다. 추억은 생생한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시간의 파도가 몰고 오는 변화의 엄숙함이다. 오!  모든 것이 하나이다. 사람도 대지도, 삶도 죽음도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로 만나는 추석은 최대의 명절이다. 오늘 우리는 문명을 떠나 그 먼지를 잊고 고향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초월한 자연의 품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산 자도 죽은 자도, 이 대지의 넉넉한 품 안에서 둘이 아닌 하나로 만난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 우리의 어머니 대자연에 감사를 드린다.

   대지가 나의 몸을 살찌워준다면 스승은 나의 정신을 살찌워준다. 그래서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그 절반은 스승들의 은덕(恩德) 위에 서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추석, 대지와 더불어 스승께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体)라 했던가. 땅을 임금이요 국가라 한다면 국가와 스승과 어버이가 하나라는 이 가르침은 오늘에도 변함없는 진리라고 믿는다.

   나는 대학생활 4년을 거의 학생운동에 헌신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사법시험 준비를 소홀히 하였다. 결국 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관으로 군에 가지 못하고, 일반병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사병으로 군을 제대한 다음 해 나는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면접시험이 문제였다. 비록 형식적인 절차였으나 그 때까지 남아있던 연좌제와 반독재 학생운동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 면접에서 불합격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는 유신 말기의 험악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비록 내가 학생운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일은 없었으나 그래도 일말의 불안을 느끼며 면접시험장에 나갔다.

   그 곳에는 4명의 면접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중 한 분이 헌법학자이신 나의 스승 김철수 교수였다.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시며 첫마디가 “자네는 문제없어. 문제가 있는 사람은 미리 메모가 전달되는데 자네에게는 그런 메모가 없다네. 수고 많았지. 앞으로 잘하게.”

   스승은 합격자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을 미리 알고 혹시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면접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것이 틀림없다. 그 때 나는 나에게 문제가 없어 안도하는 마음을 가지기보다 졸업한지 오래된 제자를 걱정해주시는 스승에게 너무나 감동하고 고마워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전 나는 그 스승 김철수 교수를 만났다. 몸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글을 통해 만났다. 이제 칠순이 넘으신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교수님! 단 한번도 명리(名利)를 좇아 외도를 하지 않으시고 오직 상아탑 안에서 제자를 가르치시고 헌법학 발전을 위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 대학자! 내 비록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그 스승에 대한 경외심을 한시도 잊어본 일이 없다. 나는 그 분으로부터 네 학기 헌법학 강의를 들었는데 기이하게도 모두 A학점을 받았다. 학생운동으로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해 다른 과목의 학점은 신통치 못했지만 유독 헌법만은 모두 A학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분의 미소와 만나지 못하고 그 분의 걱정과 울분을 만났다. 이제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관조(觀照)하며 진리를 말씀하셔야 할 고희를 넘기신 노교수께서 격정의 노여움으로 토하시는 울분과 마주친 것이다. 이 얼마나 면구스러운 일인가. 더욱이 스승께서는 잘못된 정치를 호되게 꾸짖고 계신다. 정치하는 제자로서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숨으려 해도 숨을 곳이 없다.

   최근 모 잡지에 발표한 ‘최후의 헌법수호자인 국민이 일어나야 한다’는 글에서 교수님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헌법의 위기를 극명하게 해부한다.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헌법수호의 최후수단인 국민의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나는 스승 김철수 교수로부터 헌법의 정신을 배웠다. 입헌주의, 법의 지배, 3권분립,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국가 권력과 국민의 행복에 관하여 배웠다. 가장 모범적이었던 입헌주의 헌법 바이마르공화국헌법이 히틀러의 나찌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도 배웠다.

   그런데 교수님은 지금 우리 헌법의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고 걱정하신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헌법수호의 최고책임자로서 헌법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 대통령에 의해서 말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한데에는 교수님의 제자인 나의 잘못이 너무나 크다. 싸우긴 싸웠으되 왜 더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는지 후회가 막급하다.

