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준비하고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정치가 이렇게 국민의 불신을 받는 때에 정치인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래도 계면쩍은 일이다. 이런 유형의 글은 아무리 기교를 부려 본다 한들 핀잔받기 십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시작하는 용기를 갖는 것은 내가 이인제 고문에게 거는 어떤 신앙같은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인제 고문을 처음 만난 것은 25년 전 라면맛이 그렇게도 좋았던 시절이다. 이고문이나 나나 인생의 표류기적 상황에서 삶의 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조우하게 되었다. 내가 이고문을 처음 보고 언뜻 느낀 인상은 의연하고 통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 느낌은 서로 사귀면서 계속 확인되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빈털터리 상황이었는데도 도대체 기가 죽는 법이 없었다. 주머니가 비면 이래저래 어느정도 주눅이 들게 마련인데도 그에게서는 그런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얻어먹어도 당당하게 얻어먹는다. 이런 기질은 부친의 영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인제 지사는 부친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부친은 가난한 농부이면서도 세상사를 보는 시선이 확연하고 꿋꿋하게 사신 분으로 아들 이인제에게 그 기질을 넘겨준 것 같다.

나는 그가 그 당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한 후였고 군입대 문제 등으로 화급한 심정으로 책과 씨름해야 할 처지인데도 그는 호연지기적 표류를 계속하고 있었다. 냇가에서 천렵을 즐기고 산열매를 찾으러 산을 헤매기도 하고 소주를 마시며 천하를 논하고 바둑으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는 친구가 많았다. 그 친구의 유형도 매우 다양했다. 고향, 학교, 연령, 계층이 각각 다른 잡색군의 친구들이었다. 명문학교를 나온 소위 모범새의 일반적 체취를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다양한 친구들이 청년 이인제를 중심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졌고 한잔 술에 대통령 한번 해보라는 소리도 나왔다. 나는 은연중에 그의 리더쉽과 정치적 자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청년시절 표류를 군입대로 끝을 맺는다. 입대 3일전 그야말로 백수의 입장에서 신부에게 은반지 하나 채워주지 못하는 결혼식을 올리고 훈련소를 떠났다.

제대 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환웅이 점지한 이 땅의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법조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장년 이인제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점은 그가 항상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새로운 목표을 찾아 돛을 올린다.

새로운 향해을 떠나는 부둣가에서 그를 배웅해 왔던 나는 그가 지닌 또 다른 모습들을 보았다. 그의 가슴은 매우 여리고 섬세하며 항상 뜨거운 불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만큼 고독하다. 동시에 그는 민심의 밑바닥을 훑는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현학적인 정치적 사변의 허구를 뚫고 본질을 직시하는 통찰력이 있다. 이것은 내가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제 그가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그 새로운 장도를 배웅하면서 10여년 전의 한 장면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정치에 처음 입문해 안양 갑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첫 합동유세를 하던 날, 그는 아침 일찍 안양에 있는 충혼탑에 올라 묵념을 하고 충혼탑에 두 손을 대고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다. 나는 못본 적하면서 먼 허공을 응시했지만 그가 앞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다.  / 방영준



 

Posted by 뉴스박스
,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4)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기업 활력 40년 만에 최저”  오늘 아침 유력 경제 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어 4면에는 “시장경제 맞나”  “뭐가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경제 5단체장과 여당의 회동에서 벌어진 신경전을 묘사하고 있다. 또 얼마 전 이른바 386사람들 때문에 우리 경제가 안 된다는 주장을 폈던 이헌재 경제 부총리가 386출신 의원들이 주선한 자리에 참석하였으나 ‘싱거운 만남’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기사도 보인다.

  경제(經濟)란 무엇인가?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경영하여 백성을 잘 살게 하는 일이 곧 경제이다. 꼭 물질적 기초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모든 것이 경제의 목표이다. 오늘 우리 국민들의 생활이 황폐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경제가 잘못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 특히 현대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상호의존관계가 한없이 깊어만 간다. 단순하지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어떤 증상(症狀)이 나타나기 전에 문제를 미리 예측하고 대처해 나가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증상이 나타난 후 원인을 찾고 처방을 해나갈 때에는 이미 늦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얼마 전만 해도 경제위기를 언급하는 일조차 죄악시하였다. 어디가 아파도 증상을 호소하지 말고 곧 좋아진다는 낙관론에 안주하면 된다고 국민을 기만하였다. 아니 사상 유례가 없는 혹독한 불경기로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을 언제까지 속일 수 있다고 믿었는지,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구치소에 갇혀 있을 때 “애덤 스미스 구하기 (Saving Adam Smith)"라는 책을 읽고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이자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흥미진진한 구성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는 물론 정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로운 시장을 신봉하는 사람이지만, 경제활동에 있어서 덕목(Virtue)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는 철학자였다.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시장도 도덕적 긴장이 없다면 결코 정의로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는 나의 신념을 확인시켜 주었다.

보자! 우리 경제 시장에서 아주 비중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이른바 대선자금 수사를 통하여 기(氣)가 죽어 있었다. 그러다 검찰이 수사를 끝내면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그들이 한숨을 돌리게 하였다. 그 일이 있고 바로 얼마 뒤 청와대에서 그 총수들을 불러 모아 무슨 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끝난 후 각 총수들마다 앞으로 얼마를 투자하여 일자리를 몇 개 창출하겠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 모습을 TV와 신문을 통해 보면서 내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가운데 민간 경제의 최고 경영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한다는 것도 괴이한 일이려니와 그 자리에서 그 경영자들이 줄줄이 투자계획을 발표하다니! 애덤 스미스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가 아니라 무슨 계획경제를 하는 나라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개발경제시대 박정희 전 대통령도 민간 경제지도자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투자계획을 발표하도록 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법이다. 그 때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기업이 경제 논리로 투자를 하는 것인데 권력자 앞에서 약속했다고 실제로 투자를 하겠느냐, 다 쓸 데 없는 짓이다’라고 말하였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난 것처럼 이 땅의 기업인들은 지금도 정부를 향해 ‘시장경제가 맞느냐’고 질문하고, 정부측 사람들은 ‘기업이 투자 여력이 있으면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시장 메커니즘은 헛바퀴를 돌고 있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믿음이 없는 곳에 질서와 활력이 살아날 수 없다.

  며칠 전 종로2가 관철동의 커피 집에 간 일이 있다. 무더운 날씨인데도 거리에는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외양으로는 그런 대로 활력이 넘친다. “장사가 어떠세요?”  내가 물었다. “모두 다 관철동 생긴 이래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사장이 답변을 하는데 마침 동석하고 있던 건물의 주인이 “지금까지 이 건물에 세를 얻으려면 기다려야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세 든 사람이 나가겠다고는 하는데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이런 일은 지난 30년 동안 처음 있는 현상입니다.” 라며 한숨을 짓는다.  

