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권이 출범한지 석달을 넘어서고 있다. 이 짧은 기간동안 경제, 사회, 안보와 외교 현장에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물론 정권 초기에는 불가피하게 국정의 혼란이 일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권 초기의 일시적 혼란을 국가위기로 연결하여 국민들이 걱정하는 일은 가까운 우리 헌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물며 국정을 담당한 정권 스스로가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특별한 대응을 논의하고 있으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람이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이나 한나라당이 이를 맞받아 “국민 노릇 못해먹겠다”는 논평을 내놓는 모습을 바라보며 분노와 실망 이전에 허탈과 절망 속에 빠져들 국민들의 가슴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다.                      
             
과연 우리의 현 상황은 위기인가? 위기라면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위기 극복의 희망은 있는 것인가?

정부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일으킨다고 판단되는 파업과 집단행동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민간의 인력과 장비 징발, 업무복귀 명령 등을 할 수 있는 “국가위기대응특별법”의 제정을 검토중이라 한다.

무엇이 위기인지는 말하지 않고, 그 위기의 원인에 관하여 깊이 있는 성찰은 외면한 채, 위기의 징후로 나타난 현상을 강제로 소멸시킬 권력적 수단을 확보하겠다는 한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노동관계법에는 “직권중재”제도나, 노동부장관의 “긴급조정권”이라는 수단이 있고, 헌법상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최소한의 필요한 처분이나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대통령의 긴급권”이 부여되어 있다.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단행할 때 바로 이 긴급권을 발동하였다.

도대체 이 정권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특별법을 운위하는지 알 수 없다. 알면서도 특별법의 제정을 추진하려 한다면 그들의 의도는 자명하다. 권위적 통치를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제도화하여 독재의 문을 열겠다는 의도이다. 헌법상의 긴급권은 그야말로 예외적으로 발동되는 최소한의 권력인데 그러한 권력을 대통령이 일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겠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시대에 독재라니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기 바란다.

현재의 위기상황은 세 방향으로부터 몰려오고 있다.
하나는 경제, 특히 서민경제의 파탄이다. 둘은 사회구성원간의 대립과 갈등이다. 사회통합을 위해 땀흘려야 할 권력은 오히려 집단과 집단간의 적대감을 키워 점점 더 화해를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셋은 안보이다. 특히 북한 핵이라는 절체절명의 이슈를 강건너 불처럼 바라보다가 나라를 고립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정권은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지 사회를 변혁하려 해서는 안된다. 국가경영은 경제를 성장시켜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일이며, 나라의 안보를 튼튼히 하여 사회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현재 신용불량자가 300만명에 이르며, 자고 일어나면 3,000명의 새로운 불량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전 정권이나 이 정권은 국민들에게 더 많은 휴일을 주지 못해 안달이다. 근면하게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기업인들은 또 어떠한가. 하루가 다르게 기업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투자, 고용, 생산, 소비의 선순환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모두 다 경제에 관한 비전과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정부정책을 믿지 못하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기꺼이 투자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물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한다. 이들 집단간의 이해관계를 미리미리 조절하여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이번 화물연대의 집단행동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정부에 중추신경조직이 살아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분쟁이 폭발했을 때 그 해결과정에서 정부가 원칙을 무너뜨리면 안된다. 그러나 이 정권 들어서 발생한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 등의 사태에서 원칙을 무너뜨린 측은 바로 정부였다. 입만 열면 원칙과 소신을 떠들던 사람들이 일만 터지면 우왕좌왕하면서 편법을 동원한다. 나쁜 선례는 반드시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마련이다. 이 컬럼을 쓰고 있는 시간에 교육부가 전교조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문제에 관하여 타협을 이루어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 대혼란을 예고하는 경적음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나라에 교육정책당국이 교육부외에 또 하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알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말 그대로 노동조합이다. 교육정책을 가지고 정부와 협상을 벌리거나 집단의 힘으로 정부를 굴복시킬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원칙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강둑이 무너지면 닥쳐올 것은 재앙밖에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닌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도,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이 정부에는 없는 것 같다.
                        
최근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을 놓고 많은 국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상테이블에 우리 스스로 앉지않아도 된다고 말해놓았는데 엊그제 미일정상회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그 협상테이블에 반드시 앉아야 된다고 합의하였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민족의 생존이 걸린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도대체 방관자인가, 국외자인가, 아니면 당사자인가. 참으로 처연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언제나 어려움은 있게 마련이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더 큰 성장과 도약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어려움의 본질을 외면하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리더십이 끝내 상황을 위기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 정권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려 할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본질을 꿰뚫고 비전과 전략을 마련한 다음 국민들에게 호소할 것은 호소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야 할 것이다. 1979년 집권한 대처 수상이 몰락하는 석양의 나라 영국을 어떻게 구해낼 수 있었는가. 70년대 기업과 자본의 탈출로 산업공동화의 위기를 맞은 미국의 경제를 레이건 대통령이 어떠한 리더십으로 소생시켰는가.

정답은 단 하나이다. 지도자의 용기있고 정직한 리더십이다. 위기적 상황은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직하고 용기있는 리더십에 의하여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국가위기대응특별법”문제를 놓고 불필요한 논쟁이 없기를 바란다.


2003. 5. 26



 
Posted by 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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