   김철수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권위주의적 대통령제가 지배하고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가 여당을 움직이고,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여당이 야당과의 타협 없이 다수의 힘으로 제압하려 드는 현상은 법치주의와 입헌정치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위헌적 행태를 적시하면서도 탄핵결정을 기각했던 헌법재판소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하고 입헌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쳤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면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현실 정치 논리에 밀려 탄핵결정을 회피한 결과, 제왕적 대통령제와 코드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됐다.”  “남북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위한 법률이 제정되거나, 헌법상 영토조항을 없애는 헌법 개정이 발안될 수 있다........민족공조를 주장하는 통일지상주의자, 북한의 인권탄압에는 눈을 감으면서 남한의 과거 인권탄압을 청산하겠다는 자칭 진보세력,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북핵개발을 허용하겠다는 친북행위자 등이 발호하고 있는 터에......한국의 좌경화 내지는 북한과의 동질화, 공산통일까지 가능할지 모른다.”  “이런 암담한 장래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고,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이 절실히 요망된다. 국민은 ‘최후의 헌법수호자’로서 헌법 보장에 앞장서야 한다.”

   김철수 교수는 절규하듯 이렇게 호소한다. “국민은 헌법보장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가권력이 위헌.불법적으로 행사되는 경우에는 저항권을 행사하여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 우리의 자유민주 체제를 지켜낼 수 있는지 여부는 온 국민의 헌법 수호 의지에 달려 있다. 한 개인은 무력할지라도 국민 개개인이 의지를 모으면 그 힘은 엄청나게 커진다.”

   오, 한 평생을 헌법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 오신 원로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 나의 스승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이 메시지를 읽으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결심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하면 정(正)이 된다. 불의에 저항하면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다. 김철수 교수는 헌법의 가치가 파괴되는 이 암울한 국가위기 앞에서 용기 있게 행동할 것을 우리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다.

   추석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며 위대한 대지와 어버이 같은 스승의 숨결을 다시 느껴 본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대지! 불의에 저항하여 이 땅에 정의를 세우라고 외치는 스승! 나의 가슴은 다시 넓고 뜨거워지기만 한다. 나는 일어서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일어서야 한다. 위대한 조국과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암담하게 현실을 짓누르는 이 먹구름을 밀어내버려야 한다. 야만이 문명을 삼키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2004. 09. 28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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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바다와 싸우다(7)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생각의 힘은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로부터 나온다. 또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것처럼 ‘사회적 동물’이다. 결국 사람들은 사회적 공동체로서 국가를 이루며, 자기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부단히 사고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이념과 체제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것이 한 나라의 역사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념논쟁이 한창이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지겨워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제 와서 이 논쟁을 피할 수도 없다. 아니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치열하고 빠르게 이 논쟁을 종결시켜 나라의 이념과 사회의 가치를 한 차원 높이 고양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 안보의 불안, 경제의 침체, 사회의 무질서 등 온갖 병폐가 따지고 보면 바로 이 이념과 가치의 문제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보자! 지금 정권을 잡은 세력과 그들의 전위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념적 정체를 ‘진보’라고 자처한다. 과연 진보인가. 그렇지 못한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보자! 지금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야말로 ‘보수’라고 자부한다. 과연 보수인가. 그렇다면 왜 저들이 이들을 가리켜 ‘냉전 수구 꼴통’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는데도 이 말이 대중들에게 먹혀드는 것인가. 우리는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사람의 가치지향을 규정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근대사회가 성립되면서 등장한다. 특히 근대사회의 경제체제인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냉전이 격화되면서, 진보와 보수는 사회발전을 이끄는 양대 축(軸)의 개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봉건사회로부터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 시민사회를 이끌어낸 유럽 사회에서 무리 없이 통용될 수 있는 설명이다.