해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가 65만명 정도이다. 이들 가운데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아 희망을 키우는 젊은이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으나 아무리 관대하게 계산해도 반을 넘지 못할 것이다. 벌써 몇 해째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가?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간다. 아마 놀고 있는 젊은이가 없는 가정이 없을 것이다. 젊은이가 몇 년간 놀게 되면 후일 경제가 좋아져 일자리가 생겨도 그 젊은이는 갈 곳이 없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의 절망이 커진다. 어디 젊은이뿐인가. 실업이 확대되고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장애인들이 실업의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해외이전, 폐업, 도산이 줄을 잇는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직면하는 것은 미리 꺼내 쓴 카드 빚을 갚지 못해 발생하는 신용파탄이다. 벌써 400만 명이 신용파탄에 이르렀는데 재취업의 길이 막혀 있으니 그 질곡에서 헤어날 길이 막막할 뿐이다. 그러니 소비수요는 점점 활력을 잃어 갈 수 밖에 없다. 요즘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참으로 잘못된 비유이다. 일본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주머니는 가득 차 있는데 그 주머니를 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주머니가 텅텅 비거나 아예 빚에 쪼들려 있어 소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불황을 몰고 오는 원인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것이다.

  1997년 우리 경제에 일대 위기가 폭발하였다. 사람들은 그 때 그 위기를 6. 25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고 말하였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을 회수하는 바람에 외환 쇼크가 일어난 것이다. 경제를 운용하는 관료들은 물론이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도 쇼크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위기의 실체를 경고하는 전문가도, 기관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무지몽매한 국가경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경제가 어떤 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정확히 진단하여 경고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저 위기다, 큰일 났다, 하는 소리만 무성하다. 이러다 어느 날 또 무슨 사태에 직면할지 마음이 어둡기만 하다.

  투자, 고용, 생산, 소득, 소비의 선순환(善循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고, 고용은 이루어지지 않아 실업은 확대되고, 생산과 소득은 감소되고, 소비는 따라서 위축되는 악순환(惡循環)이 계속되면,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 위기는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기는 97년 외환분야의 쇼크 정도가 아니고 경제의 뿌리가 썩어 나무 전체가 붕괴되는 무서운 재앙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외환위기 때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 위기를 극복했던 때와는 달리 위기극복의 방도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97년 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가 지불한 대가가 얼마인가. 하지만 새로이 터질지 모르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지불해야 할 대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국가와 같은 경제파탄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이 또한 적절한 비유가 되지 못한다. 그들 나라들은 광대한 국토를 갖고 있어 식량 걱정이 없다. 에너지자원도 넘치는 나라이다. 경제가 무너져도 불을 켜고,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가. 칼로리의 70%를 수입에 의존한다. 에너지의 100%를 달러를 주고 사와야 한다. 경제가 무너져 내리면 불을 켜고 먹고사는 문제가 터진다. 문명이 파괴되는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 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미리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병(病)을 고쳐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기업이 희망을 갖고 투자하고, 돈 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꿈을 좇아 사업을 벌이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땀 흘려 일하고 거기에서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마련토록 해주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금도 많이 걷히게 되고, 정부는 이 돈으로 복지, 교육, 연구개발, 전략분야 등 사회통합과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감당한다. 자, 이렇게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즉, 시장을 믿고 존중하면 될 일이다. 애덤 스미스까지 올라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정부의 간섭이나 무분별한 개입은 시장에 독(毒)이 될 뿐이다. 정부는 시장에 넓은 자유를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의 틀과 합리적인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관리하면 된다. 다만 스미스가 말한 덕목, 즉 시장에 도덕적 긴장이 유지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작 정부가 할 일은 경제주체들이 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우수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다. 교육, 환경, 문화, 복지는 물론 안보와 사회의 안전에 이르기까지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가 경쟁력 있는 시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 보도처럼 경제인들은 시장경제를 존중하라고 요구하고,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냐고 따지는 것을 보면, 이 간단한 해답이 힘을 얻을 날이 요원하지 않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참으로 큰일이다. 아니, 시장의 주인공들이 불평을 말하지 않을 때까지 정부의 간섭과 개입을 없애고 시장의 환경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면 될 일인데, 그들과 논쟁하고 싸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여,  그대들이 단 한 사람도 먹여 살릴 힘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돈과 재능 있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사업을 벌여야 고용, 생산, 소득, 소비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다는 이 간단한 진리에 눈을 감고 있는 한 아무도 현재 진행 중인 이 악순환을 막을 길이 없다. 그런데 국가 경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 여당은 요즘 온 국민을 몰고 과거로 가려 한다. 국정의 파트너인 야당마저 적당히 그 논쟁에 끼어들려 하고 있다. 한쪽은 친일(親日)의 그림자를 추적하고, 다른 한쪽은 친공(親共)의 그림자를 추적하겠다며 벼른다.

  그 작업이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될까. 백해무익(百害無益)이다. 필경 이 작업은 사회의 분열을 몰고 오며, 그 불안정은 경제에 독이 될 것이다. 경제가 파탄되고 민생이 수렁에 빠진 다음, 그 정쟁으로 어느 정파가 이익을 얻어 어디에 쓰려는가.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다.

   저 봉건시대, 당파싸움을 할 때 정적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했다는 역사를 배웠지만,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세기가 다 지난 과거를 파헤치겠다는 정권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없다. 외세에 빌붙어 반역한 자들을 조사하는 것은 처벌을 통해 청산할 경우에만 하는 일임을 왜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역사를 바로 잡아 쓰는 일이 어떻게 권력의 몫이란 말인가. 경제야 망가지건 말건 그들이 이 일을 벌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으리라 짐작한다.

  오, 해마다 찾아오는 태풍의 경우에도 그 진행 상황과 위력을 쉬지 않고 예보하며 미리 대비책을 강구하도록 하는데, 이 닥쳐오는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대하여는 정확한 예보를 하려는 노력도, 그 위기의 폭발을 막아내려는 긴장도 찾아보기 어려우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제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나 경제활동을 한다.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늘은 우리 국민을 도울 것이라 확신한다.

  얼마 전, 한 언론인이 나에게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해준 말이 떠오른다. “이제 우리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요.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고, 둘은 지혜를 모으는 일이며, 셋은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 국민 모두가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지혜를 모으며, 또 용기 있게 행동하면, 우리에게 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2004.   8.   20

이     인     제



Posted by 뉴스박스
,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3)

광복(光復)의 아침에 통일(統一)을 생각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은 지 꼭 59주년이 되는 아침이다. 나는 해방 이후에 태어났지만 나의 부모님은 일제 때 태어나 젊은 날을 그 혹독한 압제 밑에서 고생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 날의 기쁨을 체험으로 알지 못하나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간간이 전해들은 바 있어, 광복절 이날이 오면 진정 해방의 희열을 온 몸으로 느낀다.

하지만 광복의 기쁨은 잠시, 우리 민족은 해방의 공간에서 너무나 가혹한 시련에 직면한다. 2천년 가까이 계속된 봉건체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고, 치욕의 식민지배가 36년간 이어지다가, 미소 양대 세력에 의해 일본제국주의 세력이 붕괴되어 우리 민족은 하루아침에 해방을 맞게 된다. 한반도에는 일시적으로 지배세력도, 지배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상태가 도래(到來)한다. 외세에 의해 사라진 전(前) 근대(近代)로부터 다리도 없는 단절의 강을 건너 근대로 나아가도록 우리 민족이 내몰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진공(眞空)은 필연적으로 폭풍을 몰고 온다. 핵폭탄이 폭발하면 거대한 진공이 생기고, 그 진공을 메우기 위해 거대한 폭풍이 뒤따른다. 상당한 피해가 이 폭풍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역사의 법칙 또한 이 물리의 법칙과 다르지 않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이 맞게 되는 사상과 세력간의 투쟁과 혼란은 따라서 역사의 필연이었던 셈이다. 길게 보면 그 투쟁과 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무래도 통일이 되고 통합이 완결되어야만 끝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 다시 통일을 생각한다. 이 부질없는 투쟁과 혼란을 하루 빨리 종식(終熄)시키는 길은 통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 진행중인 통일의 전선(前線)은 안개 속에 갇혀 있다. 그 안개 속에 전선은 혼란에 빠져 있고, 그 혼란을 틈타 조국과 민족의 이익에 반역하는 무리들이 의도를 숨긴 채 역량을 키워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안개를 밀어내고 전선의 대오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통일에 대한 그릇된 믿음들이 통일의 전선에 안개를 드리우고 있다. 그러므로 그릇된 믿음들을 버리고 과학적이며 이치에 순응하는 믿음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 순간 안개는 사라지고 반역의 무리들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나쁜 버릇일수록 버리기 쉽지 않다. 믿음도 나쁜 것일수록 바꾸는데 거센 저항이 따른다. 그러나 잘못된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로, 통일은 민족 구성원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집권세력간의 협상으로 테이블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의 경우에 말이다. 그러면 테이블 위에서는 무엇을 협상한단 말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민족 구성원이 통일의 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조건을 놓고 부지런히 협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테이블 위에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북(北)이야 세습체제요, 전체주의체제이니 그렇다 치고, 남(南)에서는 집권기간이 길어야 5년이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인데도 같은 궤도에서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통일의 주체가 우리 민족이지 남과 북의 집권세력이 아니라는 전제(前提) 위에 서야한다. 북에는 크게 세 개의 실체가 있다. 하나는 북의 주민이며, 다른 하나는 북의 체제이고, 마지막은 그 체제를 움직이는 북의 지배계층이다. 이 세 개의 실체를 모두 부정하거나 적대하고 무관심한 것이 바로 냉전적 사고이다. 이 사고는 이제 버려야 한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실체 가운데 체제나 지배계층만 의식하고 이를 상대하여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태도는 순리가 아니며 위험하기 짝이 없다. 통일은 우리 민족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과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북의 당국과 대화하고 협상할 때 그 시작과 끝은 언제나 북의 주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최근 북이 트집잡고 있는 탈북 난민의 입국문제나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는 명쾌해진다. 북의 경제발전과 인권문제 개선을 위한 개방과 개혁을 어떻게 요구하고 관철해 나갈 것인지도 방향이 잡히게 될 것이다.

지금 통일정책을 이끄는 노 정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북의 주민을 최우선 가치에 놓고 생각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극비리에 금년 가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비밀리에 추진할 일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평양에 갔으니 북이 서울에 오면 될 일이다. 그리고 정상회담이 열리면, 두 정상은 오직 민족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면 된다. 남과 북의 주민들이 더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고, 하루 빨리 통일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조건을 성숙시켜주면 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통일은 테이블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이 이른바 ‘고려연방제’를 주장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남북 양 체제의 영구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남북의 완전한 통일은 먼 후대에게 맡기자고 그들 스스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남에서도 ‘고려연방제’ 주장에 대응하여 마치 남북 당국자들이 국가연합에 이르는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虛構)이다. 이미 남북 예멘이 허구임을 실증해 주지 않았던가. 노파심으로 말하지만, 비밀리에 추진하는 정상회담에서 정도(正道)를 벗어난 합의를 하게 된다면 중대한 사태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해 둔다.

둘째로, 통일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통일이 빠를수록 통합에 이르는 비용은 적게 들고, 통합을 통해 얻는 이익은 크다. 이것이 과학이다. 그런데 이 땅의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너무나 많은 국민들이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심리상태에서 통일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대내적으로는 분단 위에서만 자기의 기득권을 누릴 수 있다는 냉전적 사고, 그리고 사회주의 몰락 과정에서 북의 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좌파적 사고가 그 의식의 원천이다. 대외적으로는 우리의 통일을 두려워하고 반대하는 일본의 우파세력이 보이지 않게 조직적으로 빠른 통일이 한국을 고통에 빠뜨릴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근거를 만들어 왔다. 뒤에 말하겠지만 전혀 비과학적인 이른바 ‘통일비용’ 이론을 만들어 한국 언론을 통해 유포시켜 온 세력이 일본이다.

앞서 말한 대로 통일은 민족 구성원의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독일의 경우처럼 언제 어떤 형태로 올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이런 통일의 순간이 빨리 올 때, 먼저 수습하기 어려운 대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독일은 1989년 정말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의 순간을 맞았다. 하루에도 많을 때는 수만 명씩 동독의 젊은이들이 서독으로 일자리를 찾아 내려왔다. 그러나 극복하지 못할 혼란은 없었다. 통일을 이룬지 15년이 지나고 있지만, 독일의 통합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다. 통일 당시 5분의 1에 불과하던 동독 지역 주민들의 소득은 이제 서독 지역 주민들 소득의 90%에 이르고 있다.

심리적 갈등을 말하는 이도 있으나, 생각해 보자! 이 문제는 언제이고 통일이 된 후 한 세대가 지나야 완전히 극복되는 문제이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 빨리 해결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과도한 통일비용이 드는데 우리 경제가 이것을 감당할 수 없고, 또 북의 못사는 주민들을 먹여 살리려면 우리의 국민소득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그러니 북이 어느 정도 잘사는 단계에 가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통일이 되어 남과 북의 여러 분야를 통합하다 보면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호주머니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은 북의 주민에 대한 사회보장을 위한 비용 정도이다. 이것은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통일 당시 서독은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운용하면서 동서독간의 사회보장 통합을 1:1로 강행하였다. 이를 위하여 서독 주민들은 소득세를 1% 더 부담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통합 과정에서 서독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단 1마르크도 감소한 일이 없다. 우리나라가 통일되더라도 남한 주민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머지 통일 정부가 낙후된 북한 지역에 도로, 항만, 공항, 학교, 발전소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데 드는 비용은 엄격히 말해 ‘비용’이라기보다 ‘투자’이다. 따라서 꼭 세금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으며, 그 투자는 더 큰 경제발전으로 직결되기 마련이다. 1998년으로 기억된다. 프레스쎈터에서 개최된 통일 관련 국제 심포지움에 참석한 일이 있다. 주제는 “왜 한국은 통일이 안 되는가”였다. 그때 나는 당시 주한 독일 대사 클라우스 폴러스(Klaus Vollers)의 기조연설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왜 한국인들이 통일비용을 겁내는지 모르겠다며 조목조목 통일비용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아, 어쩌면 평소 나의 생각과 저리도 똑같단 밀인가! 그런데 불행히도 그 자리에 참석한 저명한 인사들은 그의 주장에 별로 공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끝으로 국제사회,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우리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고, 또 그럴 권리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일본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우리의 통일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협력해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2001년의 일로 기억된다.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해이다. 그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서울에 와서 연설하며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나의 남은 생애에서 한국의 통일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의 재임 중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우리와는 달리 독일 통일은 미, 영, 불, 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반대하는 대처 영국 총리,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머뭇거리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설득해 독일 통일을 찬성하도록 만든 인물이 바로 부시 대통령이었다.