   이민 개척자들이 자유의 정신으로 나라를 세운 미국 사회에서는 아예 사회주의 자체가 힘을 얻지 못하여 유럽과 같은 진보의 개념도 사회 발전의 축을 이루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progressive가 아닌 liberal이 보수(conservative)에 대칭을 이루고 있다. 미국 사회의 liberal이 유럽 사회의 progressive와 다른 개념임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은 어떠한가. 한반도를 놓고 보면 치열한 냉전구도가 아직도 해체되지 못하고 있다. 남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냉전체제하에서 이를 부정하는 반체제세력은 지하에 숨어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북과 연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세력들은 그동안 여와 야로 나뉘어 투쟁해 왔다. 한편은 상대를 독재로 몰아 세웠고, 다른 한 편은 경제 건설이 우선이라며 자유의 유보를 합리화 시켰다. 이렇게 그동안 제도권 안의 정치세력은 크게 보면 그 가치 지향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편은 권위주의적이었고, 다른 한편은 이를 해체하고자 투쟁하였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산업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우리 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다원화되어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의 전통적인 좌파정당과 같은 정당이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게 되었다. 또 과거 반체제 운동에 젊음을 바쳤던 세력의 일부가 정권의 핵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제도상으로는 완성되었는지 모르나, 권력의 문화나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는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된다. 시장경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도 개발경제시대로부터 힘겹게 시장경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구체적 모순들은 저 유럽의 자유로운 시장으로부터 생겨난 모순과는 판이하다. 오히려 국가권력의 개입과 간섭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유럽에서의 진보란 시장을 지배하는 자유의 과잉으로부터 생겨난 모순, 이를테면 빈부의 격차, 사회적 불평등 같은 잘못을 사회주의적 원리를 제한적으로 적용하여 시정함으로써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념적 지향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모순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럽 사회의 모순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원리를 들고 나온다면, 우리가 그러한 주장에 진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한 태도는 그저 사회주의적이거나 반체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궁극적인 가치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국가권력이 넘치는 시장과 독재가 판을 치는 사회를 통해 기득권을 키워온 사람들이 마치 보수의 상징인 것처럼 행세한다면 이 또한 중대한 착각이다. 보수란 가능한 한 시장과 사회에 자유가 넘치도록 하려는 가치지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그들이 보수를 외쳐도 힘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인류문명도 마찬가지이다. 변화의 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계화와 지식화이다. 국민국가시대가 해체되고 지구촌시대가 다가온다. 산업문명으로부터 지식문명이 밝아온다. 이제 모든 국가, 기업, 국민들이 이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말하자면 판(板)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앞서가는 나라들에서는 과거 이념의 스펙트럼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이 내세우는 ‘제3의 길’, 독일 사민당이 표방하는 ‘새로운 중도’는 이 이념적 과도기에서 겪는 혼란과 고민을 상징하는 개념들이다. 당연히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서 사회주의 본영(本營)은 와해되었다. 중국은 점진적으로 현대화 개혁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므로 사회주의 골격이 유지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경제는 물론 정치도 종국적으로는 다원주의로 나갈 것으로 믿는다. 쿠바와 북한만이 변화의 물결을 거부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사회에 더 이상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이나 열정은 살아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피폐한 인민의 삶과 앙상한 권력의 독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좋든 싫든 그것은 객관적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나 사회주의적 원리를 내세우며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관하여 무지하며, 세계 변화에 둔감한지를 자각해야 한다. 그들의 태도는 과학적으로 분석할 때 진보(progressive)가 아니라 퇴보(regressive) 또는 퇴영(retrogressive)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와 체제를 따른다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21세기 지식강국으로 가겠는가, 낙후된 과거로 가겠는가. 미래가 없는 허구의 이념에 더 이상 우리 사회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체제의 실체를 내세워야 한다. 특히 과거 독재와 관치경제의 특혜를 누렸던 사람들은 통절한 자기성찰 위에서 자기가  헌신할 비전과 가치를 명백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저 기득권에 집착해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거나 맹목적 반대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의 실체를 포장하는데 적절치 못하다. 참다운 진보도, 진정한 보수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 한 가운데 있을 뿐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여러 모순들을 해결하며 부단히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치와 체제야 말로 참다운 진보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성공한 역사로 평가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 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면, 그러한 신념은 진정한 보수이자 동시에 진보를 의미한다. 우리의 미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세계화와 지식화에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는 현재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 역사를 전진시키려는 세력과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세력이 충돌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참으로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다. 오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냉혹한 세계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유럽 사회에서, 그것도 지난 시대에나 통용되던 진보라는 빛바랜 깃발을 가지고는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후퇴시켜 우리 모두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우리 젊은이들이 이 진보라는 허구의 울타리에 더 이상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참다운 역사의 진보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허구의 진보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뭉쳐 싸울 줄 안다. 또 교묘한 위장과 기만에 능하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숨기고 끊임없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한 발짝씩 목표에 접근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각심을 높여 그들과 싸워야 한다. 그들의 정체를 여지없이 폭로하며 무엇이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길인지를 국민들께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이 싸움의 승패가 21세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기회의 평등, 시장경제, 자주적인 세계화, 지식강국 그리고 이러한 가치 중심의 통일국가 건설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러한 가치를 위해 우리 모두는 단결하여 싸워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 길이다.