또 리펑(李鵬) 중국 전인대 상임위원장은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하나의 민족이 인위적으로 분단되어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한반도의 통일은 한민족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한편,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르쿠츠크에서 열린 일본 모리(森) 수상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통일된 한반도는 강대한 국가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한 것으로 후일 보도되었다.

통일은 곧 우리가 잘사는 번영의 길이다. 비용의 허구성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통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이익을 가져다준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곤경도 통일 상황이 온다고 가정하면 일거에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폭발적인 투자수요가 창출되고, 이것이 막혀버린 경제의 순환을 되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분단을 관리하는데 얼마나 많은 소모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가. 이것이 일시에 사라지면 그만큼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통일은 우리 민족을 위하여 하는 것이지 무슨 권력자나 당(黨)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보다 고양된 제도와 체제로 나아가는 것이 곧 통일이다. 그러므로 통일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낡아빠진 혁명의 이념이나, 모두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체제나, 사회를 분열과 대립으로 몰고 가는 계급적 사고로는 진정한 통일을 이루어낼 수 없다. 이러한 퇴영적 이념, 체제, 사고는 아직도 한반도에서 힘을 잃는 것이 아니라 기승을 부린다. 바로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새로운 문명의 흐름을 수용하는 고양된 체제를 향하여 통일의 결단을 내린다는 믿음을 가질 때, 통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 민족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 민족의 통일이 주변 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의 이익에도 기여하며 따라서 국제사회로부터 협력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통일의 전선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안개를 몰아내고 마침내 통일을 성취할 수 있다.

오늘 광복의 아침, 일제 식민지배가 만들어 낸 분단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우리 조국을 생각한다. 전후 4개의 분단국가 중 유일하게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를 고뇌한다.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진정한 광복의 아침은 밝아 올 것이다.



2004. 8. 15

이 인 제


 

Posted by 뉴스박스
,
그러면서 할머니는 전쟁 때의 이야기며, 중견 탤런트인 강부자씨가 옛날 함께 살았는데 얼마 전 만났던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들려 주셨다.

“할머님, 130세까지 건강하게 살으셔서 우리들의 자랑이 되어 주세요”

내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할머니는 뜻밖에도 “글세 130을 더 살을지 못 살을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사는데까지 사는거지” 이렇게 대답을 하신다.

순간 나를 비롯하여 우리 일행들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노인 어른께 오래 오래 살으시라고 덕담을 하면 대개는 지금까지도 오래 살았는데 더 오래 살면 무엇을 하느냐, 빨리 죽어야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이 할머님은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며느님께도 많은 것을 여쭈어 보았다. 모두 4남 1녀를 두었는데 결혼한 후 각자 나가 살고 있고 이렇게 할머니를 모시고 구멍가게를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유옥녀라며 웃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송옥례라고 한다. 할머니의 이름이 “옥녀”라! 옥녀봉 밑의 옥녀! 나는 문득 그 어떤 숙명의 끈이 이 두 여인과 옥녀봉의 두 느티나무 사이에 단단히 묶여있다는 영감에 사로잡혔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옥황상제의 딸 옥녀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다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올라오라는 부름을 받고 올라가게 되었는데, 급한 나머지 그만 앞가슴을 내놓고 옥황상제 앞에 나서게 되었다. 이를 본 상제께서 화가 난 나머지 거울 하나만을 주며 땅에 내려가 살도록 명령을 내렸고, 옥녀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울다 이곳에서 죽게 되었는데 그녀가 가지고 있던 거울은 바위로 변하여 옥녀봉 바로 밑의 용영대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두 여인이 그 쌓이는 연륜, 불변의 효심으로 분명 먼 훗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나갈 전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고부간의 사랑과 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 아름다운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두 여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다시 옥녀봉 정상에 오른다. 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낀다. 금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 평원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이렇게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은 이어져 가고 있구나!

옥녀봉을 내려와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상념에 잠겼다. 나의 소년 시절, 잠시도 쉬지 않고 가족을 위해 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봄이면 밀짚모자의 재료가 되는 밀대를 따가지고 내다 팔았는데 밀짚모자 공장이 강경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짠 밀대를 머리에 가득 이고 이 강경까지 나오시곤 하셨다.

연산 집에서 강경까지는 줄잡아 12km가 넘는다. 언제나 걸어다니셨으니 왕복 24km이다.
밀대를 판 돈으로 강경의 명물인 황새기 젓갈을 사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 대지와 같은 여인의 위대함이여!


2003. 3. 26




 

Posted by 뉴스박스
,
봄을 재촉하는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대지 깊은 곳에서 성장을 준비해 온 생명들에게 은총처럼 스며들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라. 온 세상을 푸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주일 동안 지역구 주민들을 찾아뵙고 돌아와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창문을 연다. 2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이다. 이미 겨울의 냉기는 사라지고 봄의 온기가 온 몸에 느껴진다. 하지만 멀리 남한산의 정상에는 하얀 눈이 보인다. 비에 젖은 대지와 눈 덮인 산의 정상이 참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내와 나는 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나는 자동차 운전을 좋아하여 주말이면 가급적 직접 핸들을 잡는다. 옆에 앉은 아내와 함께 두 딸이 어렸을 때 뒷좌석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나서면 언제나 잠을 자던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잠긴다. 우리는 그 때 그 길을 따라 가고 있다. 성남에서 남한산성을 넘어 광주로 나간다. 광주시내로 들어가기 직전에 좌로 방향을 틀면 팔당호와 천진암으로 가는 길이다. 특별히 목적지를 정한 것도 없다. 우리는 한국 천주교가 100년의 계획으로 세우고 있는 대성당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문득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기지사로 일하면서 이곳을 두 차례 방문하였는데, 그 때 우리나라도 이제 100년 단위의 사업을 추진할 정도로 성숙하고 큰 나라가 되었구나 하면서 자부심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비가 내린 탓인지 이 날에는 참배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100년의 역사라, 아직도 80년 이상이 남아 있다. 5년여만에 다시 찾아 왔지만 그리 큰 진전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 1m인 화강석 24만 개를 사용한다고 하니 과연 얼마나 웅장한 건축물이 될 것인가. 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필적할 수 있을까. 나는 어린애 같은 호기심에 빠진다. 아, 80년 후면 우리 부부는 물론 내 두 딸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오는데 군데군데 음식점 간판이 보인다. 점심때가 되어서인지 더욱 또렷이 보인다. 그런데 그 간판들 중에 “돼지 고추장 숫불구이”라는 간판이 많이 있다.             나는 유난히 돼지고기를 고추장에 발라 구운 음식을 좋아한다. 아내도 가끔 이 요리를 하여준다. 나의 형수님들은 옛날 학창시절 내가 형님 댁에 간다고 하면 아예 이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셨다.                                    

시내에서는 이런 음식을 파는 집을 구경하기 어려웠는데 이곳에서는 이 요리가 인기 있는 메뉴임이 분명한 것 같다. 배도 고프고 호기심도 동하여 전통이 있어 보이는 한 집을 찾아 들었다. 1인분에 11,000원 하는 돼지고기 2인분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한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름답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여성이다. 내가 지사로 일할 때부터 너무 잘 알고 있다며 반가와 한다.

내가 말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손님이 많을 줄 알았는데 적군요.”
“예, 오늘 날씨가 흐려서 야외로 많이 나오지 않으셨나 봐요. 요즘 경기가 너무 나빠요.”
주인 아주머니는 아주 걱정 어린 표정이다.             나는 다시 물었다. “매상이 과거 이맘때쯤보다 얼마나 줄었나요?” “매상은 한 3분의 1정도 줄었는데 그것도 문제지만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답니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근심과 걱정으로 힘이 빠지고 있었다. 아니, 매상이 뚝 떨어지는 일보다 더 걱정되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긴장하며 주인의 설명을 들었다. 요즘엔 도대체 일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한 달에 100만원을 주었는데 사람이 없어 120만원으로 올렸어도 일 할 아주머니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모두 내보내면 이 음식점도 문을 닫아야 할 실정이란다.

“아주머니들은 다 어디로 가셨나요?” 나는 다시 물었다. “잘 모르지만 무슨 노래방에 가서 일을 하면 힘도 들지 않고 수입이 많아서 이렇게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답니다.” 주인의 대답을 들으며 그것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지 내 마음도 무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논산에서 만난 보험설계사 아주머니 한 분이 “이제 우리나라는 망했습니다” 라고 거침없이 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분의 설명은 농촌의 노인 어른들까지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들고 나와 로또 복권을 사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 있는 나라가 어떻게 망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땀흘려 일하며 보람을 느끼고, 그렇게 하여 번 소중한 돈으로 알뜰하게 살아가는 정신이 뿌리 채 뽑혀 나가고 있다. 아, 어찌하다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왔는가. 국가를 경영해 보겠다고 나선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 식당주인 아주머니와 보험설계사 아주머니가 이렇게 절규하는데 막상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참 숯에서 타오르는 파란 불꽃이 향기롭다. 거기에 익혀 먹는 고추장을 바른 빨간 돼지고기가 더없이 맛있다. 음식이 참으로 정갈하고 정성이 담겨 있다.

아내와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인 아주머니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도 나누었다. 아내는 옛날 숯불로 밥을 짓던 생각을 했는지 앞으로는 집에서도 가끔씩 숯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아주머니가 떠나려는 우리에게 숯을 한 상자 들고 달려온다.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숯 값을 아주머니의 손에 쥐어드리고 그 집을 떠날 즈음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늦은 점심을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2003. 2. 25



 

Posted by 뉴스박스
,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2)

내우(內憂)는 외환(外患)을 부른다


   중국이 역사 침략의 야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고대국가 고구려를 자기 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우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의 전신(前身)인 고조선과 동예, 옥저 등 고대국가는 어찌되는 것인가. 또 그 후신(後身)인 발해는 어찌되는 것인가. 우리의 고대사를 송두리째 다 말아 먹자는 속셈이 아닌가. 나는 일찍이 영토의 침략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역사의 침략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작년부터인가, 언론을 통해 중국의 이 역사침략 기도가 연일 폭로되고 있는데도 이 정권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응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반미 감정을 확산시키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제1의 파트너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 그들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어디 중국뿐인가. 일본도 최근 국수주의적 우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더욱 강하게 치고 나온다. 한일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기자가 무엄하게도 한국의 대통령에게 독도 영유권 문제를 질문한다. 일본기자가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지칭하며 질문할 때, 우리 대통령이 대한민국 영토에 독도는 있으나 죽도는 없다고 딱 잘라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발 더 나아가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에 시비를 거는 일은 국제사회의 정의에도 반하며 한일 양국의 이익을 해칠 뿐이다, 만일 우리가 세종대왕시대 복속시킨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면 일본은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라고 반박했다면 또 얼마나 명쾌했을까. 사실 대마도는 이종무가 1419년 정벌하여 우리 영토에 복속시킨 후 우리나라가 그 영유권을 포기한 일이 없다.

   그런데 이 나라 대통령은 그 질문을 받고 엉겁결에 다케시마 운운하며 얼버무리고 말았으니 국민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현대에는 군사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 또 굳이 전쟁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거나 국가이익을 추구하지 않아도 다른 수단으로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시장은 개방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상호의존관계는 깊어만 간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나라는 무역이나 경제협력 등 경제적 수단만 가지고도 다른 나라를 굴복시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중국이 저같이 무도한 역사침략을 감행하고, 일본이 뻔뻔스럽게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보무도 당당하게 우리를 깔보며 총성 없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그들이 우월한 지위를 확보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격하면 승리가 보장되는 유리한 시점이라고 믿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또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가 내우(內憂)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극심한 분열과 혼란에 빠져있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또 동북아시아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켜줄 힘의 균형추는 뭐니 뭐니 해도 굳건한 한미동맹이다. 그 동맹은 힘을 잃고 와해(瓦解)를 향해 한걸음씩 가고 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미국과의 동맹이 약화된 그 힘의 공백을 중국이나 일본이 우호적으로 메워줄 것으로 이 정권이 판단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고래(古來)로 언제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의 자주나 독립, 또 결정적 이해를 뒷받침해 준 일이 있었던가. 힘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그들은 끝없이 우리를 침략하지 않았던가.

   보자.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이 극심한 분열과 혼란은 누구의 책임인가. 또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우리나라를 고립시킨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정권이다. 이 정권은 그저 국정의 최고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 그 이상으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들은 내우를 일으켰고, 그 내우는 외환(外患)을 불러 온 것이다. 총성은 없다지만 우리보다 몇 배나 규모가 큰 인구, 국토 그리고 경제력을 가진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역사와 영토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이보다 더 심각한 외환이 어디 있단 말인가. 거기에다 우리 편을 들어줄 동맹도 사라져가고 있으니, 이 도전을 우리 힘만으로 감당해야 할 판이다.  

   과연 우리에게 어떤 수단이 있을까. 우리가 그들 나라와의 관계를 험악하게 몰고 가면 결국 나라 사이의 경제관계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서로 간에 경제보복이 시작되면 그들이 받을 타격에 비해 우리가 받을 타격은 파멸적인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이 이 사실을 읽지 않고 이런 엄청난 도발을 감행했을 리 없으리라. 그들은 때를 기다렸고, 우리는 멍청하게도 틈을 내준 것이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이 도전을 극복해야 하나. 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방도는 무엇인가. 나는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왜 중국은 저렇게 이치에도 닿지 않는 황당무계한 짓을 벌이는 것일까. 우선 이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은 1992년 우리나라와의 수교 이전부터 수교 후 급속히 성장할지도 모르는 옛 만주(지금의 동북3성)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민족의식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용의주도하게 대비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선족자치주에 한족 출신 인구를 늘려 60%이던 조선족의 인구비율을 40% 이하로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그것도 안심이 되지 않아 착수한 것이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이다. 중국의 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을 체계적으로 다시 연구한다는 것이다. 2001년 기획되고, 2002. 2. 18 중앙정부의 승인을 얻어 본격 착수되었다. 물론 결론을 정해놓고 벌이는 공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은 옛 만주 지역에서 우리 민족의식이 팽창하여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 두려움이 역사침략이라는 선제공격을 가져왔다고 나는 믿는다. 설마 중국이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역사적,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자. 중국의 주류민족은 한족(漢族)이다. 한족 이외에 55개 소수민족이 있다고 하지만 그 수를 다 합쳐도 미미하다. 특히 티베트를 제외하면 잠재적으로도 민족문제를 일으킬만한 소수민족이 없는 실정이다. 모두 다 중국에 동화(同化)된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 민족이 배후에서 독립 국가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몽골과 한국을 제외하면 없는 형편이다. 몽골은 현실적으로 가까운 장래에 다시 위협적 존재가 되기 어려운 나라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분단의 악조건 속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그 기상 또한 호방한 나라이다. 수교가 되고 왕래가 많아지면, 특히 한국이 통일되어 더 강대한 나라가 되면 만주지역 조선족들의 민족의식이 폭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그들은 판단했을 것이다.