2004.  9.  2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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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부는 바람(2)


거산(巨山)과 거인(巨人)


 큰 산(巨山)에 오를 때 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느끼게 된다.     산은 말없이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 준다. 정상에 올라 발아래 도회(都會)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또 얼마나 무모하게 인생을 살아가는지 깨닫게 된다. 물론 산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느 사이 세파(世波)에 파묻혀버리지만 말이다.


 나는 며칠 전 거산(巨山)의 팔순(八旬) 축하모임에 참석해 말석을 지킨 일이 있다. 내가 정치에 입문한지 꼭 20년이 되었는데 처음 10년은 거산의 문하에서 성장하였다. 그 때 함께 정치하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권좌(權座)를 떠난 지 10년. 그래도 거산을 만나러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친다. 요즘과 달리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가 말한다.  “나는 감히 고백하거니와 한 인간으로서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나는 사사로운 이익을 탐해 본 일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니 큰 산을 오를 때처럼 나 자신이 너무나 작아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나는 정치 초년 시절 대변인을 하면서 1년 가까이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관찰한 경험이 있다. 


 나는 단 한번도 그가 자세를 흩트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는 언제나 당당하였다. 당당함이란 도덕적으로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미덕이다. 역사 앞에서, 동지 앞에서 그리고 시대의 요구 앞에서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였다.

 그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거산(巨山) 안에 있을 때  산의 크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거인(巨人)의 품 안에 있을 때 얼마나 큰 인물인지를 느끼지 못하였던 것은 아닐까!


 나는 새삼스럽게 이 시대의 한 거인을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지난 시절 그로부터 정치를 배우고 역사의 물결을 헤쳐 나온 일이 한없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관대한 마음으로, 그러나 자신에게는 너무나 엄격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었던 거인!  아, 언제나 청년 같던 그가 이제 팔순을 맞이하다니,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된다.


 그는 거듭 거듭 위대한 국민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고난과 영광을 함께했던 동지들에게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였다.      그리고 지난 세월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을 때의 고통을 떠올리며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노구를 이끌고라도 언제든지 투쟁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다짐하였다.

 한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노병(老兵)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외친 맥아더를 연상하였다.


 엄혹하기만 했던 독재의 어둠을 뚫고 민주주의의 아침을 열었던 거인 김영삼!  역사의 지평에서 거산처럼 우뚝 솟아 영원한 민주주의의 이정표(里程標)로 남을 것이다.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시기를!



2008.  1.  14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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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필자는 연세대 부총장시절 이인제 의원을 만난 이후 강원도 원주 상지대 총장 시절 자주 만나면서 이인제 후보의 인간적인 면을 알게 되었다.

필자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로 경주 김씨 분파 청도 김씨 11대 장손이다. 1950년 연세대학교 학생시절 6·25에 아버지와 상의하여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과거 친일파들은 일제시대에 자식들을 과학기술자로 빼돌려 병역기피 했는데 최근에도 정치인들이 몸무게, 고도 근시 등으로 자식, 사위까지 빼돌리는 등 친일파들의 대를 이은 병역회피가 계속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외국처럼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비겁하지 않고 용기 있게 자손들을 병역의무에 참여시켜야 군통수권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병역회피 정치인은 스스로 정치에서 물러나야 하고, 국민은 이러한 정치인을 추방시켜야 한다.