   중국의 주류민족인 한족은 북방 민족에 대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중국의 고대로부터 북방 기마민족, 유목민족의 침략 때문에 그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만리장성을 쌓았겠는가. 또 그 환경 좋은 도읍을 다 버리고 척박한 북경을 수도로 정했겠는가. 모두 다 그 두려움 때문이다. 중국 역사 가운데 거란족이 세운 ‘요(遼)’, 여진족이 세운 ‘금(金)’ 나라를  빼고도 북방 소수 민족이 전 중국을 지배한 통일왕조만 하더라도 몽골족의 ‘원(元)’과 여진족의 ‘청(淸)’ 나라가 있다. 수백년 간 중국 대륙을 지배한 몽골족과 여진족은 당시 인구수로 볼 때 한족의 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소수 민족이었다. 이 억센 북방의 소수 민족에게만 한족은 긴 세월 동안 지배를 받은 것이다. 그러니 두려움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지금 중국이 그 역사를 말살하려는 고구려는 당연히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이다. 그 고구려의 위력은 어떠하였던가. 고구려와의 충돌과정에서 통일 왕조 ‘수(隋)’가 멸망하고, 그 뒤를 이은 ‘당(唐)’이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우리는 먼저 중국의 이 두려움을 없애주어야 한다. 요즘 일부 책임있는 사람들이 고대사의 연구와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방도인양 말한다. 물론 그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싸움이 역사 이론의 우열로 판가름 나겠는가. 중국이 이론의 우위로 싸움을 걸어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중국과의 수교를 전후하여 지금까지 많은 우리 국민들이 만주지역을 방문하여 이곳이 우리 땅이라는 메시지를 얼마나 남발했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 총칼로 영토를 넓힐 필요가 없다. 그 나라의 경제력과 문화의 영향력을 통하여 국민들이 더 넓은 영역에서 더 많은 기회를 향유할 수 있으면 되는 시대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각에서 중국의 불필요한 두려움, 그리고 그로부터 증폭되는 역사침략의 확대를 막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민간 차원에서, 미래의 한중관계가 어떤 경우에도 영토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되며, 또 한국은 그럴 의지도, 이유도 없다는 것을 설파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내우(內憂)를 해소하여 국민적 단합을 이루고, 동맹을 강화하여 힘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우리가 튼튼하면 상대가 우리를 깔보고 덤비지 못한다. 우리가 분열되고 편들어줄 곳이 없으면 언제 또 어떤 침략이 일어날지 모른다. 내우를 해소하고, 동맹을 강화하는 문제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그 출발이다. 여기서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잊어서는 안된다. 바로 통일이다. 이제 통일을 더 이상 두려워해서도 안되며, 지체해서도 안된다. 도대체 독일이 통일을 이룬지 얼마가 지났는가. 15년이 지나도록 마지막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통탄할 일이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고 동북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면, 중국도 일본도 이렇게 우리를 능멸하지는 못할 것이다. 분단 상황으로 소진되는 우리 민족의 에너지를 하나로 융합, 폭발적 힘을 분출시켜 우리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근원적 길은 통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은 벌어졌다. 냉철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다. 허둥대거나 좌절해서는 안되며, 특히 상대의 강한 곳에서 우리의 약점을 노출시키며 확전해서도 안된다. 싸움을 언제 끝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의 도발로 우리 국민이 정신적 상처를 받고 기(氣)가 꺾이는 것이 아니라, 더 용기 있게 우리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단합을 이루며, 역량을 모아 통일을 성취하는 계기를 만들면, 결국 우리는 이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일본에 대하여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단합과 통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가 바로 그들이다. 통일을 이룰 때 그들의 도발 의지는 꺾이게 된다.

   보라, 우리에게 밀려드는 저 높은 파도를. 그러나 타고 넘으면 그 뿐이다. 사실 도둑질해간다고 없어질 역사인가. 우리 민족의 영혼속에 살아 숨쉬는 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대륙을 호령하던 기마민족인 한민족(韓民族)! 그 웅혼(雄渾)의 기상을 드높여 미래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가면 될 일이다.

 

2004.   8.   10

이   인   제




 

Posted by 뉴스박스
,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1)

헌법의 두 기둥, 정통성과 정체성


   요즘 여야 간에 국가 정체성(正體性, identity) 논쟁이 한창이다. 한편 며칠 전부터 주요 일간지에 '노무현 정권 규탄대회' 광고가 연일 실리고 있다. 일부 우파단체는 이미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정체성수호를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는 결론이 다 난 정체성 논쟁이 한가롭게만 보일지 모른다. 하여튼 오늘 한나라당은 '헌법과 대한민국 정체성 수호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정권이 출범한지 1년 반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문제로 여야가 정쟁을 일삼고 있으니 경제난과 사회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혼란스럽고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정권이 나라의 정체성을 허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는 한나라당의 무지와 게으름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고, 사실이 아니라면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데 공연히 생트집을 잡고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다른 쟁점이라면 몰라도 이 문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국가의 기본가치인 정체성 문제를 두고 어떤 타협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정당간의 타협이란 것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당은 이제 논쟁을 그만 하자고 하고, 한나라당도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모습이다.

   나는 이미 2002년 경선 당시부터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투쟁해 왔다.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으며, 결국 나라의 안보와 경제가 미증유의 재앙에 직면하리라는 점을 쉬지 않고 말해 왔다. 그 때 야당은 물론 이 땅의 지식인들은 침묵 내지 방관으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이 정권 출범 1년 반이 지나고 경제와 안보의 지형이 악화 일로(惡化 一路)를 걷고 있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민간 일선은 행동에 나서고 야당은 문제 제기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할 때'라는 말이 있다. 이왕 문제가 제기되었으니 끝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미루자는 말이 아니다. 할 일은 하면서 이 국가 근본의 문제를 풀어내야만 한다. 나라의 기둥인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고 사회의 안정이나 경제의 번영, 그리고 평화적 통일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 개인에게도 뚜렷한 자기 정체성이 요구되는데, 하물며 한 나라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정신적 혼돈(混沌)과 우왕좌왕하는 자세로 나아간다면, 그 나라의 앞날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상상하기도 끔찍한 비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최근 진행되는 논쟁은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표피와 감성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헌법의 수호를 책임지고 있는 당사자 쪽에서는 철저한 무시와 기만 그리고 위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웬 정체성 타령이냐, 우리 헌법이 곧 내 사상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하지 않았느냐" 대략 이런 대응을 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국면을 호도하며 시간을 벌려고 한다.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대의민주제를 근본가치로 한다. 그런데 이 정권의 권력자가 의회의 권능을 부인한 일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모아 놓고 시민혁명을 선동한 것은 또 무엇인가.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하면서 헌법위반 사실을 준엄하게 꾸짖었는데도 단 한마디 사과가 없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수 없이 했다고 하는데 나는 단 한차례도 들어 본 일이 없다. 반대로 대중민주주의를 운위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상대주의적 세계관과 방어적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개념이다. 즉, 모든 사람이 자기의 세계관과 가치를 향유할 자유를 가지지만, 다만 그러한 자유를 부정하는 사상, 예컨대 계급독재의 공산주의 사상이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사상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이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기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박해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용납될 수 있는가, 없는가. 수도이전이라는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하여 재갈을 물리려는 행동은 또 무엇인가. 갑자기 튀어나온 공산당 허용 발언은 또 무엇인가.

   나는 국민의 위대한 힘을 믿는 사람이다. 한 두 번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불의(不義)한 권력은 국민의 냉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正統性, legitimacy)은 국가관과 역사관의 산물이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한민족의 법통(法統)을 잇는 정통국가임을 선언한다. 1945 년 해방 이후 냉전의 격화로 인해 당연히 통일국가가 건설되었어야 할 한반도에 분단상황이 고착된다. 이 분단 때문에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통해 건국하였으나 대한민국은 민족국가의 대(代)를 잇는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이며, 북한은 우리 민족 내부에서는 국가일 수 없고 단지 평화통일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서 협력해야 할 대상에 불과한 존재이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다.

   이에 반하여 북한은 정반대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식민지라는 것이 그들의 공식 입장이다. 그래서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남한을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일으킨 6. 25도 그래서 인민해방전쟁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충성하는 모든 국민은 따라서 북한의 이러한 국가관과 역사관을 부정해야 한다.

   여기에 남북한을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부르스 커밍스(Bruce Cumings, 시카고 대학 교수)의 수정주의 사관이 그 대표이다. 그러한 관점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가능할지 모르나 냉엄한 현실정치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굳이 말한다면 한반도의 분단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에서나, 또 먼 훗날의 역사적 시점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이론에 불과하다. 그런데 분명 오늘 우리 사회에는 우리 헌법이 말하는 국가관과 역사관을 부정하거나 벗어난 관점에서 남과 북을 이해하고, 분단의 역사를 해석하려는 사람과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이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러 활동한다면 오늘의 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까닭이 없다. 그들이 사회의 운동 전선에, 또 권력의 전면에 전개되고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여 반세기가 넘게 헌법을 떠받쳐 온 정통성과 정체성의 두 기둥을 뿌리 채 뽑으려 하는 것이다.

   간첩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이 어떻게 우연일 수 있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반미선동은 그 뿌리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외세에 빌붙어 동족을 핍박한 반역행위는 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권력이 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한 전제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단지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 국가권력이 나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봉건 전제군주도 선대(先代)의 역사를 쓰는 사관(史官)의 사초(史草)조차 열람할 수 없었다. 오늘 집권세력이 친일 반역행위를 조사하겠다는 것은 처벌을 통한 청산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있음이 명백하다.  자기들의 권력으로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것인데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서 역사가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이 나라를 건국하고 발전시켜 온 주도세력을 친일 잔재로 규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허물려 한다. 나는 추호도 친일반역행위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이치에 맞지 않는 일에 찬성할 수 없을 뿐이다.

   보라!  이렇게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이 정체성 논란의 바람은 그저 지나가는 일과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어떻게 결론지어지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리게 되어 있다. 뿌리는 깊고 상황은 심각하다. 갈 길은 멀고 험난한데 엉뚱하게도 이 근본의 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는 법이다. '푸른 물결에 띄우는 편지'에 썼던 기억이 난다. 어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 헌법으로 돌아가면 된다. 몇 몇 사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대다수가 헌법으로 돌아가면 헌법의 배신자들이 서 있을 땅은 없게 된다. 정통성과 정체성의 문제는 말끔히 해결될 것이다.  

   헌법으로 돌아가자! 그 속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신과 가치가 함축되어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경제 번영의 길, 평화 통일의 길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터무니없는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헌법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말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서둘러야 한다. 그보다 더 높은 가치는 없다. 그 깃발이 찢기면 우리가 염원하는 번영과 통일의 길도 막히게 된다.

   헌법으로 돌아가면 된다.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우리 가슴속에 채우자. 그러면 헌법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

2004.  8.  5

이   인   제



 

Posted by 뉴스박스
,

폭풍의 바다와 싸우다(0)

나는 무엇을, 왜, 쓰려하는가?

   나는 2004. 5. 17 체포영장에 의해 검찰에 강제 연행되고, 이틀 후인 5. 19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나의 생애에서 대학시절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운동에 헌신하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유치장에 갇혀보고, 당시 비밀경찰인 중앙정보부에 두 번이나 끌려가 일주일씩 감금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난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정식 사법절차에 의해 구치소에 수감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짧지만 낯선 수감생활에서 나는 날로 새로워지는 나를 발견하며 운명의 신께 감사를 드렸다. 1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서 나는 더 큰 자유의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고, 멀리만 느껴지던 하늘의 뜻(天心)과 국민의 마음(民心)이 내 가슴의 용광로에 하나로 용해되어 타오르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경이로운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나와 꿈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열정, 바로 그것이 나에게 불굴의 용기를 가져다 주었고, 그 용기가 나의 길지 않은 생애를 깊이 있게 성찰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편견, 독선, 교만 그리고 나태함으로 얼룩진 지난 날의 내 삶에 나의 눈물을 쏟아 부어 때를 씻어낸다. 맑아진 나의 눈은 더 넓고 더 멀리 세계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열린 나의 마음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모든 변화의 중심을 이루는 민심(民心)의 열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내 내면의 세계에서 그토록 소중하게 가꿔온 ‘자유의지’가 이제 날개를 달고 훨훨 창공을 날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 축복은 전적으로 ‘꿈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준 선물이다. 나는 그 고마움의 표현으로 어린 시절 공부하던 앉은뱅이 책상을 닮은 밥상 위에서 편지를 썼다. <푸른 물결에 띄우는 편지>를 쓰며 나는 언제나 벅찬 행복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나를 찾아와 격려하여 주신 분들, 정성스럽게 눈물겨운 편지를 써 보내주신 분들, 쉬지 않고 보내온 전자우편(E-mail)에 사랑과 믿음을 듬뿍 담아주신 분들, 내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198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난과 영광을 함께 해온 동지들, 그리고 멀리서 가까이서 시대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숨쉬는 모든 분들에게 나의 작은 마음을 담아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다. 그러나 이 편지도 7. 21 내가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끝이 났다. 17번째 편지를 쓰다가 내 좁은 방의 문이 열린 것이다. 내 방의 비둘기 부부가 두 번째 알을 품은지 18일 만에 두 알 중 하나의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나온 날, 나는 정든 비둘기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나는 중단된 17번째 마지막 편지를 나의 서재에서 썼다. 편지는 끝났지만 우리들이 함께 꾸는 꿈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게 아니라 더 크고 아름답게, 더 높고  뜨겁게 피어오른다.  