이인제 후보는 과거 서울 법대 학생시절 운동권 학생으로써 정의, 민주, 진리, 자유를 추구하였고, 육군 병장으로 병역의 의무를 완수하고 지장, 용장, 덕장으로서 대통령의 자격이 100% 있다고 본다. 더구나 재치와 유머를 겸비하여 한국의 정치를 선진화, 민주화 시키리라 확신한다.

그는 사법부(판사, 인권변호사), 입법부(3선 국회의원), 중앙정부(노동부장관), 지방정부(민선 경기도지사) 등의 풍부한 국정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지도자로서의 국정운영능력을 국민으로부터 충분히 검증받은 인물이다.

특히 중앙과 지방의 행정경험을 동시에 갖춘 유일한 대선 주자라는 점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더구나 교육자 집안의 딸이고 교사출신인 김은숙 여사는 현모양처로 미국의 부시 대통령 로라 여사처럼 교육에 관심이 많다.

김은숙 여사는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처럼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가로서 효를 중시하고 예절을 갖추는 한국 최고의 영부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이인제 의원과 김은숙 여사는 금상첨화의 커플로 두 딸을 연세대와 고려대학생으로 훌륭하게 잘 키우고 있고 여성을 위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3김시대로 상징되는 대결과 투쟁의 시대를 마감한다. 3김의 장점을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이인제 후보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결단력,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치유력과 창의력, 김종필 총재의 중용을 모두 겸비한 현명한 정치인이다.

또한 출신지역이나 정치적 배경, 그 어느 모로 봐도 지역주의의 선입관을 갖거나 편중됨이 없이 골고루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도자다.

필자는 고향이 경상도인데 이제 경상도에서 이인제 후보를 확실하게 100% 후원하여 지역이기주의를 타파할 지도자로 키워야 할 것이다.

창조정신, 개척정신, 도전정신으로 무장된 젊고 강력한 지도력을 국민의 힘으로 건설해야 한다. 특히 그는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잘 사는 사람은 더 살게, 못사는 사람도 더 잘살게 하기 위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이가 60세가 넘어가면 인간은 뇌의 위축이 온다. 따라서 젊은 대통령이 한국을 이끌어 가야만 나라가 젊어지고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리라 확신한다.

이인제는 '경제살리기'의 출발점으로 '정경협조'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고 기업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유일무일한 '차기 대통령감'이다.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굳은 신념과 도덕성이 뒷받침된 참된 지도자라야만 정경유착의 유혹을 뿌리치고 진정한 '정경협조'의 모델을 만들어 '경제살리기'에 나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인제는 재벌, 중·소상공인, 기업인, 노동자, 농·어민 등 한국의 전체 국민의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직접 청취하고 확인하는 현장행정을 몸소 실천해온 인물이다.

50대의 건강한 몸으로 직접 마라톤까지 하면서 국민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제 젊은 세대교체를 통하여 노인, 중·장년층을 우대하고 젊은이를 키우고 청소년, 영·유아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고 의료인이 대접받고 환자들도 의료혜택을 잘 받는 사회복지국가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교육개혁을 잘 시켜서 국민들의 사기진작을 시킬 것이다. 또한 이인제 의원은 정보통신, 생명공학을 발전시킬 것이며 창의성 있는 인재를 육성시켜 한국을 젊고 활기찬 나라로 만들 것이다. 더 나아가 이인제 후보는 한국을 번영과 남북통일로 이끄리라 확신한다.

필자는 구약학에 예언을 연구한 사람으로 젊은 대통령, 경제 대통령, 국방 대통령, 문화 대통령, 의료·교육 대통령, 과학·정보 대통령, 일꾼 대통령으로 어진 인술로 국민을 치료하는 인제(仁濟)의 성명처럼 나라를 고치는 대의(大醫)로서 "젊은 한국, 건강한 사회, 일자리를 만드는 대통령", 이인제 의원을 2002년 대통령으로 4700만 국민이 뽑아야 하고, 100% 당선되리라 확신한다. / 김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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