    보라!  바다는 폭풍우에 휩싸여 있다. 폭풍의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꿈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나는 그 싸움의 전선(前線)에 서서 헌신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며 나의 마땅한 도리이다. 나는 일찍이 뱃사람으로부터 바다의 지혜를 들은 일이 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만났을 때, 살기 위해 뱃머리를 육지로 향하고 도망치면 반드시 높은 파도에 뒤집히거나 암초에 좌초하여 생명을 잃게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사의 각오로 뱃머리를 태풍이 불어오는 쪽으로 향하고 출력을 최대한 높여 바람과 파도를 치고 나가면 살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말했던가. 필사즉생(必死卽生)이요, 필생즉사(必生卽死)라. 바다에도 그 진리는 그대로 통용되는 모양이다.  

    2004년 오늘, 우리 사회는 폭풍에 휩싸인 바다와 같다. 치세(治世)인가, 난세(亂世)인가로 묻는다면 열의 여덟은 서슴없이 난세라고 말하리라. 그러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바다의 폭풍도 따지고 보면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원인이 있고 과정이 있으며 결국 소멸의 길을 밟게 된다.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이 회오리바람이 모든 것을 부숴 버릴 것만 같은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힘을 잃어간다. 우리와 우리의 선대들이 피땀 흘려 이루어 놓은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더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앞날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상황에 직면할 줄을 몰랐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오늘의 상황이 반드시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쉬지 않고 말해왔다. 역사의 진행에 가정(假定)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미 닥친 폭풍이 우리의 냉엄한 현실일 뿐이다. 이제 싸워 극복하는 길밖에 남은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감싸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이겨내는 일이 우선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폭풍 또한 사회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원인이 있고 예상되는 행로가 있으며 일정한 조건이 성취되면 소멸하게 된다.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불안과 공포심은 사라진다. 지혜와 용기로 싸워 이기는 일만 남게 된다.


   나는 앞으로 ‘꿈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미쳐 날뛰는 파도와 싸우고 거친 바람을 이겨 나가는 문제에 관하여 말하려 한다. 그리고 그 폭풍의 바다 너머에 펼쳐질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희망과 번영 그리고 통일의 바다를 꿈꾸려 한다.

   오, 꿈꾸는 자에게 축복이 있을 진 저!  오, 지혜와 용기로 싸우는 자에게 신의 가호가 있을 진 저!

2004.   8.   1

이   인   제




Posted by 뉴스박스
,
그들의 개혁을 말한다.
-- 퇴보주의와의 전쟁(1)--


한국 정치의 최대 유행어는 “개혁”이다. 어느 시대이든 개혁이 운위되지 않은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 말이 홍수를 이룬 시대가 있었을까.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권의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변화와 개혁”이었다. 나는 그 정권의 초대 노동부 장관으로서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곧 이어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로서 지방경영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데 헌신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8년 국가부도의 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권에게도 임기 내내 개혁은 숙명적인 과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3년 출범한 이 정권에서 부르짖는 개혁의 구호 속에서는 과거 정권 시절의 그 것 속에 담겨있던 최소한의 진실성, 절박성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남발하여 혼란스럽게 느껴지고, 너무 시끄러워 오히려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개혁(reform)은 혁명(revolution)과 다르다.

낡은 집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자. 낡은 부분을 고쳐 모두 다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을 때, 그 구성원들의 동의와 참여 속에 집을 고친다면, 우리는 이것을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우월한 힘을 갖고 있는 세력이 자기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살면서 언제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 힘없는 사람들을 억누르며 집의 수리를 거부할 때, 억눌린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억누르는 자들을 타도하고 집을 허물어 새로운 집을 짓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개혁에는 설득해야 할 반대자는 있어도 타도해야 할 적은 없다. 이에 반하여 혁명에는 타도해야 할 적이 있다.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한다.

지금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누구를 설득할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누군가를 적대시하고, 적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한다. 통합을 외치면서 분열을 조장한다. 말은 개혁인데, 행동은 혁명을 닮았다. 자기들 내부에서조차 1966년 폭발한 중국 문화혁명의 선봉인 홍위병의 행동과 같다고 공공연히 비판하는 소리가 들린다.

혁명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도 좋다. 그러나 혁명을 위하여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과 열정 그리고 헌신이 뒤따라야 한다. 그들의 어디에서 이런 미덕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들의 외침은 메아리 없는 공허함으로 시대의 절망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혁명은 구호와 적대감만으로도 불이 붙을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은 비전, 목표, 청사진, 설계와 전략이 준비되지 않으면 구성원들의 동의와 참여를 끌어낼 방도가 없다.
다시 말하면, 혁명은 감성이요, 개혁은 과학이다. 그런데 그들의 몸짓에서 감성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그들의 행동에서 과학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입에서 진지한 고뇌 끝에 나오는 비전과 전략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모두 다 혼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개혁은 특정 세력, 특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우리 시대의 성공적인 개혁은 보수적인 세력에 의해 추진되었다. 영국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 몰락하는 영국을 다시 살려 놓았고, 미국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산업공동화로 치닫던 경제를 다시 회생시킨 사실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문화혁명의 극좌파를 몰아내고 중국의 현대화를 이끈 실용주의자 등소평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확고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개혁을 자기들의 전유물로 치부하고 자기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개혁의 적으로 공격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이보다 더 어리석고 가소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개혁이든 혁명이든 결국은 더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개혁과 혁명 모두 내재적으로 진보(progress)를 함축하는 개념인 것이다. 사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할지 모른다. 과연 그러한가. 나의 대답은 정반대이다. 그들이 타고 있는 궤도는 불행이도 퇴보(regress)이거나 퇴행(retrogress)의 궤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conservation)라는 말처럼 인기 없는 말도 드물다. 앞으로 그 원인을 분석하여 이 컬럼에 써 나갈 생각이다.          
     
사실 보수나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고르바쵸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칠 때 소비에트 사회주의체제를 옹호하는자들은 보수이고, 자본주의와 다원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은 진보였다. 반대로 자유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빈부격차를 시정하기 위하여 사회주의원리 일부를 원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진보이고, 이를 반대하면 보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 구분이 통용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세계화와 지식화의 거대한 물결이 과거의 패러다임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시대와 문명을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 어디를 보아도 미래를 향한 창조와 개척의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다 소멸되었거나 그냥 두어도 자연히 소멸할 과거의 모순을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 치환해 놓고 누군가를 적으로 몰며 소란을 피운다. 이것이 퇴보이고 퇴행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건강한 사람도 때로는 악몽에 시달릴 수 있다.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악몽의 그림자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한 나라, 한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진정한 적은 퇴보주의이다. 시대의 대전환을 외면하고 퇴보와 퇴행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워 그 악몽을 털고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퇴보주의의 악몽을 벗어났을 때 우리 모두는 위대한 미래의 창조를 향해 건강하고 생산적인 경쟁과 협력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2003. 6. 3


Posted by 뉴스박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